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넙치 > 맥시멀리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넷에서 마실을 다니다보면 심심찮게 거론되는 이름이 바로 김영하다. 현작가들 소설을 사는 것이 어는 순간부터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해 인터넷 헌책방에 들렀더니 고전에 비해 두 배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김영하. 새 책과 별반 차이가 없고(한 2천원 정도) 결정적으로 귀찮아서 새 책을 사긴했다. 이 단편집 한 권만 읽고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찝찝함에 장편도 한 권쯤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결국 검은 꽃을 다음 번에 주문하게 될 것이다.

각설하고, 한마디로 이 소설집을 요약한다면 맥시멀리즘maximalism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단편의 플롯과 묘사는 과잉으로 넘쳐난다. 난 맥시멀리즘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들은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현작가들에게 가장 고마워하는 점이 바로 이 점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집의 책장 넘김은 다른 작가들의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의 소설에서 인물들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심리묘사보다는 행동묘사, 특히 사건묘사 중심이다. 사건을 따라가려고 나는 서둘러 문장을 읽어내려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주하게 되는 도시의 비정함 내지는 허무. 장황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중독성 있는' 서사는 그의 장기며 단점이다. 자칫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하기 쉬울 수 있는 것이 과잉 플롯인데 마지막에서 던져주는 허무가 빈곤하게만 보이는 사실성을 회복해준다.

<바람이 분다>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게임을 하는 장면.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는 피가 낭자해 흐르는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게 이끈다.

 <비상구> 역시 피가 흐르는 장르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 박찬욱식 영화를.

<흡혈귀> 뿐 아니라 이 소설집 전반에 걸쳐 그렇지만, 순수란 존재하지 않는다. 삶에서 아름다움이 있다면 그건 버티기에서 오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너무 절망적이지 않은가. 그의 말대로 '유독하고 매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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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눈물 겨울뿐이다. 이곳이 현재라는 사실이...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김기찬 사진, 황인숙 글 / 샘터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이 사진들을 본 것은 내 못난 그리움과 아직도 품고 있는 작은 낭만 때문이다. 그것 이외에는 없다.

골목... 어린 시절 바로 코앞의 초등학교를 두고 30분이나 걸어 내가 배정받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나는 항상 골목길로 가고 오고했다. 하루는 이 골목길, 또 하루는 저 골목길... 낮에 학교를 마치고 골목길을 따라 집에 오던 길에서 사람 한 명 마주치지 않던 날이 있었음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길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집 지붕위에서 피던 호박꽃과 호박, 얇은 담을 축대 삼아 위, 아래 동네를 나누고 비가 오면 질퍽거리고 퀴퀴한 냄새 가득하던 길... 나는 지금도 꿈속에서 그 길을 헤매곤 한다. 그건 단지 그리움일 뿐, 결코 되돌아갈 수 없음에 지닐 수 있는 음험한 낭만일 뿐이다. 

너무 낡은 집은 기와를 얹을 수가 없다. 그래서 장판과 비닐로 지붕을 덮는 것이다. 9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와 여름 바닷가를 갔다 왔더니 옆집에 살던 외삼촌께서 돌아가셨더랬다. 이유는 비 온 뒤 비가 샌다고 지붕 고쳐달라는 말에 덜 마른 스레트 지붕에 올라갔다가 지붕이 무너져서 떨어지셨기 때문이다. 그 지붕을 이고 사는 이들에게 넓고 풍성하다 말하지 말기를...

우리 집도 그런 낡은 무허가 하꼬방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하꼬방이라는 말도 모르리라. 여름이면 비가 새서 자다가 물벼락 맞기 일수고, 겨울이면 연탄가스에 중독되기 일수고, 밤중에 떠다 놓은 자리끼가 아침이면 꽁꽁 얼던 방에서 장갑을 끼고 파가를 입고 버선까지 신고 솜이불을 덮어도 손이 곱아 연필을 쥘 수도 없었던 집... 그 집에서 22년을 살았다. 우리는 그래도 잘 살았다. 불편할 게 뭐가 있으랴. 불편은 엄마의 몫이었을 뿐이다. 비가 오면 지붕에 올라가 장판과 비닐을 덮어야 했고 수돗물도 안 나와서 펌프를 쓰던 집이었으니 고장 나면 그거 고치는 것도 엄마의 일이었다. 연탄가스 때문에 부엌문을 달지도 못해서 한겨울에도 덜덜 떨며 살림해야 했던 엄마... 연탄 가는 일은 만만했을까... 그래도 화초를 기르던 엄마, 그 집이라도 쓸고 닦고 하던 엄마... 그것을 감동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자식으로 결코 할 수 없는 감정이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뿐... 더 일찍 알지 못하던...

지금 아파트에 이사 와서 12년을 살았다. 처음 이사 왔을 때만 낯설어 했을 뿐. 지금은 잘했다는 마음뿐이다. 그 집이 헐리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그 집에서 살았을 것이고 예순이 넘어 관절염이 생긴 엄마는 아직도 지붕에 오르셨으리라. 아버지도 체중이 많이 나가 오를 수 없었던 지붕이므로...

사진을 보며 그리움은 넘친다. 그 속에 내가 살던 집과 비슷한 집도 보이고 어린 시절 나와 같은 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그뿐이다.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 돌아가지 않을 그때... 골목이 사라진다는 것이 가난이 사라진다는 것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뿐이다. 골목이 없어져 삭막한 곳이 천지가 되더라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그들이 또 다른 곳에서 또 이런 고통을 감수하며 변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이 마음 아플 뿐... 나는 그저 눈물 겨울뿐이다. 이곳이 현재라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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