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 / 돌베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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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등장은 우연일까?>
이 책엔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 '트럼프'가 등장한다. 그것은 21세기에도 여전한 초패권국가인 미국의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서 현대사회가 앉고 있는 탈진실적 징후와 상징을 미국사회에서 찾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만큼 중요하게 '트럼프'라는 사람의 개인적 특성 자체가 저자가 이야기 하려는 맥락(실재과 허구, 진짜와 가짜 사이의 경계와 구분이 흐려진)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트럼프가 말하는 거짓말, 사실에 거짓을 더해 변형한 주장, 근거없는 혐오와 두려움의 조장에 대해 정말 가열차게 비판을 가한다.(한 인물에 대해 이런 수준의 비판을 접하는 책은 오랜만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등장은 과연 우연일까? 단순히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별종으로 취급하면 끝날 일 일까?
저자는 트럼프를 넘어 미국사회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나치와 레닌의 역사를 오가며 본질적 차원에서 오늘날 현재 "진실"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조명하고 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자가 독재자뿐이던가!>
트럼프의 자아도취적 언행과 배제와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을 단순히 농담이거나 개인적 차원으로 한정해서 볼 수 만은 없다. 그의 말은 발언과 동시에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발언이 오늘날의 국가주의 ,정치적 부족주의, 탈구 현상, 사회변화에 대한 두려움, 국외자에 대한 혐오같은 현상의 '불'에 '기름'을 통째로 들이붓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저자는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그리고 그 과정자체와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 사실로 말미암아로 미국 사회가 실재과 허구, 진짜와 가짜를 구분이 희미해지는 진실과 객관적 실재의 죽음시대가 도래했음을 경고하는 듯하다.

트럼프는 거짓만큼이나 사실에 가짜를 끼어얹은 발언을 직접적으로 많이 하고, 또 그런 왜곡, 과장의 발언이 퍼져나가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 과정에서 사실과 진실에 대한 언어의 변형이 일어난다. 트럼프가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대중의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것이고, 또 그것이 곧 자신의 목표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 목표는 모두를 위한 합리성이나 선이아니라 권력과 부의 창출일뿐이다.

저자는 트럼프정부의 이런 양태를 역사를 거슬러 소비에트연방의 레닌이나, 나치스, 마오쩌둥의 중국에서 나타났던 것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그 시대 그 곳에서도 불행한 '언어의 변형'을 경험했다. 이들 사회는 독재자가 얼마나 신속하고 교활하게 언어를 무기화해서 비판적 사고를 억압하고 편견에 뿌리를 둔 증오에 불을 붙여 민주주의를 장악했는지를 보여준다.
트럼프의 모습은 마치 이들의 '대중 선동'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사실 전체주의 제국주의의 독재자와 민주주의 초현대사회의 대통령의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가 다소 생경하고 어색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가 '빅토르 세베스첸'은 레닌을 보고 '독재국가뿐 아니라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우리에게도 익숙한 선동가'라고 이야기 했다.
트럼프가 대중을 사로잡는 방식, 트럼프 행정부 그리고 공화당을 비롯한 우파가 그것을 용인하고 되려 강화시켜 나가는 모습은 시대와 체제를 불문하여 언어의 변형이 권력집단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트럼프의 당선과정과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그리고 당선이후의 여러 모습은 그것을 매번 증명시켜왔다.

<가짜의 생존전략:포스트모더니즘과 기술혁신>
언어의 변형을 통한 진실의 회피, 이성과 객관의 죽음이 이토록 빈번히 이뤄지는 것은 그것을 이끄는 세력(트럼프와 우파)이 포스트모더니즘과 기술을 악용하고 활용하기에 가능해진다.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은 낡은 인문주의 전통의 전복을 제안하는 반권위주의를 의미했다.
이런 움직임은 좀더 평등주의적 담론을 촉진했고 이전에는 권리를 박탈당했던 목소리들이 소리를 낼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공격적인 이론이나 틀렸다고 밝혀진 이론을 주장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특정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도 이 주장을 이용했다. 아니 악용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진실이 불완전하며 보는 관점과 상관관계에 있다고 말하는데 어떤 사건을 이해하거나 기술하는 타당한 방식이 단 하나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진실보다는 관점, 절대보다는 상대주의를 의미한다. 특정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진실을 왜곡하고 흐트리는 세력은 이러한 상대성과 관점주의 속에 자신의 야욕을 숨겨 전파함으로서 대중이,의심없이 받아들이고 한번 전파된 인식은 확증편향이 되어 확대재생산된다.
이 책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의 소셜미디어 여론 조작은 그러한 형태로 이뤄졌고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영향력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일부의 또는 단편적인 사실속에 숨겨진 거짓과 가짜는 사실인양 미국본토를 급습했고 트럼프가 야기하는 두려움의 무기화를 한 껏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상대주의를 악용한 탈진실이 허무주의와 혐오의 형태로 대중에게 전파되는 것의 유통경로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이다. 웹과 SNS는 그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탈권위와 집단지성 같은 공동체와 민주주의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허나 트럼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웹이 가짜가 진짜인양 둔갑되고, 혐오가 고삐뿔린 망나니 마냥 날뛰는 것에 촉매제가 되고 마는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나아가고 있는가!>
상대주의와 관점주의는 실로 약자를 인식하고 고착화된 권위에 저항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것은 모더니즘의 한계를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이름으로 변화발전시켜 온 것이다.
허나 그것이 악용되고 있는 트럼프의 시대는 그 어떤 가치도 스스로 굳건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그것이 너무 자명하고 당위적인 것이라 그외의 상황을 상상하지 못한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리라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물론 저자도 직접적인 민주주의의 붕괴를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 그리고 트럼프의 시대가 보여주는 여러 양상들은 민주주의가 언제나 굳건하지 않음을, 그리고 항상 변하고(변할수)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의 건국세대는 공동의 목표, 공동의 이해, 공동의 선을 찾으려는 노력과 그러한 인식, 사실에 기초하여 민주주의라는 보편적이고도 소중한 체제를 탄생시켰다. 상호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 이념은 갈등과 대립속에서도 하나로 나아가게 하고, 하나이진 못해도 배제와 혐오가 미쳐날뛰지 않는 최소한의 공존을 위한 인정과 다문화를 만들어내었다.
허나 지금의 트럼프 그리고 앞으로의 트럼프는 그 가치를 잘 유지발전 시키고 있다고 보여지는가! 그것은 단순히 정권 차원의 성과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속에 살아가는 사람과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와도 직결되기에 중요하다.
저자가 트럼프에 대해 이렇게까지 날선 비판을 가하는 것은 민주주의는 언제나 굳건하다고 믿는, 그리고 진실과 가짜의 구분에 무지한, 사실과 허구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보이는 반대급부의 문제인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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