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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 From Paris 피에스 프롬 파리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5월
평점 :
중요한 건 결단을 내리는 겁니다.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지 결단을 내리라고요. 영국 출신의 유명 영화배우인 미아는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게로부터 멀리 달아나 무작정 파리에 도착했다. 우연히 낸 첫 번째 소설이 초대박을 친 나머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매스컴의 보도에 지쳐버린 미국인 폴은 ‘소설에 집중하겠다’는 핑계로 연고지 하나 없는 파리로 훌쩍 떠나 그곳에 정착했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피하고 싶어서 무작정 발이 가는 대로 가다 보니 서로를 만나게 됐다. 그것도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미아는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그 어디에도 말하지 못한 채 그저 상황에서 도피를 선택한다. 부부가 함께 찍은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있었고, 연기자로서의 생명이 걱정되기도 했고,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기도 했으니. 한편 폴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고, 앞에 나서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글쓰기에만 집중하겠다며 파리로 온 지도 꽤 시간이 흘렀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폴에게 말한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거짓말처럼 서로를 마주하게 된 미아와 폴. 서로에게 아무 감정이 없음을 알리며, 스스로 생각하기에 약간의 감정이 포함됐을까 염려돼 ‘의미 있는 것 없는 것’을 수시로 확인한다. 함께 식사를 하고, 오페라 공연을 보고, 경찰에게 잡히고, 친구 몰래 한밤중에 집을 빠져나와 서로를 만나러 가는 길마저, 그런 기분마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 포장하면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가 그녀의 삶의, 그녀가 그의 삶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마드무아젤! 하루하루가 소중한 겁니다. 길거리의 한 캐리커처 화가가 미아에게 말했듯,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지쳐있고 생기 없던 그들의 삶 속에 서로가 큰 위안이 되어 주고,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성격과 행동, 사고방식까지 서로를 닮아가는 미아와 폴 커플을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있었으니까.
<피에스 프롬 파리>는 프랑스 작가 중 기욤 뮈소와 함께 쌍두마차를 이끌고 있다는 마르크 레비의 작품인 만큼 달달함과 유머러스함이 적절히 섞여 읽는 내내 행복함이 가득했다. 특히 주인공 ‘폴’은 작가의 분신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공통점이 많았다는 것과 책에 서울 그리고 서울국제도서전과 북한과의 관계까지 다루면서 한국 독자로는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확률로 따지자면 서로를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미아와 폴이 파리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아름다웠다. 영화 <노팅힐>이 연상되는 아름다운 소설 <피에스 프롬 파리>. 내가 느낀 달달함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