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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7년 7월
평점 :
이 글은 유시민의 <대한민국 개조론>의 CHAPTER 2. 에 대한 비판이다. 애초에 책을 든 목적이 한미 FTA에 관한 저자의 입장을 엿보고자 함이었으므로 나의 비판은 한미 FTA를 중심으로 한 상술이다.
몇페이지에 끄적여 놓은 유시민의 주장을 요약한다.
1. ⑴박정희의 수출주도형 모델은 한국경제발전에 있어서 선험적으로 부과된 존립여건 이고, ⑵“다른길은 다 봉쇄되었다.”
2.FTA는 박정희의 ‘공’을 계승하려는 긍적적 시도이자 거스를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다.
3. ⑴한국경제는 수출의존도와 재벌의존도가 높고, ⑵갈수록 설비투자와 혁신이 부진하다. ⑶대외적 변화가 가속화 되는 이때에(BRICs 등의 출현) ⑷선진 인프라를(가. 노동, 금융의 글로벌 스탠다드 구축, 나. 서비스• IT산업 계발) 구축해야한다.
4. 반대를 외치는 진보세력은 이론적 근거를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에 두고 있으며, 추상적 공리공담의 근시안적 사고에서 탈피해 구체적 현실을 봐야 한다.
1. ⑴의 전제는 참이나 ⑵의 후건문장은 옳지 않다. 군부독재시절의 후과로 대외개방경제가 역사적, 경험적으로 채택되었고, 몰아주기식 지원으로 ‘재벌’이라는 한국적인 특수한 현상이 나타났다. 수출입국의 기반 위에 세워진 대외개방모델과 재벌중심의 구조가 지금도 한국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나, 앞으로도 이 구조만이 선택지에서 가능한 경우의 수로 상정되는 것은 저자의 인식의 편협성을 반증한다. 자유방임을 견지했던 미국의 1930년대가 ‘대공황’이란 조정점을 통해 국가의 시장개입을 승인하는 수정자본주의로 나아갔듯, 역사적 맥락에서 구성된 물적토대는 외생변수의 출현으로 조정가능성을 가지기 마련이다. 1의 문장은 어떠한 근거도 결여된 선언적 명제에 그칠 공산이 크다. ‘사회과학’ 영역에 해당하는 사안을 구체적 근거없이 단정적으로 예단하는 것은 관찰자의 역량과 노력의 부재를 말해줄 뿐이다.
2. 한미FTA가 박정희의 ‘공’을 계승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먼저 ‘공’에 대한 그림을 명확히 재현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권이 취했던 경제전략은 한마디로 ‘국가의 적극적 시장개입에 따른 선별적 산업지원 정책’으로 규정할 수 있다. 요소노동, 요소자본의 투입으로 생산성 극대화에 주력한 결과 제조업, 중화학공업을 기반으로한 수출입국으로 발돋움 했다. 자원과 재화의 배분을 담당했던 중심축은 ‘국가’였고, ‘재벌’은 국가의 선별적 지원의 가장큰 수혜자였다. 다시 말해, ⑴시장을 국가의 적극적 통제아래두는 개입정책으로 ‘재벌’이란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고, 이를 지렛대로 ⑵수출중심의 통상국가가 형성되었다. 박정희 모델의 공을 계승한다는 것은 ⑴의 조건을 전제할 때 가능하다. 시장의 개입을 도외시한 통상국가모델의 확대는 대외의존도와 재벌중심의 독과점을 심화시킬 것이다. 건강하고 바람직한 국민경제는 각 부문이 ‘균형’에 가까울때 가장 이상적일수 있다. 지금도 기형적인 한국의 불균형의 심화는 또다른 파국(지나친 대외의존에 따른 내수시장의 위축, 국가의 조정자적 지위 상실로 인한 자원배분의 왜곡, 적하효과Trickl down가 일어나지 않음)을 예고할 뿐이다.
