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하는 인간, 호모 프로스펙투스 - 오직 인간만이 미래를 생각한다
마틴 셀리그먼 외 지음, 김경일.김태훈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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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모 종이 지구의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신체적 능력은 당연히 아닐 것이다. 거대한 맹수는커녕 체구가 인간보다 더 작은 오랑우탄에게도 힘 대결을 이길 수 없다. 그것보다는 '아직까지는' 우주에서 가장 정교한 연산 장치인 우리의 두뇌를 기반으로 한 지능이 한몫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일련의 학자들은 다른 종보다 뛰어난 '예측' 능력이 호모 종에게 문명의 이기를 선물했다고 주장한다.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행위이다. 글이나 데이터로 존재하는 그 '기록'이 아니라, 때로는 상황에 맞게 가공되고 때로는 미래의 일을 위해 변형되는, 두뇌 속에서 복잡하게 일어나는 과정, 즉 행위를 의미하는다는 것이다. 덕분에 인간의 기억은 완전무결한 정교함을 지니진 못해도, 보다 나은 행동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사회화 과정에서 배웠던 이야기들을 토대로 과거가 아닌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기억뿐만 아니라 지각, 인지 등 인간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화학 작용은 '전망'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흥미로운 이야기를 선사한다.

<호모 프로스펙투스>의 시작에서 '사피엔스'는 인간의 염원이 담긴 단어라 말한다. '호모 하빌리스'나 '호모 에렉투스'에는 도구를 사용하고, 곧게 섰던 인류 조상들의 특징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다. 허나 '지혜로운'이라는 단어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지닐 수 있는 특징이 아니다. 되려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가능케 했던 그 인류 발달의 역사는 '전망'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미래를 상상하고 그려갈 수 있는 능력. 저자들이 현생 인류를 '전망하는 인간', '호모 프로스펙투스'라 부르는 이유이다.

책은 마틴 셀리그먼, 로이 바우마이스터, 피터 레일턴, 찬드라 스리파다의 4명의 저자가 돌아가며 각 장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마틴 셀리그먼은 '긍정 심리학'으로 이름이 높고 다른 학자들 또한 인지심리학과 뇌과학 분야에서 상당한 명성을 쌓은 학자들이다.

피터 레일턴이 인간의 뇌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화학적 기제를 '개인'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으로 '전망이론'에 대한 방대한 여행이 시작된다. 기억, 인지, 지각, 사고와 같은 과정들이 선사시대 때부터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설명하며 인지심리학의 기초를 쌓는다. 이때 저자들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는 인간만의 놀라운 행위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그 옛날에는 동굴이나 움집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는 가장이 얼음 호수에 구멍을 내고 물고기를 잡는 과정에서 '예측' 능력이 빛을 발했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지금의 행동이 당장 5분 후, 한 달 후, 1년 후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사고하고 예측할 수 있는 개인은 다른 개인과 격차를 벌리기 시작한다. 협상, 주식투자, 일상적인 업무 등 '전망'이 빠지는 곳은 없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앞서 생각하는 능력은, 과거에 다른 종과 호모 종의 격차를 벌렸듯 이제는 호모 종 간에도 격차를 만드는 요인이 된다.

개별적인 관점에서 '전망하는 인간'을 살펴봤다면 집단 속에서의 인간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사실 인간이 그리는 미래는 대부분 집단적인 측면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 인간이 미래를 예측하는 데 쓰는 경험적 데이터는 사회, 즉 문화 속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개인이 특정한 미래를 그리고 구축하려고 시도해도 온전히 원했던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그 미래는 집단이라는 거대한 복잡계가 함께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자들은 개별적 전망뿐만 아니라 집단 구성원 차원에서의 전망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전망'을 중심으로 인간의 인지 체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상세히 알려주는 책이다. 덕분에 심층적인 심리학에서나 배울 수 있는 이론들을 재미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더하여, 호모 종이 할 수 있는 '전망'을 통해 개인이 긍/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통제하고, 건설적인 삶을 계획하며, 집단이 더 나은 공동체가 될 수 있는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책을 덮은 후에도 5년, 10년 후를 세세하고 거창하게 계획하기보다는 당장 오늘 저녁 뭐 먹지를 고민하고 있지만, 미래를 그리고 실현시킬 수 있는 '전망'이 인류를 위대함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에는 동감할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다시 떠올려야만 다양한 사건으로 혼란스러운 현재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진정한 사피엔스로 가는 길, <호모 프로스펙투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웅진지식하우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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