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 이상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6
이상 지음, 김주현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약이 목에 걸린 듯하다.
책의 활자를 한 번에 모조리 털어 넣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스피린인지 아달린인지는 – 작가가 이 책을 아스피린의 목적으로 쓴 것인지, 아달린의 목적으로 쓴 것인지를 모르니 – 모르겠지만, ‘나’ 의 생활을 담은 활자들을 한 입에 말끔히 삼키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조금은 안타깝다 싶고, 조금은 외면하고도 싶다면 나는 무엇을 읽어 삼킨 것일까.
‘나’ 의 생활을 말하려 하면 나는 조금 괴로워진다. 그의 생활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반쯤 박제된 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유로이 허용된 공간은 집에서 자신의 방뿐인 채로, 아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그는 그저 그 좁아터진 자유를 ‘내 운명의 상징’ 이라 여기며 살아갈 뿐이다.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하는 것은 의미 없다 생각하기도 한다. 제가 모르는 남자들을 집에 들이는 아내에게도 분노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에 대가처럼 따라오는 돈에도 흥미 없다. 자존도, 자신도 없는 바싹 마른 생활이다.
이 기형적인 생활을 지속하며 그는 자신을 모이 먹는, 또 두꺼비 같은 모습을 한 동물로 묘사하면서 끊임없이 모욕하고, ‘부지런한 지구 위에서는 한시 바삐 내려버리고 싶’다며 자신을 포기하려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 생활에서의 탈출을 꿈꾸며 돈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는 장면에서 나는 절로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짧은 탈출은 아내가 준 약에 의해 다시금 가로막히고 만다. 약을 먹으며 ‘나’는 더 이상 어느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잠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아스피린과 아달린.
아스피린은 그를 낫게 하고 아달린은 그의 눈을 가린다. 아내는 남편을 위하여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 는 아내의 방에서 아달린을 발견하고 아내를 의심하지만, 곧 그게 미안해 사죄하고자 한다. 다만 그가 그 마음을 주고 받은 것은 폭력과 진실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확신했다. 아내는 남편이 눈 가리고 살기를 바란다. 아니, 적어도 그를 지푸라기처럼이나마 잡고 버티기 위해서는 그 약이 필요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아내는 옳은 선택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꿈 없는 삶을 그래도 살아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낫고 있다 자위하며 잠에 빠지는 것 말고는 없을 테니까. 진정 나아봤자 마주하게 되는 것은 폭력과도 같은 진실 뿐일테니까.
하지만 기어코 진실을 마주하게 된 ‘나’는 도망치듯 집을 나와 또렷한 마음으로 자문한다. 제 존재에 대하여, 살아온 삶에 대하여, 제 꿈에 대하여. 돌아오는 것은 처참하다. ‘모름’. 그런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또 저와 비슷하다.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 하’는 사람들과 ‘회탁의 거리’. 나는 조심스레 자문하게 되었다. 그 세상 속에 사는 나는 그와 다른가? 그를 보며 왜 조금은 외면하고도 싶은 마음이 들었는가? 사이렌처럼 울어대는 그의 날자, 날자, 날자, 하는 절규가 왜 듣기 싫었는가? 박제된 것이 날개인지 지느러미인지, 의문했는가? 나는 아스피린을 먹고 있는가, 아달린을 먹고 있는가. 눈을 뜨고 사는가, 눈을 떠야 하는가. 지느러미일까 두려운 것인가. 박제된 것이 어쩌면 우리인지, 무서운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