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이름 정하기
이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순전히 작가에 대한 호감 때문에 이 소설을 택했다.

'이랑'

내게는 음악하는 이랑에서 출발해, 영화 찍는 이랑으로 다음엔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이랑으로 넘어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음악에 담겨 있던 이야기들이 책으로 나왔구나 싶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그럼에도 이것은 엄연한 첫 소설! 그래서 호기심과 설렘으로 펼쳐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랑의 첫 소설 <오리 이름 정하기>는 총 3부로 1부의 <하나, 둘, 셋>, <오리 이름 정하기>, <똥손 좀비>에서는 낯설지만 유머러스한 첫 인상을 남기면서 2부의 <이따 오세요>, <섹스와 코미디>,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에서는 작가의 페미니스트적인 시선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마지막으로 3부의 <한국 사람의 한국 이야기>, <나는 오늘 들었다>, <깃발>, <나는 오늘 들었다>, <너의 모든 움직임을 인지하라>, <센세이숀-휏숀>, <증여론>에서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문제들에 대한 이랑의 시선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1부의 <하나, 둘, 셋>은 지금까지 봐온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이야기가 아닌 까짓꺼 좀비가 되는 쪽을 택하겠다는 주인공들의 역발상이 재미있으면서도 단지 '좀비'가 되기 싫은 것인지 '사람'으로 살아남으려는 그 안간힘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두번째 작품인 <오리 이름 정하기>는 신들의 천지창조를 마치 기업 내의 상하관계에 빗대어 일처리하는 모습처럼 그린 방식이 신선하면서도 우리와 별다를 거 없는 신들이 이내 안쓰럽기도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똥손 좀비>에서는 엑스트라로 살아가는 한 젊은이가 지하철 역 자살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판이 뒤바뀌고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흔들리게 된 고달픈 한 영혼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2부에서는 <이따 오세요>에는 잘못 배달된 콘돔 택배로 생긴 일련의 사건 사고 속에서 여자가 보여주는 통쾌한(?) 복수가, <섹스와 코미디>에서는 철저하게 남성향 포르노 만화를 시나리오화 해달라는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하는 영화 제작자에게 여성 시나리오 작가의 딜도를 이용한 통쾌한 거절이,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에서는 신에게 과감하게 도전과제를 던지며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 통쾌한 태클을 거는 그야말로 통쾌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마지막 3부에서는 웃음기를 살짝 걷어내고 좀더 진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한국 사람의 한국 이야기>에서는 각각 다른 이유로 엄마를 무서워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여자들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곱씹어 보게 되고, <너의 모든 움직임을 인지하라>에서는 숫자와 자본으로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속고 속이는지를 보며 혀를 차게 된다. 그녀를 예술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녀가 하는 예술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깃발>. 종교와 예술이 이렇게 닿아 있는 장르라니 이랑만의 비교분석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나는 오늘 들었다>에서는 정신과 상담을 해주는 독특한 이력의 선생님과 내담자의 이야기를 통해 신과 인생을 통찰하는 작가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센세이숀-휏숀>에서는 재개발 지역의 허름한 상점 하나를 친구 셋이 운영하게 되는데 이들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거기다 낯선 남자 하나가 이들 가게에 찾아오며 이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어떤 식으로든 여자한테 기대어 사는 한심한 남자들을 깔끔하고 화끈하게 그야말로 센세이숀한 휏숀으로 정리한다. <증여론>에서는 남자 때문에 인생이 꼬인 어머니, 어머니의 자매 그리고 어머니의 남동생의 아내가 때때로 모여 우는 것을 보며 그런 인생을 고스란히 물려받게 되지 않을지 걱정하는 내가 나온다. 이런 '나'를 우리는 참으로 자주 목격한다는 사실은' 추운 겨울 첫 차를 기다리며 스타킹을 벗은 내 다리에 난 소름'을 증여받게 한다.

각 단편마다 이랑의 독특한 생각과 깊은 고민이 다양한 매체에 관심을 갖고 표현해 온 그녀의 방식을 담아 놓은 것처럼 각각의 이야기가 자기만의 색과 스타일로 드러나 있다. 사회, 인생, 여성 , 신과 종교, 예술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바라보고 의문을 품은 이랑이 나름의 생각들을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 <오리 이름 정하기>

이랑.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저없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녀 안에 있는 두려움이 결국 글을 쓰게 만들었고 또 누구나 그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는 작가의 마지막 말에서 그녀의 깊은 진심이 느껴진다.

어쩌면 낯설게 보이고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내가 가진 생각의 폭을 넓히고, 내가 보기만 하던 세상의 면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볼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