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 W-novel
사쿠라마치 하루 지음, 구수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친구가 되어줘. 2보다는 1이 좋은, 혼자가 좋은 소년에게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말을 걸었다. 소년처럼 언제나 혼자 있는, 수학 천재로 소문이 자자한 소녀. 소년과 같은 반이라는 것 외에는 접점이 단 하나도 없는 소녀가 갑작스레 말을 걸어오자, 소년은 당황한다. 그런데 소녀의 입에서 나온 그 다음 말은 더 충격적이다. 나, 전향성 건망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 기억이 한 달밖에 안 가. 한 달 주기로 리셋되거든. 꼭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소녀의 삶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나한테 친구가 되어 달라고 하는 거냐고!


이번 주 토요일, 나는 너에 대해 관해서 완전히, 깔끔하게 잊어버릴 거야. 일요일에 나를 만났을 때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면 돼. 그러면 나는 바로 사랑에 빠질 거야. 소년의 휴대폰 번호인 5020-5564가 서로 친화수라는 것을 알고 곧바로 소년에게 호감을 느낀 소녀. 매달 기억이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처럼 바뀌어버리는 소녀는 자신의 독특한 병으로 친구를 만들지 않았지만, 자신과 수학적으로 이어져있는 이 소년에게는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마치, 운명처럼.


그렇게 매달 소년은 자신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린 소녀에게 휴대폰 번호를 보여주면서 다가간다. 자신과 함께한 모든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소녀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는 대신, 소년은 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소녀를 바라보며 소녀의 몫까지 기억하겠노라고 결심한다. 소녀를 대신해서, 소녀의 몫까지.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속에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반복될수록, 소녀가 기억을 잃는 주기가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년. 그런데 이미 늦었다. 소년은, 그러니까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아스나 양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아. 그러니까 아스나 양도 나를 잊지 말아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특별한 병을 앓고 있는 수학 천재 소녀를 사랑한 한 소년의 이야기였기 때문일까. 라이트 노벨이라는 장르로 그저 가볍게만 바라보았지만, 소년과 소녀의 대화 속에서, 숫자 이야기 속에서, 묵직한 감동을 발견했다. 혹 내 기억이 너를 잃는다 해도, 이 마음이 너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나는 기억을 잃어버리지만 ‘새로운 나’를 사랑해줄 테니까. 소년과 소녀의 서로를 향한 굳건한 믿음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신이시여-. 다음 생에서라도 좋으니까, 다음에 그와 만나게 되었을 때, 그가 나를 좋아하게 해주세요. 그저 로맨스 소설이나 일본 특유의 정서를 느끼려고만 읽는 것은 곤란하다. 가볍게 생각하면서 읽기에는 너무 미안할 정도로 오랜 여운을 남기는 <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처음에는 수학과 수식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결국 돌고 돌아 운명적인 만남을 이어가는 소년과 소녀의 풋풋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 학창시절로 되돌아가, 마치 책 속의 소녀와 소년이 된 것처럼 깊이 빠져 순식간에 읽어버린 소설. 두 사람은 여전히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소녀와 소년이 함께 써내려갈 앞으로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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