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이토록 허기진 책이 있을까?

이토록 흔들리는 책이 있을까?

책을 덮기가 무섭게 밀려드는 허기에 그만 다시 첫 장부터 읽게 만든 책.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1945년 나치에 의해 파괴된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 거주 독일인들이 강제수용소로 유형을 갔다. 이 이야기는 그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경험담에서 시작된다. 함께 책을 내려고 했으나 그가 2006년에 갑자기 사망하고 상실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던 헤르타 뮐러. 일 년 후에야 헤르타 뮐러는 레오폴트 아우베르크라는 주인공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엮어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배고픈 천사가 밀어주는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그네를 타는 한 인간의 생을 목도하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열일곱.

가장 자유롭고 싶은 나이에 레오폴트는 러시아 수용소로 끌려간다.

"나라와 가족들에 대한 공포. 나라가 나를 범죄자로 가두고, 가족들이 나를 치욕으로 여겨 내쫓으리라는 이중 추락의 공포"라고 그는 말한다.

늘 자신이라는 침묵의 짐을 들고 다녔던 그에게 삶은 공포였다.

사실 그는 당시만 해도 동성애자임을 들키면 감옥행이었기에 그리고 그보다 가족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주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그에게는 러시아 수용소행이 기회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소설의 시작은 바로 그 수용소로 가기 위해 짐을 꾸리는 일로 시작한다.

그가 가져간 것 중 마지막까지 함께 살아남은 것은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할머니의 말이었다.

"너는 돌아올 거야는 심장삽의 공범이 되었고, 배고픈 천사의 적수가 되었다. 돌아왔으므로 나는 말할 수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라고 레오가 말한 것처럼 레오는 그 말에 끌려 되돌아온다.

극한의 추위와 사나운 배고픔, 향수병, 들끓는 빈대와 이 그리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아남으려는 자와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자 그리고 죽음을 택하거나 어이없이 죽음을 당하는 자들과 함께 지낸 수용소를 거쳐 일상으로 돌아온 레오.

그러나 떠났다 돌아온 이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변하지 않았다.

레오는 수용소에서 보낸 뼈와가죽의시간 동안 바깥세상에 대해 향수하고, 수용소에서 나와서는 수용소가 자신의 것이기를 강요하는 향수에 빠져 숨막혀 한다. 벽에서는 숨그네가, 가슴에서는 심장삽이 똑딱 소리를 내고 레오는 수용소를 그리워한다. 그는 잠 못드는 밤마다 의지와 상관없이 검은 트렁크를 꾸린다. 그렇게 수용소의 물건들이 찾아와 그를 괴롭힌다. 굶주림에서 벗어나고서도 굶주림에 대항해 글자 그대로 삶을 먹는 그.

육체의 허기와 영혼의 허기짐을 <숨그네>에서는 역사라는 인간들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처절하게 하나의 사건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와 그것이 여전히 다른 형태로 현존하고 있는지를 헤르타 뮐러만의 시적인 언어로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는 처연함을 더해주지만, 적나라한 현실이 역겹게 느껴지기보다 담담하고, 단어 하나 하나가 눈길을 오래 사로잡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이런 역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내 곁의 '배고픈 천사'의 존재에 대해 알려주는 경고이자 아름답고 진실된 이 이야기는 2009년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책을 덮는 순간 아니 펼치는 순간 수상할 수 밖에 없는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생명을 얻게 된 순간 우리는 그네에 오른다.

숨그네.

허기의 또 다른 이름 '배고픈 천사'

우리가 그네에서 내려오는 순간 '배고픈 천사'는 우리를 떠난다.

죽음이 아니고서는 '배고픈 천사'와 이별할 수 없는 우리.

우리가 살아보겠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숨그네'를 타다 지치기라도 할라치면

'배고픈 천사'가 와서 등을 밀어준다.

그렇게 우리는 끝도 없이 '숨그네'를 타야 하는 운명.

내 곁을 배회하는 '배고픈 천사'는 어떤 종류의 허기일까?

그것은 아마도 글이라는 허기인지도 모르겠다.

또 다시 굶주린 영혼을 안고 또 다시 책을 펼쳐드는 나를 보고 있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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