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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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무엇을 찾아내리라고 기대했을까? 분명한 것은- 그러니까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그들의 유일한 침입 이유는- 그들이 우리 신문에 관한 무언가를 찾고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인 <제0호>는 콜론나가 잠자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가 그의 집에 침입하면서 시작된다. 무솔리니,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을 취재하고 있던 동료 기사가 갑작스레 시신으로 발견되고,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지자,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콜론나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의와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신문, 그리고 음모론을 믿는 기자의 이야기를 담은 <제0호>.


나는 의심해. 언제나 의심하면서 살아. 콜론나는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마땅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굳이 ‘직업’이라고 부를 만한 게 있으면 작가 정도가 되겠다. 이렇듯 사회적으로는 실패한 글쟁이인 콜론나는, 대필을 하거나 독일어 번역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그런데 뜻밖에도 한 사람이 찾아와서 어떤 직업을 제안한다. 친애하는 콜론나. 당신은 글을 쓰고 사라지는 거예요. 당신은 프랑스 말로 <네그르>라 불리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나는 신문이 창간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우리 기자들은 그런 사실을 몰라야 합니다. 상대방이 ‘절대 창간되지 않을’ 신문 편집자로 근무할 때, 그들에게 있었던 모든 사건들을 기록해서 대책을 세우려는 그의 뜻에 따라, 제0호를 발행하기 위해 힘쓰는 기자들과 합류하게 된 콜론나. 그런데 그들의 신문 제0호는 매우 특별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아무리 폭탄을 던진 적이 없다 해도, 우리는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제0호를 만들 수 있어요. 뉴스들이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 뉴스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정의와 진실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절대 창간되지 않을’ 신문 제0호. 움베르토 에코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저널리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제0호>. 보통의 소설은 대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기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는 오히려 그 반대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신문사의 잘 알려지지 않은 단면과 미스터리, 그리고 음모론을 도입하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낸다. 부패한 저널리즘과 정부,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을 비웃는 <제0호>, 그리고 그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자는 300여 페이지 되는 책을 순식간에 읽도록 만들었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고 불렸다는 움베르토 에코의 진가는 이곳에서도 발현된다.


이제 가짜 뉴스는 너무나도 흔한 존재가 되었고,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옳고 그른 정보를 찾느라 오히려 시간을 더 보내는 것은 당연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제0호>처럼 이러한 판국을 풍자하는 소설을 통해 그 위험성과 언론의 영향력을 다시 한 번 더 느끼면서, 부패한 언론과 부패한 정부의 결과를 소설 속으로나마 접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알고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이 시작이니까. 세계는 하나의 악몽이야라고 말할 정도로 심각했던 과거의 이탈리아를 되돌아보며, 그래도 지금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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