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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과 아인슈타인 펠레 유어그라우著 곽영직, 오채환譯 지호刊

상대성이론 한가운데 던진 ‘수학폭탄’

● 아인슈타인이 시간을 공간으로 변환시켰다면
 괴텔은 시간을 사라지게 했다
 하지만 괴텔의 발견은 외면당하고 망각당했다
 이해받지 못한 도발인가 침묵의 음모인가?

▲ 괴델과 아인슈타인
펠레 유어그라우 지음. 곽영직·오채환 옮김. 지호 펴냄. 1만5000원

 70살 생일을 맞은 아인슈타인(1879~1955)에 헌정된 책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철학자-과학자>에 실린 수학자의 짧은 에세이 한 편이 상대성이론을 난감하게 만들고 말았다. ‘시간’이 문제였다. 가장 다루기 힘든 존재인 시간을 공간의 네번째 성분으로 바꿔 상대성이론이 제시한 4차원의 ‘시공간’ 세계에선 “시간은 사라진다”는 게 에세이의 요점이었다. 이 책의 원제인 “시간이 사라진 세상”은 이렇게 드러났다.

 문제의 필자는 나치를 피해 미국에 망명해 아인슈타인과는 프린스턴 고등학술연구소 동료이자 산책 동반자로서 지적 교류를 했던 수학자 쿠르트 괴델(1905~1978). 괴델은 인간 지성의 최고 걸작품으로 꼽히는 상대성이론에서, 다 잡았다고 환호했던 ‘시간’의 정체를 수학적으로 시험했고 그가 얻어낸 수학적 해는 ‘현실의 시간’은 여전히 인간 지성의 그물망을 빠져나가 있음을 드러냈다.

 아인슈타인과 물리학자들을 한때 당혹스럽게 했던 괴델의 발견은, 어찌된 일인지, 상대론 연구자들 사이에선 외면되고 철학자들 사이에서 소외돼 그동안 거의 잊혀 버렸다. ‘침묵의 음모’인가?

 괴델을 연구하는 미국 수리철학자 팰레 유어그라우 교수(브랜다이스대학)는 그의 저서 <괴델과 아인슈타인>(지호 펴냄)에서 그 문제적 에세이가 등장했던 무대를 20세기 초·중반 유럽과 미국의 물리학과 수학, 철학 분야에서 활약했던 거장들의 이야기로 확장해 ‘괴델의 발견’과 “침묵의 음모”를 되짚는다. 그렇더라도, 이 책의 중심은 옮긴이의 말대로 “괴델과 아인슈타인의 동반관계가 만들어낸 순수한 지적 드라마”다.

 철학자와 과학자들을 오래 괴롭혔던 알쏭달쏭한 ‘시간’의 개념을 상대성이론 안에 끌어들인 아인슈타인의 천재성, 그리고 철학을 낮추고 과학을 높였던 엄격한 논리실증주의가 팽배한 시절에, 오히려 철학적 사유로 대발견에 이른 철학자 아인슈타인의 면모가 지식의 격동기에 혁혁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뜻밖에 이야기는 다 끝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역동적인 ‘현실의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것은 무엇인가? 흐르는 것이 시간 ‘속’에서 흐르는 것이라면 시간 자체는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가? 흐르는 시간은 상대성이론 안에 완전하게 포획되었는가?

● 시간여행을 최초로 증명한 괴텔

▲ 아인슈타인은 시간을 공간의 성분을 지닌 기하학의 개념으로 바꿔 상대성이론에서 시공간을 해석했으며, 괴델은 그 상대성이론의 시간이 ‘현실의 시간’ 의미와는 다른 환상임을 드러냈다. 이들의 지적 드라마는 시간이 과학뿐 아니라 여전히 철학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사진은 1950년 미국 프린스턴에서 함께 지낸 수학자 괴델(왼쪽)과 물리학자 아인슈타인.

 괴델은 상대성이론의 바깥이 아니라 그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 상대성이론의 시간을 탐사했다. 거기에서 시간을 나타내는 수학기호 ‘t’에 관한 ‘뜻밖의 발견’이 나타났다. 시간에 관한 상대성이론과 철학의 한복판에 던진 “수학 폭탄”이었다. 이 책의 절정인 6장(‘영웅들의 한가운데서’)과 7장(‘대문자 T(진리)와 소문자 t(시간)의 스캔들’)에 집중된 괴델의 증명 이야기는 다소 흥분된 지은이의 목소리를 통해 극적으로 펼쳐진다.

