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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일부러 읽어보지 않았다.
그냥,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갖곤 했던 감정들에 솔직하고 싶어서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은 키친을 서점에서 불편하게 앉아서 단숨에 읽어버렸던 이후 처음이다.
이 책도 그냥, 어느 날 문득 내게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
책이 나온지가 꽤 되었으니 늦게 접한 셈이다.
강렬한 표지에 이끌리어, 다분히 무속적인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색채에 압도되어
이 책을 주문한 셈이고, 두터운 두께도 맘에 들었다.
다 읽고 난 지금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처음에는 그녀의 많은 책을 읽지 못한 관계로 문장들이 참 애매하고 관념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고, 너무 거슬리기도 하여, 번역자를 새삼 확인했으나 예의 익숙한 일본서적의 대표 번역가
김난주씨였다.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빈약한 표현 단어들도 맘에 썩 와닿지 않았는데,
중반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나의 이런 사소한 짜증들은 화르륵 날아가 버리고, 나는 완전히
몰두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작가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싶다.
기억이 희미한 어느 저녁 해거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좁은 베란다에 겹쳐서 널어 놓은 빨래를 걷으려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암튼 그 시간 즈음
에 베란다 문을 열었고, 문을 엶과 동시에 좁은 골목길 너머 많은 지붕들 사이를 흐르는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예의 익숙한 밥 짓는 냄새 비슷한 소란스러움을 동반한 냄새였지만 그날은 이상
하게도 그 이상의 기분이 휘감아 돌았다. 갑자기 어딘가 매우 고독스러운 배경을 따라 떠돌며,
이 삶의 냄새에 섞이지 못하는 어떤 존재들에 실루엣이 느껴지며, 인생의 한 단면을 순식간에
알아버린, 어떤 직관으로 느껴지는 한 순간이었다....그리고 나는 그날 긴 한숨을 내쉬었고
나도 모르게...'떠나고 싶어...정말 떠나고 싶어.'라고 중얼거렸던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순간이 떠오르곤 했다. 논리적으로 차분히 설명할 순 없지만, 순식간에
온 몸과 영혼으로 그대로 뛰어 넘으며, 비약적으로 모든 것이 이해가 되어지는 어떤 한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왜인지 슬픔에 겨워 눈물이 와락 솟으며 그냥 주저 앉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두려움과 슬픔에 떨었다.
알고 싶지 않지만 존재하는 인생의 다른 세계가 너무 일상적이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펼쳐져 있어서...난 솔직히 조금 많이 무서웠다.
아버지가 다른 어린 남동생 요시오, 자살로 추정되는 여동생 마유, 리버럴한 엄마, 건조한 듯 따
뜻한 감성을 지닌 류이치로, 놀라운 사세코, 히피 세대 카페 사장 등등등...
범상치 않은 인물들의 삶은 마치 어떤 술집이나 카페의 으슥하며 아늑하고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기에 적당한 자리같은 그런 분위기를 풍겼고, 이십 대 초반의 방황하던 나의 정신적 세계와
맞닿아 있는 듯도 느껴졌다.
사쿠미, 작가의 현현같은 그녀와 나는 진심으로 친구가 되고 싶다.
누구와도 거침없이 소통하고 흡수하는 그녀의 내공이 나는 부럽다.
내가 많이 노력해도 안되는 삶에 대한 거침없는 자세, 마치 잃을 것이 없어 미래가 두렵지 않은
사람처럼, 온전히 현재에 살아 숨쉬는 그것,,,,
나에겐 그것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