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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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맛은 봄이나 여름 등 계절의 변화,
그날그날의 날씨 상태,
선선하거나 덥거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또 먹는 사람의 기분에도 변화가 있으므로
숟가락으로 몇 숟가락, 몇 개, 몇그램이라는 식으로
융통성 없이 만들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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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을 선호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가장 자주 하는 말이지만 가장 싫은 말이기도 한
'아무거나', '알아서'는 언제나 나를 곤란하게 만든다.

그런 나에게 모리 마리가 가지고 있는
그녀만의 뚜렷한 요리 주관은
박수를 보내고 싶을 만큼 훌륭했다.

호감형이지만 주관 뚜렷하지 않은 빙리보다
오만하지만 주관 뚜렷한 다아시가 좋다.
그래서 저절로 모리 마리,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할 말은 꼭 하고야 마는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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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자주 만들었던 요리 가운데
맛있는 것을 떠올리면 나는
곧바로 유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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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대한 그녀만의 뚜렷한 주관과 개성.
아마 이러한 성격이 자신의 행복을 찾고
원하는 삶을 찾는 데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무언가를 떠올렸을 때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자신에게 힘을 주는 그러한 대상.
마리에게는 그것이 '맛있는 음식'이었다.

나에게는 그 대상이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통해 힘을 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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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 내 눈에 침대 헤드보드 위
빈 베르무트병에 꽂아둔 빨간 장미,
파르스름한 코카콜라병,
짙은 파랑색 병에 꽂아둔 진홍색 장미와 하얀 꽃,
연홍색 꽃 등이 비쳐서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배로 늘려준다.

영화 제목을 빌리면,
<술과 장미의 나날>이 아니라
'홍차와 장미의 나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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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모리 마리가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단정짓기엔 어렵다.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두 번의 이혼으로
행복했던 마리의 삶은 끝이 나는 듯했다.
이혼 이후에는 먹고 살 돈을 벌기 위해
소설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글을 쓰는 마리.

여기까지 보면 한없이 불행하고 슬픈,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게 숙명인 듯하다.
하지만 딱히 슬프고 비참한 삶을 산 것도 아니다.

마리는, 비록 가난했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홍차와,
장미와, 시와, 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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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삶을 결코 진흙탕으로 만들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남들에게는 진짜 사금이 아니라
구리나 운모라 하더라도,
이 정신적 귀족은 틀림없이 공상의 세계에서
찬란한 금빛을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리 마리를
부러워해야 할 진짜 이유다.

/
남들 눈에는 비록 보잘것없어 보이는 인생을 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게 떳떳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산 모리 마리.

남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며 살아간 그녀의 삶

그녀의 흥미진진한 '맛있는'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홍차
내가 사랑하는 어린 왕자가 사랑한 장미
장미와 홍차로 뒤덮인 
아름답고 부러운 인생에 관한 글인 줄 알았다면
그 생각은 잠시 고이 접어두시길.

시를 사랑했고, 맛있는 음식과 요리를 사랑했고,
가족과 아버지를 끔찍이 사랑했고,
자기 자신을 사랑한 모리 마리의 이야기가 담긴
<홍차와 장미의 나날>.

장밋빛 어린 시절을 지나
상대적으로 암울하게 느껴지는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여전히 홍차 그리고 장미와 시간을 보내는 마리.

돈보다는 꿈을, 원하는 바를 선택한 그녀.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귀족이었던 그녀.
매력적인 모리 마리를 만날 수 있었던
<홍차와 장미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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