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 그리고 이순신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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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 우수사 원균과 전라 좌수사 충무공 이순신이 삐걱거리게 된 것은 원균이 옥포에서 해전을 벌이고 있을시 이순신에게 지원 요청을 하였고 이에 요청에 응했는데, 승전을 올린 후 함께 올리기로한 장계를 단독으로 올린 것이 시초가 되었다고 책에서는 서술하고 있다. 아마 책에서는 안 나오는 많은 신경전이 있을 것같아 이신경전의 내막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역사 속을 헤집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이럴 때 생기는 것인가.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 역사 편찬과정에서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사관으로 임명된 검열들중 사초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이는 <선조실록>을 편찬 시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사항이었고 이를 통해 역사를 기술하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다. 이후 정유재란이 끝난 후 45년이 흐른 1643년(인조210), 이식이 <선조실록>수정해야만 한다며 상소문을 올리고 인조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원균과 이순신의 뒤바뀌고고 모순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실제로<선조수정실록>은 모순 투성이였다.
이식이쓴<선조수정실록>은 문벌(이이, 이순신, 이완)중심의 기록이었고 이러한 사실은 문벌이 아닌 원균을 거짓으로 나쁘게 몰아가기 쉬웠다. 조선 때에도 자기파에 대한 비리가 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원균을 왜곡한 기록은 이러하다.
“임진왜란 초기에 도망만 다닌 인물로, 이후에는 이순신을 모함한 인물로 묘사하였으며,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패전하여 전사하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동안의 공적을 깎아내리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승자와 패자로서 역사에 남는 것은 큰 차이가, 그리고 많은 모순이 따르는듯하다.
원균이 겁쟁이이든 이순신이 간사하든 승자와 패자 사이이든 간에 확실한 것은 두인물은 서로에 대한 신경전은 어땠을지 모르나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바쳐 희생하는 진정한 조국을 위한 사람들이기에 이들의 공에 경건한 마음을 가지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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