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정원 - NT Novel
가노 아라타 지음, 유경주 옮김, 신카이 마코토 원작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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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발로 걷는 나와, 걷기 위해 내 구두를 만드는 내 손. 작게 완결된 아름다운 소우주. 나는 그야말로 그런 것을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구두장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는 고등학생 소년 타카오. 사람이 북적이는 학교보다 조용하고 편안한 곳을 선호하는 그는, 비가 오던 어느 날 아침 무작정 발이 이끄는대로 공원을 향해 갔다. 학교에 가지 않고 여유롭게 공원 정자에 앉아 떨어지는 빗방울과 자연 그대로를 즐기며 구두 스케치를 하던 소년은, 그곳에서 어딘가 이상하지만 신비로운 여자를 만나게 된다. 이름도, 정체도 모르지만 첫인상 한 번 뚜렷했던 우녀를.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타카오가 비 오는 날 공원을 가면 어김없이 만날 수 있었던 신비한 이 여인. 그렇게 두 사람은 특별한 대화나 그럴듯한 이유 없이 비 오는 날이면 공원에 가는 일을 되풀이한다. 타카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구두장이의 꿈을 말하고, 구두 스케치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맥주만 연거푸 마시던 상대방. 친밀하지도, 그렇다고 어색하지도 않은 기류는 사춘기 소년 타카오로 하여금 신비한 여인을 사랑하도록 만든다. 다른 듯 비슷한, 비슷한 듯 다른 그녀에게 끌린 타카오.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녀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에 닿았는지도 모른다. 장마가 끝나가고 있는데, 타카오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해야만 한다. 고등학생 소년이 스물 중반쯤 되어 보이는 신비로운 여성과 대화를 나누면서 막연하게 생각하기만 했던 것을 점점 현실로 이루는 과정, 그 성장 과정을 담은 <언어의 정원>. 애니메이션이 원작이고 내용을 책으로 담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책을 읽으면서 애니메이션 한 편을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재생했다. 비가 오는 오늘은, 더더욱.


당신은 물론 당신 자신을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겠지만, 저에게는 당신이 저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주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서로에게 말 못할 고민과 아픔이 있었던 두 사람이, 우연함을 계기로 만남을 계속해 나가면서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은 읽는 내내 안타깝다는 감정이 드는 한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이 관계에 대한 슬픈 예감은 처음부터 들었으니까. 그러나 책을 덮은 지금은 생각이 약간 달라졌다. 틀림없이, 두 사람은 원망 대신 응원하는 방식을 택했을 거라고, 분명 그랬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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