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 -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 60주년 기념 작품집
다비드 칼리 외 19인 지음, 알료샤 블라우 그림, 슈테파니 옌트겐스 엮음, 김경연 옮김 / 사계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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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책 제목에 궁금한 마음이 가장 먼저 찾아온다.

이 책의 제목은 독일의 스무고개 놀이의 이름이라는데 이 책이 담고 있는 작품의 수도 스무개.

독일 아동청소년문학상을 받았거나 후보에 올랐던 작가 20명이 독일 아동청소년문학상 60주년을 기념해 지은 작품 스무개가 담긴 작품집이다. 이 작품집의 제목이 참 의미심장한 것이 작가들이 쌓아놓은 스무개의 이야기 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보지 못하던 것들을 하나씩 보게 된다.

20명의 작가, 20개의 이야기.

수수께끼 같기도 한 스무고개를 넘어가는 이 여정이 즐거울 것이라는 확신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확실한 책이라니 ^^

이야기가 스무 개나 되다 보니 등장하는 이들도 참으로 다양한다. 동물과 평범한 사람 혹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어떤 미지의 생명체들이 바로 그들. 그들을 중심으로 책 속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만나보자.

우선 첫 이야기의 주인공은 숀 탠의 '우리, 그리고 동물'에 나오는 앵무새와 돼지로 이들을 통해 동물과 인간의 기이한 공존에 대한 고개를 넘고 나면 또 다른 동물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동물의 다양한 언어를 가지고 만든 기발한 이야기 마르틴 발트샤이트의 '치릅!', 다양한 손님을 맞이하는 오소리와 족제비, 긴꼬리원숭이와 너구리가 나오는 톤 텔레헨의 '손님', 이바 프로하스코바의 '보일레와 자연 법칙'에는 거북 행성의 독재자인 거대 여왕 라우테를 물리친 보일레의 숨막히는 반란과 속시원한 결말에 만족스러울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마법과 상상을 더한 상상 속의 동물과 말하고 도망다니는 달콤한 빵과 과자 그리고 미지의 생명체가 나오는 이야기들. 뱅상 퀴벨리에의 '마법의 힘'에는 어느 순간 평범해져버린 내가 작문 시간에 만난 상상의 빨간색 개 덕분에 이야기를 하게 되는 마법의 힘을 발견하고 특별한 내가 되는 경험을, 마리스 푸트닌스의 '와이키키-달콤한 동화'에서는 제과점의 갈색 볼렌 소년과 하얀 머랭 소녀가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동화시키려는 각자의 종족(?)으로부터 도망쳐 행복한 지금을 맞이한다.

지금까지 만나본 존재들과 달리 우주에서 날아온 만나본 적 없는 미지의 우주 생명체가 등장하는 안드레아스 슈타인회펠의 '켄타우루스자리 알파별'. 태양의 폭발을 피해 우주인들이 내가 사는 별로 이주해 오고 이들을 집에 숙박시키는 프로그램이 시행된다.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우주의 손님은 어느새 내가 손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선물로 준비한 것 같다. 과연 나는 이 우주의 손님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불길한 우주 손님들로 기분이 가라앉았다면 미리암 프레슬러의 '회색 씨와 파랑 부인'을 만나보라 권하고 싶다. 회색 씨의 1월부터 12월의 기록을 따라 가다 보면 사랑스러운 로맨스를 만날 수 있다.