3. ⑴ 소수 독과점 기업의 성과가 국민경제로 흘러드는 중간문이 파괴되어 ‘실적’이 내수나 고용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전술한 바다. ⑵ 설비투자와 혁신은 기업경제의 현실과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최근의 지배적 경향을 들자면, IMF 이전까지 높은 설비투자율을 보였던 한국기업은 금융개방으로 초국적 자본의 공격(적대적 M&A등)에 대비하기 위해 내부 현금보유량을 늘리고,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 매각에 수출로 번 돈을 쏟아붓고 있다. 설비투자로 갈돈이 다른곳에 쓰이고 있으니, 흑자-설비투자-고용-내수진작 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연결고리가 파괴된 셈이다. 론스타와 같은 투기자본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황에서 금융환경의 보완과 제고없이 설비투자와 혁신을 개선한다는 것은 선후관계부터 잘못된 논의이다. ⑶ 최근의 대외적 변화를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BRICs의 지위향상은 달러패권중심의 일극체제가 균열을 보이는 징후이다. BRICs의 등장은 주변자적 위치에 있었던 비주류 국가들이 미국중심의 경제체제에 편입되길 거부하고, 블록화 등을 통해 독자적 길을 모색하는 흐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이것은 세계경제가 다극적 체제로 전환되는 변곡점에 이르렀음을 방증한다. 이런 외재적 환경의 변화를 거스르고, 미국의 일극체제에 편입된다는 것은 스스로의 미래지향성을 잠식하는 낙후된 방안일 수밖에 없다. ⑷선진 인프라를( ㈎노동, 금융의 글로벌 스탠다드 구축, ㈏ 서비스• IT산업 계발) 구축해야한다.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의 연속이지만 ⑷는 특히 식상하다. 미국의 조력자인 브레튼 우즈체제의 쌍두마차(IMF, 세계은행)가 견인하는 규준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가장한 ‘아메리카 스탠더드’다. 97년 외환위기를 몸으로 체험해서 잘 알겠지만, 노동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사측의 비용절감을 위한 감원을 통한 조직의 경량화에 다름 아니며, 금융의 ‘글로벌 스탠더드’는 얼마전 금융시장통합법 시행에서 알수있듯 금융기관의 무한경쟁을 말한다. 결국, 구조조정의 여파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층부에 편입되고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업무의 경계가 사라진 금융회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합병과 제휴를 통해 몸을 불리고, 공적 책임은 내팽겨 친채 ‘돈되는 아이템’ 발굴에 매진할 것이다. 97년 외환위기를 야기한 금융시장개방 이후, 금융권의 공공성 부재로 은행들이 수익성만 쫓은 결과, 리스크 높은 기업여신을 회피해 기업투자를 저해하고, 서민을 상대로 손쉽게 돈벌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의 확대로 유동성을 늘린결과 부동산 버블을 조장한 사실은 영미식 개혁에 따른 금융권의 폐해의 정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미 완전개방상태에 놓여있는 한국금융시장을 무한경쟁의 영미식 모델로 끼워 맞추는 것이 유시민과 현정권의 복안이다. 나. 의 서비스, IT산업 계발론은 국민경제를 이끌수 없는 근원적인 맹점을 가지고 있다. 두 산업의 공통점은 고용유발효과와 산업연관효과가 미미하다는데 있다. 선진 경제로 가기위해 미래형 산업으로 거론되는 소수 부문들에 국민경제를 통째로 집어넣는 것은 ‘교각살우’에 다름 아니다.
4. 박현채의 추종자로 반대세력을 싸잡아 단죄하는 것은 원시적 사고의 일단을 보여준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들이 반대논거로 민족경제론을 동원한바 없으며, 추상적 수준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적도 없다. 반대하는 이들은, ‘시장경제’의 근간인 공정한 경쟁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악명높은 미국의 무역구제 같은 통상폭력장치도 제거하지 못한채, 규모의 경제와의 시스템 통합에 따른 충격이 자연스럽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흰소리를, 최소한의 여론수렴과 절차도 누락시킨채 독단적으로 수행하는 ‘민주주의의 적’들을 비판할 따름이다.
사실 유시민의 주장은 SERI 와 KDI에서 주장한 것의 동어반복에 불과하며, 논의라고 보기엔 근거와 수치가 희박한 1차원적인 ‘주장’에 그치고 있다. 결국 반대파의 정치적 반발을 무마하려는, 단순한 비판을 위한 비판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