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쿠자는 평소에도 불합리한 세계에서 살아. 그런 녀석들을 상대로 싸우는 거라고. 야쿠자를 이해하려면 그들처럼 불합리한 세계에 살아야 하는 거야(23). 참으로 독특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야쿠자를 잡기 위해 야쿠자처럼 산다!’ 이 발상의 주인공이 형사라면, 당신은 믿겠는가? 구레하라 시는 폭력단들의 잦은 마찰로 언제나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런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형사 오가미 쇼고. 구레하라 동부서 수사 2과 주임이자 폭력단계 반장이다. 구레하라는 크게 두 파로 나누어져 있다. 진세이카이와 오다니구미. 서로에게 적대적인 두 폭력단을 제지하고 피 튀기는 싸움으로 바뀌지 않도록 언제나 힘쓰는 구레하라 동부서 중에서도, 유독 강세를 보이는 형사가 바로 소고다. 그런데 그의 독특한 발상에 못지않게 특이한 경력이 하나 있다. 바로 수상 경력도, 징계처분 경력도 최고라는 거다!


맞아, 난 미쳤어. 수사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거야(206). 이런 말도 서슴지 않는 독종 중의 독종, 형사 오가미. 그는 폭력단을 잡고 싸움 없는 구레하라 시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수사를 위해서라면 불법 수사와 복무규율을 위반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독한 형사에게 신참내기 형사 히오카 슈이치가 그의 파트너로 선정이 돼 복무를 시작한 지 채 하루가 되지 않아, 그들은 엄청난 일을 경험하게 된다. 폭력단 진세이카이의 계열사 폭력단의 구레하라 금융 직원인 우에사와라는 남자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베테랑 형사 오가미는 곧바로 이 사건을 이용해 구레하라 폭력단을 와해시키려는 원대한 꿈을 가지게 되는데.. 과연 신참내기 형사 히오카와 악독한 베테랑 형사 오가미는 언제 싸움이 벌어질지 모르는 구레하라 시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법률은 사적 처벌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법률이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다면 정의는 어떻게 되겠는가? 실체적 정의는 어느 쪽에 있을까(426)? 유즈키 유코의 <고독한 늑대의 피>를 읽으며 <용을 죽인 형사>의 형사 벡스트룀을 떠올렸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무능한 형사 벡스트룀과 독종 중의 독종인 형사 오가미. 두 소설 모두 경찰의 비리를 비판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어두운 세계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고독한 늑대의 피>는 야쿠자 세계에서의 정의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자문하도록 한다. 수사를 위해서라면 불법 수사와 복무규율 위반은 일도 아닌 형사 오가미는 과연 정의로운 형사냐고. 곧바로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고독한 늑대의 피>를 다시 읽기를 권한다. 그는 과연 정의로운 형사였는가. 그는 과연 정의로운 사람이었는가.


알고 있습니다. 진짜 경찰관의 마음이 뭔지 오가미 씨에게 확실하게 배웠습니다(439). 신참내기 형사 히오카가 고백한 이 말이, 독자들이 해야 할 말이다. (나는 형사 히오카를 한 명의 독자로 보았다.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신참내기 형사라 오가미의 수사 방식과 위반적인 행동에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 독자를 대변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양지의 법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정의로움을, 음지에서 구현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 것일까? 정의로움에 대한 질문을 작가 유즈키 유코는 폭력단들의 세계를 통해 심도 있게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고독한 늑대의 피>는 끝을 다 읽기 전까지는 섣불리 결론을 지을 수 없는 책이다. 생각해보니 정의 역시 그렇다.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기 전까지는 함부로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다. 언제나 양면성이 존재하는 정의이지만, 단 한 번도 어둠의 세계에서의 관점으로, 그곳을 정의한 적 없기 때문에 더욱더 묵직하게 다가온 유즈키 유코의 질문.


<고독한 늑대의 피>는 나에게 읽기 참 어려운 책이었다. 등장인물이 워낙 많은 데다 익숙지 않은 일본식 이름과 지명, 그리고 애칭까지 뒤섞여 필기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상상치도 못했던 이야기와 그 결말이, 어둠의 세계에서의 정의가, 그리고 그 정의를 찾기 위해 긴 여정을 함께한 형사 히오카 슈이치, 그리고 경찰의 마음가짐을 제대로 알려준 형사 오가미 쇼고 모두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참신한 소재와 독특한 관점으로 정의를 바라본 <고독한 늑대의 피>. 부디 히오카가 깨닫게 된 그 의미를, 당신도 깨달을 수 있게 되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