이번에는 바깥 세상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시선을 가지고 쓴 이야기들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을 만나보자. 예민한 육감을 가진 주인공 나는 사람들의 과거를 볼 수 있는 능력까지 생기고 부랑자들을 몰아내려는 어른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이야기 타미 솀-토브의 '나의 여섯 번째 감각', 한때 평화의 땅이었으나 지금은 분노의 땅인 고향을 떠나 자유의 땅을 찾은 데이비드 가족의 이야기인 로보트 폴 웨스턴의 '분노의 땅'. 자유의 땅에 도착했지만 그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제니 롭슨의 '태양은 여전히 거기 있다'의 아를리요는 새로 자리잡은 이곳의 추위와 사람들에 적응이 되지 않지만 기젤라를 만나 흐릿하고 작고 아주 멀리 있지만 여전히 거기 있는 태양을 발견한다. 로세 라게르크란츠의 '나의 벚나무'에는 아마도 아빠의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쫓기고 숨어 살아야 하는 존재가 비밀인 일곱 살 여자아이가 본래의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이야기이다. 이네스 칼란드의 '켑의 열매'는 신화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외부인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아름답게 서사하고 있다. 섬 최고 해녀의 딸인 엄마 카수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름다우면서 슬프다. '나의 벚나무'에서 자신의 나무를 심겠다는 희망이 '켑의 열매'에서는 켑의 열매가 달릴 나무에 꽃이 피어나며 미래를 꿈꾼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행복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키르스텐 보이에의 '나 , 운이 좋지 않아?'에는 어른들의 비교 지옥에서 증조할머니의 도움을 영리하게 이용해 벗어나는 열한 살의 빌헬름, 아나톨리아에서 이민을 와 드디어 자신만의 방과 책상이 생긴 의사가 되기를 꿈꾸는 열한 살의 아이젤, 시리아 난민이었다 지금은 독일로 와 컨테이너에 살지만 폭탄과 군인이 없는 곳에서 학교에 다닐 수 있어 운이 좋다는 열한 살의 아이샤, 유일한 가족인 아톰비와 헤어지지 않고 살 수 있게 된 사실과 아톰비의 뱃속 아빠인 군드와네의 장례식에서 배불리 먹어 운이 좋다는 아프리카 에지본데니에 사는 열한 살의 시펠렐레가 나온다. 이 아이들은 모두 열한 살이라는 공통점을 빼고는 모든 면에서 다른 상황에 있지만 하나 같이 자신들이 처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아낸다는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의 모습에서 어른들인 우리들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아이들이 몸 담고 있는 세상은 아이들의 입장에선 정말이지 희망적이지 않은 상황임에도 빛을 찾아내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말 경이롭다. 아이들에는 물론이고 어른들에게도 지옥 같은 전쟁이라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전쟁에 관한 보다 직접적인 체험담 같은 이야기인 페터 헤르틀링의 '폐쇄된 문'에는 1945년 온 세계가 전쟁으로 고통받는 당시 피난민이던 열세살 소년 페터에게 다가온 러시아 비밀 경찰 표트르가 등장한다. 그는 페터에게 별을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점차 친구가 되어 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공포스러운 존재일 뿐. 전쟁이 끝나고 폐쇄된 문 안 쪽의 것들을 보며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케 하는 씁쓸한 이야기. 이런 씁쓸함은 마르야레나 렘브케의 '파르동 봉봉'을 보며 달콤한 사탕 같은 거짓말을 단단하고 몸 전체를 향긋한 단내음으로 감싸줄 진짜 사탕 같은 용서와 믿음으로 바꿔주는 마법의 이야기로 달래보기를 바란다.

모든 관계가 쉽지 않지만 특히 가족 내의 갈등은 아이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 사춘기를 통과하는 문제아 형과 부모님의 갈등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동생의 이야기인 바르트 무야르트의 '너는 나의 모든 것'. 형이 떠남과 동시에 더이상 우리가 아닌 현실을 동생은 어떻게 헤쳐나갈까? 그렇게 아이는 가족이라는 껍질 밖으로 나온다. 한편 구두 상자 밖으로 나온 사람 이야기도 있다. 유타 리히터의 '한때 난 구두 상자에 살았다'에는 사랑을 잃고 쪼그라든 채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구두 상자에 스스로 갇힌 내가 어떻게 다시 구두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 어떻게 다시 사랑을 찾았는지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이 모든 시간을 지나 어느새 백 살에 이른 할아버님이 나오시는 이야기로 이 책은 끝을 맺는다. 수잔 크렐러의 '백 살'에는 멋진 선장의 미소를 지닌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의 백 살 생일파티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이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손녀가 나온다. 죽음을 맞이하는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죽음을 대하는 아이의 용감한 태도가 웃음과 슬픔과 함께 어우러져 당당하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작품은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중에 무엇보다 이야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다비드 칼리의 '우편함을 심은 남자'로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한 그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핀란드 여행 중 만난 숲 속의 우편함들 그리고 그 속의 책들을 단서로 시작된 추적의 끝에서 생각과 책의 여행을 꿈꾸는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 여행을 떠나고 싶고 내 곁의 책들에게 여행을 떠나게 해야 할 것 같고 여행을 떠난 다른 책을 만나고 싶어지는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가진 무한한 힘과 가능성을 해방시켜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의 우리가 상상이 필요할 때 그리고 때로는 상상하기 보다도 우리가 존재하는 현실 감각 자체가 떨어질 때마저 이 책은 유용할 것이다. 상상은 물론이고 현실에서 보지 못했던 것까지도 볼 수 있는 감각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문학의 힘을 나는 이 책을 통해 경험했다. 여러 작가들이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생각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해석을 다양하게 하는 데까지 이르게 해줄 것이다. 스무 개의 이야기 고개를 넘다보면 말이다. 참, 알료사 블라우 작가가 시각화해 놓은 멋진 그림들도 이 책을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주니 눈여겨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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