 괴델이 상대성이론에 들어가 벌인 것은 무엇이었나? 그건 극한상황을 가정해 상대성이론을 시험한 수학적 사고실험이었다. 괴델은 상대성이론의 방정식에서 출발해 시간여행이 가능함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괴델이 거기서 찾은 ‘회전하는 우주’ 모형에서 시간과 공간은 물질 분포에 의해 크게 휘어 폐곡선을 이루며 과거·미래를 향한 통로가 존재한다. 그 속에서 과거의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일은 가능하다. 이 경로를 따라 우주선이 충분히 빠른 속도로 달리면 과거·미래의 어느 지점으로도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괴델은 시간여행에 필요한 정확한 속도와 연료를 계산해냈고, 거리와 시간도 계산했다.

 괴델은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증명한 수학자로 알려지게 됐지만, 지은이는 이것은 그의 증명이 지닌 본질이 결코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중요했던 건 ‘역설의 증명’이었다. “역설적으로 괴델의 생각에는 이렇게 빠른 우주선이 승객을 과거의 출발점으로 되돌려줄 것이라는 사실은 시간 자체가 환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괴델에게는 만약 시간여행이 있다면 시간이 없어야 했다. …상대성이론의 논리를 더 발전시켜 나가면, 그 결과가 시간의 실재를 해명하기는커녕 아예 제거해버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182~183쪽)

 여기에서 잠깐! 괴델 선생에게 묻자. 선생이 상대성이론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 의미에선 ‘환상’이며, 시간은 상대성이론에서 공간처럼 앞과 뒤 좌표에 찍을 수 있는 기하학적 개념으로 바뀌었음을 드러냈다면, 그렇다면 선생이 말하려는 시간은 무엇인가?

 아쉽게도 지은이는 괴델의 놀라운 증명이 지닌 의도와 의미는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괴델이 상대성이론의 한가운데에 ‘수학 폭탄’을 던졌고, 그 폭탄은 시간의 정체를 ‘실증 가능한 것’에서 ‘관념적인 것’으로 되돌려 증명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시간이 결국에는 세상의 가장 큰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괴델은 지적하였다. 한마디로 만약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실재라면 시간 자체는 단지 하나의 관념이라는 것이다.”(19쪽) 적어도 괴델의 발견에 의해, 시간은 아직도 인간 지성의 그물망 안에 포획돼 있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현대과학에 들어서도 과학의 발견이 철학적 사유의 길과 무관하지 않으며, 오히려 함께 나란히 길을 걷고 있는 풍경은 이 책에서 감상할 수 있는 색다른 과학의 풍경이다. 아인슈타인이 그러했고 괴델 또한 그러했다. 둘은 당시 기세등등했던 논리실증주의의 흐름을 거슬러 과학의 발견을 이어갔던 인물로 묘사된다. 물론 지은이의 심중에선 괴델이야말로 이런 흐름에 통쾌하게 한방 먹인 천재 수학자이자 철학자다.

 덜 알려진 상대성이론의 한 장면을 상세히 추적하고 ‘존재론와 인식론’의 대결 구도로 이야기를 풀어감으로써 지은이는 반전과 극적 구조를 이 책에 더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 최대 천재들 지적 향연도 볼거리

 이 책은 괴델과 아인슈타인 이야기의 배경으로 20세기 초에 내로라 했던 쟁쟁한 수학·물리학자들, 그리고 러셀과 비트겐슈타인 등 여러 철학자들이 등장하는 서구 지식의 격동기를 빠르게 보여준다. 특히 양자역학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의 발전, 그리고 양자역학과 벌인 아인슈타인의 경쟁과 긴장은 또 다른 볼거리다. 또한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시내 커피하우스들에 모여 토론에 심취하며 당대의 과학과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던 열정과 낭만의 모습들도 흥미롭다. 커피하우스의 토론자들 사이에선 실증주의에 반발했던 괴델의 침묵하는 얼굴도 언뜻언뜻 비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기사등록 : 2005-10-06 오후 06:24:06기사수정 : 2005-10-07 오후 03: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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