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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 세쌍둥이와 함께 보낸 설피밭 17년
이하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2월
평점 :
나는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난 도시가 싫어,라고.
태어나 40여년간을 대도시에서 살았다. 나 역시 늘 만원버스에 시달렸고, 어디든 집 밖을 조금
벗어나려 하면 사람, 사람, 사람들에 지쳤다. 나 역시 누군가를 지치고 짜증나게 하면서...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살림 살아 가는 게 폭폭해지고 나이 들어 가면서
나는 불현듯 이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의 씨앗이 내 안에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곤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난, 언젠가 도시를 떠나 산골에서 살고 싶다고. 꼭 그럴거라고.
마치 젊은 시절 언젠가는 인도로 배낭 여행을 떠나는 방랑자가 되어야지, 마음 먹었을 때
느꼈던 안도감 같은 것이 변형되어 맘 속에 자리잡은 것인지도 몰랐다. 삶이 정말 지치면
스스로에게 쥐어 줄 마지막 패 같은 것, 그런 것이었다.
이하영님의 책을 읽게 된 것에 너무 감사한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어느 날 화장실에서 내가
주로 집어 들고 가볍게 읽곤 하던 동서커피에서 보내주던 잡지를 뒤적이다가 만났다.
여기는 곰배령, 꽃비가 내립니다. 라는 제목과 어떤 여자가 세쌍둥이랑 산에서 산다는 설명이
적힌 책 소개를 보며, 음..,재밌겠다. 읽고 싶다. 궁금하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와락 들었다.
그러나 건망증은 나의 일상을 종종 삼키곤 하여 잊고 잊던 중, 이번에는 동네 미용실에서 정말
십년 동안 볶아 보지 않은 머리를 간만에 볶으러 가서 무심코 집어 든 잡지 끄트머리에서 또
그녀를 만났다. 서둘러 페이지를 찾아 읽어 보고는 궁금함과 부러움이 중첩이 되어 몸이 살짝
달뜨는 기분이 들었다. 빨리 인터넷으로 곰배령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 결과 그 곳은 내가
예전에 힐끗 지나가는 자세로 잠시 본 다큐 예고 방송에 나왔던 곳이었다. 당시 본방을 보지 못
했던 난, 그곳이 곰배령인 것은 알지 못했고, 그냥 나같이 산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에
좀 독특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머릿속에 저장해 놓았다. 그래서 내가 심하게 이 도시를 떠나
고 싶은 발작을 내비칠 때면 남편이 그래서 어디에서 살고 싶은 데, 시골 어디? 라고 물으면
아...거기 있어. 찾아 봐야 돼는 데 전에 티비에 산골에서 좀 예술적으로 사는 사람들 나온 데
있는 데 거기서 살고 싶어. 산에 가면 나물이나 야생 과일들도 있고 개울도 있고 좀 아기자기
한 그런데 말이야. 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 데 바로 거기가 거긴거였다. 곰배령...
그리고 바로 곰배령 사람들 다큐를 모두 다운받아 보고는 내 병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고 가족
모두를 모아 놓고 다시 재차 방송을 보고, 나의 의지를 피력했다. 엄마가 살고 싶은 곳은 저
곳이라고...
그리고 어제 책을 받아서 읽어 보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읽는 도중 나는 내내 목이 메였다.
그녀가 하루 하루 산골 생활에 익숙해져가는 알곡같은 시간들을 적어 나간 그 글들 사이로
나는 이상하게 가슴 시린 바람이 자꾸 불어와서 그냥 좀 서러운 기분이 드는데, 그만
'우리, 화투 칠까?' 를 읽는 동안은 그 서러운 기분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계속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잠시 책을 덮고 표지에 웃고 있는 그녀의 사진을 어루만
져 보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웃음이 많이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진 막새 끝에
새겨져 반달로 웃고 있던 천년 전 웃음과 너무 닮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책을 넘겼
고 난 그 고마운 내용들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슬퍼졌다. 그래서 자리에 누웠는 데 그녀가 그 산
골에서 느꼈을 외로움이 이상하게 나에게 사무치게 전달되어 눈물이 자꾸 흘러 얼굴을 타고
귓 속을 흐르는 것을 닦아내야만 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또 목이 뻐근해져 온다.
어제 난 단순한 산골 사는 여자의 이야기가 아닌 그 어떤 문학작품만큼이나 나를 정화시키는
감성과 조우했다. 나머지 모든 것은 덤이고 보너스이다.
산골에 살고 싶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느낀 그 원형에 가까운 고독과 마주쳤을 때 과연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 지, 이겨 내어 승화할 수 있을 지
그것이 가장 두렵고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