‘나, 이 고양이 기를 거야.’ 동물에게 딱히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던 부부는 옆집의 사내아이가 고양이를 기르겠다고 선언한 이후부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단 한 번도 반려동물을 들인 적이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함께 놀게 되고, 어떻게 하다 보니 음식을 주게 되고, 또 어쩌다 보니 창문과 문을 통해 드나들도록 하는 부부. 열린 창처럼 고양이와 반려동물을 향해 닫혀 있었던 마음은 눈치챌 틈도 없이 활짝 열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을까.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때가 기회를 놓친 순간이었다는 것을.
곡옥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처음 소파에서 잠들었을 때, 집 자체가 이 광경을 꿈꿔왔다고 여겨질 만큼 깊은 기쁨이 찾아왔다. 출판업계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건강이 악화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과 안정된 수입을 내려놓고 불안정한 미래와 불안정한 수입의 길로 접어들게 된 부부. 삶이 막막하게 여겨지고 ‘내일’을 두려워하게 된 부부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준 것은 다름 아닌 작은 고양이 한 마리였다. 이름은 ‘치비’. 치비와 함께하는 삶 속에서, 치비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서 심리적인 안정과 기쁨을 되찾은 부부. 서서히 치비는 살짝 열어둔 창문 틈새로, 마치 작은 물길이 거듭거듭 완만한 비탈을 적시고 뻗어가듯이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치비는 그들의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예 몰래 데려가버릴까? 우리 고양이지. 어느새 ‘우리’ 고양이가 된 치비. 그렇게 치비는 이른 저녁 무렵엔 부부의 집으로 와서 밤을 함께 보내고, 옆집 아이가 등원할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가 낮에는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른바 ‘두 집 살림’을 하게 된다. 이렇게 계속 지내면 좋을 테지만, 집주인이 집을 내놓게 되면서 이사를 가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부부. 치비는 옆집의 반려동물이었고, 치비에게 이미 정이 들어버려 ‘집사’가 된 부부는 코앞으로 다가온 갑작스러운 이별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나한테 치비는 고양이 모습을 하고 있는 마음 잘 통하는 친구야. 처음 시작은 ‘우연’이었을지 몰라도, 그 끝은 ‘운명’처럼 느껴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