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와 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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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지난날은 추억의 보고가 아니라 비극의 진앙이었고, 나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며 살아왔다.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는 자신의 모교인 생텍쥐페리고교가 50주년을 맞이해 기념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뉴욕에서부터 귀국한다. 한때는 둘도 없는 사이였지만 졸업한 뒤로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오랜 친구 막심과 파니, 그리고 그 밖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면서 옛 추억에 잠긴 듯 보인다. 막심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토마. 무척 느긋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두 사람의 삶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그와 내가 1992년 12월의 어느 저녁에 저지른 일 때문에 우리의 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우리는 그 시한폭탄을 안전하게 해체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정해졌어. 우리는 한 남자를 죽여 이 망할 놈의 체육관 벽에 매장시켰어. 더 이상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지? 25년 전, 생텍쥐페리고교에 재학 중이었던 열여덟 살의 토마는 당시 모든 남학생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한 빙카를 사랑하고 있었고, 소문에 의하면 빙카는 철학 선생님인 알렉시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빙카에게서 선생님의 일방적이고 집착적인 구애였다는 것을 알게 된 토마는 분노에 휩싸여 알렉시와 다투게 되고, 우연히 현장을 목격한 막심과 더불어 싸우다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막심의 아버지와 경비원의 도움으로 알렉시의 시체를 당시 공사 중이던 체육관 벽에 숨긴 두 사람. 그날 이후 빙카는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감쪽같이 사라진 알렉시와 빙카가 사랑의 도피를 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모든 게 잊힌 듯 보였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후, 범죄가 발각될 처지에 놓이게 된 토마와 막심. 학교 측은 첨단 시설을 갖춘 초현대식 다목적건물을 짓기 위해 체육관을 허물기로 결정했다.

반으로 접은 신문기사 사본을 펼치자 가장 먼저 밑줄을 그은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복수. 그런데 누군가가 토마, 막심, 그리고 파니에게 같은 신문 사본을 보내 ‘복수’를 암시한다. 범죄가 발각될 위기에 놓였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누군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서서히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된 토마, 막심과 파니. 빙카와 알렉시의 일을 다시금 찬찬히 되돌아보면서 25년 전 사건의 뒤를 밟던 토마는, 25년 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증거들을 하나둘씩 찾아내면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사건의 뒷이야기를 알게 된다.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빙카, 그리고 시체로 발각되기 직전인 알렉시, 그리고 어쩌면, 오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두 사람의 관계.빙카는 피해자였을까, 아니면 파렴치한 악마의 화신이었을까? 어쩌면 두 가지 다였을까?

나는 두렵지 않아. 왜냐하면, 난 항상 위험보다 한 발짝 앞서가니까. <센트럴파크> 이후 액션과 서스펜스 비중을 늘리면서 이번 신간인 <아가씨와 밤>도 예상처럼 스릴러로 돌아온 기욤 뮈소. 선과 악이 비교적 명확했던 그의 전작들과는 달리, <아가씨와 밤>은 누가 옳고 그른지 확실하게 나눌 수가 없다. 오히려 주인공인 토마, 막심, 그리고 파니가 살인자인데다 그 사실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은폐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으로만 보면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가씨와 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 빙카와 알렉시의 일에 연관되어 있으니, 결국 악한 자들의 싸움인 것이다. 단지 누가 더 악한 것인가의 차이점만 있을 뿐.

어쩌면 이제 와서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따져봐야 다 부질없는 짓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우리 두 사람 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일 수도 있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명확하게 가지 않는, 오묘한 관계 속의 등장인물들을 대거 만날 수 있었던 <아가씨와 밤>. 기욤 뮈소의 신작답게, 밤늦게 잡았지만 결국 옮긴이의 말까지 읽은 다음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한 번 놓으면 잡을 수 없는 마성의 스릴러 <아가씨와 밤>. 살인 사건이지만 밤늦게 읽어도 두렵지 않았던 만큼, 매혹적인 스릴러로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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