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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증인 - 40년간 법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연약함과 참됨에 관한 이야기
윤재윤 지음 / 나무생각 / 2021년 7월
평점 :
[서평] 잊을 수 없는 증인 - 윤재윤(前 춘천지방법원장)
"40년간 법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연약함과 참됨에 관한 이야기"
법조인들이 쓴 책을 읽으면 그분들이 한결 같이 말하는게 있다. 약자를 보호하고 다수의 권리를 보호하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이 공평/정한 시선으로 모두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다. 원리 원칙에 의거한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법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사를 판단한다는게 때론 무정하고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2019년에 소품집을 작성했을 때에는 "법의 악용"을 집중적으로 다루었고, 소수 기득권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사회적 정의를 잃어버린 법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이번에는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솔직하고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고 싶었다.
이상주의의 현실화에 강하게 매료되었던 시절에는 법에 의한 정의의 실현 가능성과 실천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하였고, 영어적 어원 "justice"의 사법적, 판결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즉, 선과 악이 분명하게 나눠 이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을 쉴 새 없이 반복하기 시작하였고 내면의 갈등 상태에 빠져버린 나머지 타인에 고통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반복되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상을 선과 악으로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결국 사람들의 입장차에 의해 선/악이 갈리게 되는 일들을 접하기 시작하였고, 나 또한 "선별적 정의"와 "내 상황에 의거한 판단과 선택"에 벗어나지 못하는걸 느낄때면 그렇게 내 자신이 부끄러워 보일때가 많았던 것 같다. 결국 아노미에 빠져버린 내가 택했던 방법은 이해와 긍정 그리고 "그럴 수 있지"라는 주문을 반복하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면의 평화와 행복이 생겨나는걸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법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며, 법의 물리적 증거만으로 끝까지 알아내기 힘든 사람들의 눈물과 아픈 마음을 깊이 있게 들어다보려고 노력해왔음을 고백하였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본인을 되돌아보고 깊이 있는 성찰로 이끌어내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2018년에 "교사유감"이라는 주제로 소품집을 작성했을 때, 짧은 교직 생활을 되돌아보며 느꼈던 생각을 두서 없이 풀어냈던 기억이 있었다. 나의 생각과 판단이 지배하는 학급 문화에서 아이들을 "선/악"으로 규정하여 그들을 힘들게 하진 않았을까?
나라는 부족한 어른이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하고 내 감정에 충실했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좀 더 마음이 넓고 인간다운 어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에 남는 책 내용
-(p100) 최고의 책임감과 관용, 숨겨진 분노, 경박함... 나는 어디에 있나?
처음부터 무조건 유죄를 주장한 배심워들은 인간의 전형적인 약점 몇 가지를 보여준다.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은 소년에게 범죄경력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범으로 단정한다. '상습범은 거짓말쟁이고 쓰레기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증거의 의심스러운 점을 인정하지 않느낟. 자신의 심리적 충동에 철저히 지배당하는 사람도 있다. 소년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강한 증오심을 보인 한 배심원은 결국 가출한 아들에 대한 분노가 소년에게 투사된 것임이 드러난다. 숨겨진 분노가 판단력을 마비시킨 것이다. [중략]
이러한 모습은 배심재판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가정, 학교, 직장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똑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자기만 옳다면서 남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p120) 인간은 누구나 인간이기에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
오늘날 가장 큰 병은 문둥병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필요로 하지 않으며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육체의 병은 약으로 고칠 수 있으나 고독, 절망, 무기력 등 정신적 병은 사랑으로 고쳐야 한다. 빵 한 조각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사랑받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은 더 많다. 가장 큰 악은 사랑의 부족, 이웃에 대한 얼음과 같이 찬 무관심이다.
-(p129)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이 곧 자기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2007년 봄,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 추도식, 조승희의 추도석 문구 "네가 그렇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누구에게서도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아팠단다." 상처와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고통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연민의 마음을 갖는다. "무력한 사람에게 연민을 가질 때 약하고 위태로운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p158) 바바로 판사의 판결 "1999년 백인이 흑인을 살해한 사건의 재판, 피고인은 정당방위 주장했으나 배척당함. 징역 15년형 선고" "14년 후 판결이 잘못되었음을 공표, 재심을 열게 하여 그 판결이 편견에 의한 오판임을 법정에서 증언함"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자신에게 계속 물어야 합니다.
-(p162) 눈물 흘리는 정의, 30대 후반 남자 강도상해. 알고보니 아내의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 가정으로 꼭 돌아가야 할 피고인인데도 합의가 안 되거나 양형 기준에서 너무 벗어나 석방할 수 없는..
법이 눈물을 닦아주기는 어렵지만, 눈물의 현장에 있는 것은 틀림없다. 돈이 없어 합의를 못한 피고인의 집행유예가 어렵게 되자 피고인 대신 합의금을 내줄까 심각하게 고민한 판사, 피의자를 수사하면서 그의 딱한 사정을 알게 돼 남몰래 그으 가족을 도와준 검사나 경찰관..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다.
눈물을 흘리는 정의가 참된 의다. 재판 과정에서 좌절감을 느끼는 원인은 차가운 '정의'만 추구할 분, 따뜻한 '의'를 이루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리라. 이런 안타까움이 어디 재판에서만 국한되랴? 굳이 교직에 대입해보면 이런 경우일까? 1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면서 원리 원칙에 의거한 문화와 직에 국한된 관계성에서 비롯된 결말. 아이들의 행복과 성장보단 본인을 위한 직의 편안함과 보신이 먼저라면 따뜻함보단 차가운 기억으로 기성 세대들이 하나 같이 말해온 "선생님들 중에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어"라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을 내 삶과 연관 지을 수 있어 앞으로도 여러 번 읽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좋은 책으로 평을 내리고 싶다. 생각을 좀 더 정리하여, 필요시에는 추가로 컨텐츠를 만들어 서평을 완성해 가고자 하는 바람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증인"이 남긴 따뜻함을 마음 속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