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신화와 진실 - 독소전쟁과 냉전, 그리고 역사의 기억
로널드 스멜서 외 지음, 류한수 옮김 / 산처럼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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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나치 독일의 범죄 행위에서 독일국방군이 자유로울 수 없었고 오히려 깊게 관여되어 있었단 사실이 1980년대 말부터 학계에서 조명을 받기 시작하였고 냉전 종결과 함께 국방군의 전쟁범죄 연구는 더욱 박차를 가해 그간 서구권을 지배하던 "깨끗한 독일국방군" 이론은 허구성이 낱낱이 파헤쳐 졌습니다. 볼프람 베테 저 [독일 국방군], 죙케 나이첼 저 [나치의 병사들] 등의 해외 서적들이 번역되어 출판되기도 했고, [서양 현대사의 블랙박스 나치 대학살]의 저자 최호근 교수분처럼 국내에서도 홀로코스트에 적극 가담한 독일군을 폭로하는 연구 결과물을 내놓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렇듯 나치 독일 그중에서도 독일국방군이 자행한 홀로코스트 연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된 바 있고 또 현재도 계속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독일군을 중심으로 한 전사 연구 역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오히려 홀로코스트 연구보다도 많은 주목을 받곤 합니다. 여전히 본인을 포함한 많은 취미인들은 독일군의 군복과 병기들을 좋아하며 그들이 참여한 전쟁, 수행한 작전을 독자적으로 분석하여 독일군이 통상적으로 동시대에서 가장 우수한 전투력과 효율을 갖춘 집단이었다 평가합니다. 이러한 취미인들의 연구에서는 독소전에 만연했던 나치 독일의 끔찍한 범죄 행위가 말소되거나 외면당하기 일쑤입니다. 덕분에 아직까지도 대중에게는 독일국방군을 "신사적이고 명예로웠던 훌륭한 전사들"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며 이는 학계의 주류 의견을 완벽히 역설하는 것입니다. 저자 로널드 스멜서와 에드워드 데이비스 2세는 본 책을 통해 현대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사라진 채 낭만화된 2차대전과 이것을 조장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저자는 군사 서브컬쳐 향유자들의 취미 활동에 깊숙이 숨겨진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나치 독일의 인종적 정치적 측면과 범죄를 회피하고 오직 영웅적인 신화를 떠받들어 낭만화된 전쟁을 즐기게 되는 모습을 말입니다. 책에서 지적했듯 직접적으로 독일국방군의 전쟁 범죄 행위를 부정하지 않더라도 정치적 맥락이 제거된 "순수한 군사사적 가치"에만 집착하는 것 역시 간접적으로, 미온적으로 충분히 그릇된 역사관에 동조하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독일군을 우상화하는 행위는 사회 내 인종주의를 강화하고 대중에게서 파시즘에 대한 경각심을 옅어지게 만드는 현상을 유발하는 원인으로도 지목됩니다. 저자는 미국 내전, 남북전쟁 이후 남부 연맹을 미국이란 연합국가에 다시금 통합시킨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패배한 대의" 신화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던 적이 이미 있다 지적합니다. 전쟁을 불러일으킨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 전투의 폭풍 속 위대한 싸움만을 주목하고 피해자들의 희생과 고통을 망각하는 모습은 미국 내전 이후 진행된 수정주의적 역사 편찬 과정과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아직까지도 은연중에 남부 연맹을 지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이들이 은연중에 극우 인종주의를 기저에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과연 독일국방군 팬보이 집단을 무결하게 취미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로만 여길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명백한 전쟁범죄의 주체이자 가해자 집단이었던 나치 독일과 그에 협력한 독일국방군은 "야만적인 볼셰비즘으로부터 유럽을 지켜야 했던 명예로웠던 전사들"로 탈바꿈했습니다. 비단 독일군을 중심으로 하지 않더라도 군사 분야에 낭만적인 감정을 이입하는 대다수의 밀리터리 덕후 취미인들께선 스스로의 시각을 자기반성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마련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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