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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아 읽은 에세이가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재밌게 읽고 나서, 이 책에서 언급되었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읽었다.

30대 이후, 40대 이후 여성들의 삶은 어떤 모양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유쾌하게 알려주는 책들이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노말’한 방식이 아니어도 된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가족을 꾸릴 수 있고, 요가나 필라테스 학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땡볕에 운동장에 나가 축구공을 찰 수도 있다. 그렇게 살아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행복할 수 있다.

이토록 전복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사소하고 일상적이다. 진지하면서도 산뜻하다. 이런 균형은 전적으로 작가들의 센스에서 비롯되는 결과이다. 비장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 꿰뚫는, 그러한 운동의 방식을 직접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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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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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타임용 소설을 읽고 싶었는데 딱이었다. 전개가 빠르고 뒤돌아보지 않는다. 질척거림이 1도 없다.

설정이 정교하지 못하다거나 개연성이 없다든가, 그런 결점들이 군데군데에서 돌출되지만, 큰 기대가 없다면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오쿠다 히데오가 뭐 언제부터 그렇게...... (생략) 어쨌든 장점도 많다. 일단 여성 인물들의 연대가 상호보완적으로 잘 기능하고 있어 편안하고, 결말도 상쾌하다.

가장 좋은 점은 무엇보다 가정 폭력 가해자에 대한 태도이다. 작가는 이 인물에게 쓸데없이 사연을 주지 않는다. 가정폭력범은 그냥 약자를 학대함으로써 자신의 손상된 남성적 권위를 손질하려는 악당일 뿐, 어린 시절의 상처가 어쩌구 아버지가 어쩌구 어머니가 어쩌구 하는 애처로운 사연 따윈 없다. 그는 그저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작가는 독자들이 그의 내면에 이입할 만한 경로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얼마나 깔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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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블루 컬렉션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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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카롤린 봉그랑

콩스탕스는 파리의 메닐센터 도서관에서 밑줄이 그어진 책들을 발견한다. 밑줄 그어진 문장들을 자신을 향한 연모의 메시지로 해석하기 시작한 콩스탕스는 그가 누구인지 찾기 시작한다.

책 소개에 실린 내용이 흥미로운 듯 해서 읽기 시작했으나 실상은 흥미롭지 않은 소설이었다. 책을 매개로 시작되는 로맨스지만 책이나 문학에 관한 이야기가 그닥 많지 않았다. 외로움과 고독을 오직 (판타지 형태의) 사랑으로만 극복하려는 주인공에 공감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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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스릴러 - 스릴러는 풍토병과 닮았다 아무튼 시리즈 10
이다혜 지음 / 코난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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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다 덕후. 스릴러의 덕후가 쓴 간략한 스릴러 입문서이다. 얇고 가벼운 분량이지만 알차게 들어있다. 스릴러 장르의 네임드 작품들이 고루고루 언급되어 있다. 앞부분에는 스릴러에 관한 개략적 논의가 있고, 그 다음부터는 각 장의 주제에 맞춰 작품들을 소개한 구성이다.

스릴러를 좋아하는 1인이지만 일본 스릴러는 상대적으로 덜 읽은 편이었다. 작가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야미스에 대해 궁금해졌으므로, 조만간 <갱년기 소녀>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이런 용도로 쓰면 좋다. 어떤 스릴러 소설을 읽어볼까, 할 때 이 책을 펴들고 고르면 된다.

˝그때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 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계보도 흥미롭다. 칙릿에서 트와일라잇 시리즈-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지나 여성 주인공의 심리 스릴러로 향하는 한 흐름을 짚어 내고 있다.

나 또한 평소 스릴러에 관한 나의 취향에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길티 플레져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사람이 죽고 다치니까. 나는 그것을 관음하고 있으니까. 저자는 스릴러 독자로서 견지해야 할 윤리적 태도에 대해 여러 번 강조한다. 마지막 장에서 실제 범죄를 다룬 논픽션을 소개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사실 어떤 태도로 스릴러를 창작, 소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를 범죄의 대상으로 전시하기에 급급한 수많은 한국형 스릴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여성 인물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로 나오는 스릴러를 더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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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서사시 -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까지> 근대 문학 속의 세계체제 읽기
프랑코 모레티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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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티는 다윈주의적 패러다임을 문학사 연구의 모델로 활용하고 있다. 서문에서 그는 라마르크의 진화론과 다윈의 진화론 사이의 차이점을 지적하며, 진화의 요구에 따르는 변이가 아닌 무작위적인 변이random variation개념에 주목한다. 역사가 무작위적인 변이와 필연적인 선택의 뒤엉킴이라면 문학사의 경우는 수사적 혁신과 사회적 선택의 뒤엉킴이라는 것이다.

문학사에 등장한 수사적 혁신들, 『근대의 서사시』에서 다루고 있는 변종들, 즉 서사시가 멸종된 후에 등장한 서사시들, 그의 표현에 따라 다시 말하자면 백과사전적 세계텍스트들은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따라 나타난 진화의 결과물인 동시에, “극히 무책임하고 자유로운-극히 무계획적인-수사학적 실험의 산물”(44)인 셈이다. 저자는 이 수사학적 실험들이 아무런 의식적 기획이 없는 상태에서 말 그대로 “무작위적”으로 탄생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예견불가능한 이데올로기”(96)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우연히 나타난 불협화음이 다른 음들과 조화를 이루는 순간, 브리콜라주와 재기능화가 일치를 이루는 순간, 그 우연한 순간에 문학사적 진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진화는 “우발적인 실험들, 수사학적 족쇄들, 예견할 수 없는 전환들의 뒤범벅에 의존”(97)하고 있으므로, 의식적인 담론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에서 (모레티가 말하는) 모더니즘적이다.

그러므로 이 우연하게 등장한 수사적 혁신은 실패의 가능성을 언제나 수반한다. 저자는 지금까지의 문학 비평이 견지해온 “동질성에의 숭배”(190)를 비판하며, 『파우스트』나 『율리시즈』와도 같은 위대한 정전들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점을 과감히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함들을 감추기보다는 “근대적 서사시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바라보자”(24)고 적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은 그가 제시한 다윈주의의 패러다임에 완전히 조응한다. “다윈주의야말로 형태적 불완전성을 진화적 경로의 증거로 보기 때문”(24)이다. “기술적으로 혁명적인 작품들은 내적으로 불연속적으로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결코 일관되고 멋지게 융합된 명작이 될 수는 없다.”(191) 즉, 근대적 서사시들에 내포된 분열과 불균형, 자족적이지 못하다는 결함 등은 역사적/시대사적 흐름에 따라 진화하고 있는 문학사의 변화 과정을 증명해내는 증거인 셈이다.

문학의 형식(장르)를 종種으로 은유하여 사유하는 모레티의 시도는 흥미롭다. 다윈주의적 패러다임은 모레티의 이론에서 분명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어디까지 적용이 가능한가? 문학사의 진화에 있어서 무작위적인 변이-실험적 수사학은 얼만큼 우연적인가? 어디까지가 우연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기획인가? 그것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또한 문학사의 변화과정에 다윈주의를 적용할 수 있다면, 적자생존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가? 경쟁과 자연선택은? 문학 장르들 사이의 적자생존의 의미는 무엇인가? 진화는 진보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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