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설계자들 - 세상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종족
클라이브 톰슨 지음, 김의석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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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코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뿐이다. 은둔자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세상은 은둔자에 의해 움직이는 듯 하다. 비트 뒤에 몸을 숨긴 채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된 프로그래머들이다.

오늘날 세상은 가히 프로그래머가 설계하고 건축하는 공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재의 물체보다 가상의 데이터에 의해 인간의 모든 거래가 발생하고 있기에 컴퓨터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그들이 없다면 인류는 갑작스런 퇴보를 맞이할 것이다.

<은밀한 설계자>는 좀처럼 이슈를 만드는 일이 없는 거대한 일개미 군단인 프로그래머의 삶을 다양한 관점에서 일반인의 언어로 풀이한 책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MS의 빌 게이츠, 구글의 래리 페이지 정도가 아니라면 우리가 아는 '유명한' 프로그래머가 몇이나 있는가. '스타'가 된 몇몇의 별종을 제외하면 프로그래머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코딩에만 몰두한다. 적어도 프로그래머의 삶을 잘 모르는 사람의 시각에서는 대개 그러한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업적을 마음껏 자랑하고 떠벌이지 않는 무리들치고 프로그래머들이 빗은 세상은 경이롭다. SNS를 사용하다 보면 사용자가 관심을 보이는 몇 개의 사진만으로 사용자의 취향을 완벽히 파악하여 홈 피드에 좋아하는 사진을 하루 종일도 띄워줄 수 있다. 덕분에 뉴스피드가 처음 등장한 후 즉시, 페이스북의 미국 젊은층 하루 평균 사용량이 40분 이상 증가했다. 벌써 10년도 전의 일이다. 페이스북의 뒤를 이어 요즘 세대의 SNS라 불리는 인스타그램의 경우 사용자를 매료시키는 기법은 더욱 발달했다. 재미난 사실은 그것 또한 결국 A 다음에 B, B 다음엔 C, C 다음엔 D를 놀라운 수준으로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배열한 언어를 컴퓨터의 방식으로 입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어다. 프로그래머들이 만든 코드는 전 세계 15억 명 이상이 페이스북을 이용하게 만들었고 대한민국의 2천만 명 이상이 배달 음식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유쾌한 일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보통은 '해커'라 불리는 '크래커'들은 남의 집에 침입하는 기술을 점점 더 발달시켜 국가의 주요 보안망을 뚫고 기밀을 유출하기도 하고 개인의 정보를 도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해커에 대한 재미난 사실이 등장한다. '해커'는 그저 새로운 일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을 뜻할 뿐이다. 사이버 범죄를 저지르는 악동이나 나아가 악질의 범죄자를 뜻하는 단어가 '크래커'이다. 오늘날 거대 IT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 중에는 해커 출신이 많다. 프로그래머의 역량을 시험하기 위해 유수의 IT 기업은 해킹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넷플릭스는 자신들의 컨텐츠 큐레이션 알고리즘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매년 해커톤을 연다. 실제로 기업이나 국가 기관 보안망을 뚫거나 이와 같은 크래킹을 막을 수 있는 정도의 역량을 지닌 '해커'들은 상당수 높은 연봉으로 기업에 스카우트 된다. '해커'든 '크래커'든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것이다.

실리콘 제국이 되어버린 실리콘 밸리의 악행을 고발하기도 한다. 소위 FAANG이라 불리는 기업들은 막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에게 더욱 매력적인 컨텐츠와 제품을 제공한다. 그들이 내놓은 값비싼 서비스는 소비자의 데이터를 더욱더 빠르게 수집하고 IT 공룡의 입장에서는 선순환인 시스템을 구축한다. 문제는 그들이 소비자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점차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현대의 인류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제공되는 컨텐츠를 곧이곧대로 믿는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후 불거진 페이스북의 데이터 유출 및 선거 조작 사태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가까운 훗날 실리콘 밸리의 공룡들이 현대인을 위협해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구글은 전 세계 검색량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고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까지 인수하여 사람들의 사생활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미 익숙해져버린 편의성을 무기로 그들이 지금까지와 다른 길을 걷는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프로그래머의 세계에 만연한 성차별적인 인식, 성과지향적인 분위기 등에 대해서도 새롭게 환기한다. 세상은 상당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상당수가 남성으로 구성된 '은밀한 설계자들'의 세계에는 프로그래머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을 정당화라도 하는 듯 시대에 역행하는 사고를 지닌 사람들 또한 많다. 저자는 이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건넨다.

저자의 말처럼 비트의 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인 프로그래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종족'이 되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은밀한 세계에서 실재의 모든 세계를 설계하는 그들. 이제 자신만의 세계만 신경 쓰던 시대는 끝났다. 적어도 우리 세계의 기둥부터 골격, 인테리어까지 모든 것을 설계하는 이들은 이해해야 한다. 프로그래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시대의 변화가 싹틀 것이기 때문이다. 은밀하게, 담대하게 세상을 바꾸는 프로그래머의 머릿속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은밀하게, 그러나 담대하게 세상을 바꾸다, <은밀한 설계자들>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한빛비즈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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