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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 칸트 3대 비판서 특강 ㅣ 인간 3부작 1
백종현 지음 / 아카넷 / 2018년 11월
평점 :
머리맡에 두고 읽고 싶은 책
칸트철학, 또는 칸트가 저술한 책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하는 것으로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하나, 대학 철학 강좌에서 수업을 하던 노(老)선생님께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 잠에 들기 전에 머리맡에 순수이성비판을 두고 읽으면 잠에 들기 쉽다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있다. 책의 전개가 논리적이고, 명징하고 투명한 글의 스타일 덕분에 읽고 나면 헝클어져있던 머릿속이 말끔해진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믿거나 말거나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순수이성비판이란 책이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수면의 질(?)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둘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973년의 핀볼”에는 심심찮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등장하는데, 번역가인 주인공이 침대 머리맡에 두고 읽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어렵기로 손꼽히는 철학책을 일상에서 읽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이것도 대중문화에서 소비되는 철학의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정말 일반인도 자기 전에 머리맡에 순수이성비판을 두고 소설책을 보듯이, 하루에 조금씩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인간이란 무엇인가 -칸트 3대 비판서 특강>은 앞서 언급한 나의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는 책이다. 이 책은 일반인을 상대로 한 특강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칸트의 3비판서에 대한 개괄적인 해설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구술된 강의를 다시 글로 정리한 강의록이기 때문에 챕터가 끝날 때마다 관련 질의응답을 수록하고 있으며, 말미에 토론 대담도 부록으로 실어 더 생각해볼 거리들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 책은 아무 부분이나 집어서 보기보다는 책의 순서대로 읽는 것이 올바른 독서법일 것 같다. 이 책이 염두에 두고 있는 독자는 칸트와 인문 교양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소위 ‘힐링’과 ‘지대넓얕’ 류의 유사(類似) 인문학 상품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 책은 칸트를 읽고 싶은 마음으로 충일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진지한 교양인 독자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키워드는 ‘비판’과 ‘초월’ 그리고 '이성‘이다. 칸트 철학은 흔히 비판 철학이라고 불리고, 초월 철학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내가 이해한 칸트의 비판 작업의 의의는 인간 능력의 범위와 사고의 영역을 명확하게 하여 사태를 올바르게 분간하려는 데 있다. 칸트 철학이 탁월한 이유는 비판의 정당성을 단순히 외부에서 구하지 않고, 비판하는 인간 자신 안에서 구하는 데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비판의 초월성은 이성적 존재자인 인간의 자기정체성을 구성한다. 즉,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최종적인 답변은 그러한 질문을 묻는 활동 속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책을 읽을 때 조심해야할 점은 이 책을 통해서 원전 읽기를 대체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저자도 그러한 점을 의식하여, 원전 읽을 때 유의해야 할 주요 용어들의 개념 설명과 한국어 번역에 대한 설명에 큰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칸트의 3비판서를 읽기 전에 또는 읽으면서 함께 침대 머리맡에 두고 볼만한 책인 것 같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완독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