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범우문고 255
조명희 지음 / 범우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그는 원래 정(情)의 사람이었다’ 고 한다. 나도 그렇다. 고향에 찾아가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도 그렇다. 이 땅, 이 나라를 사랑하여 지키고자 한다. 나도 그렇다. 불의와 차별과 착취와…. 별별 부정에 뒤덮인 현실이 바뀌기를 바란다. 나도 그렇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그’ 와 같은가.
‘그’의 이름은 박성운 이라 한다. 아름다운 낙동강 변에 살며 누구보다 좋은 운수를 가지라 지어준 이름일 텐데 하필 태어난 때가 일제강점기. 하필 그 때 태어나 그는 아프게도 죽었다. 눈 감고 귀 닫고 살아도 되었으련만 꼭 용사처럼 독립하지 못 하는 것에 분개해 나서고, 일본이 주식회사랍시고 회사 하나 차려서 우리 농민 등골을 빼먹는 것에 분개해 나서고, 함께 돌보던 낙동강 변 갈밭을 함부로 갈취해간 것에 분개해 나서고, 우리끼리까지도 백정이며 벼슬이며 차별하는 그 무지에 분개해 나서고 했던 까닭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는 많은 것을 버렸다 한다. 작게는 감정, 직장, 고향부터 크게는 목숨까지. 또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는 수도 없이 되뇌었단다. ‘혁명가는 생무쇠쪽 같은 시퍼런 의지의 마음씨를 가져야 한다!’ 며. ‘우리는 다 같이 굳센 사람이 되어야 한다’ 며. 그렇게 그는 박성운이 아니라 투사로 살며 뭣 하나 바뀌는 것 없어도, 바뀌기는커녕 제 몸까지 못 쓰게 되어도 사랑하던 사람에게까지 ‘참으로 폭발탄이 되어야 한다’ 유언 남길만큼 굳세게 살았다. 사랑했다, 그리울테다. 박성운으로서 말고, 고통이겠지만 그럼에도 반항해야 한다, 불살라야 한다. 또 하나의 투사로서 말이다.
그런 그의 죽음에 오히려 더욱 힘내어 싸우고자 맘먹는 그의 애인은 또 어떤가. 본래 이름을 버리고 어느 혁명가의 이름을 달며 그처럼 되뇌었을 테다. 사회에 대하여, 여성과 남성에 대하여, 나 자신에 대하여, 눈물에 대하여, 모든 것에 대하여 혁명하며 살 것이라고. 그래 로사는 기꺼이 애인의 유언을 받아들인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저처럼 죽으라 들리는 그 말을.
지금까지 수백 수천 수만 수억 명의 박성운과 로사가 이 땅을 다녀갔다 한다. 이 땅뿐만 아니라 저어 머나먼 곳에까지 가서 이 작은 땅의 평화를 위하여 힘썼다 한다. 이름이 불리우고, 추억에 잠기우고, 약할 때는 울고, 아프고 두려운 것은 피하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건만 이까지 억누르고 오로지 미래를 위하여 혁명했다 한다.
그러면 나는 과연 ‘그’와 같은가. 그들과 같은가. 이런 글을 쓰면서도 피아노 곡조를 따라 흥얼거리며 따뜻한 방 안에 편하게 앉아 있는 나는 그들과 같은가.
같아질 수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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