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시인이 온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김순현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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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과 절망사이에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에서 주인공 미자 할머니는 시를 배우고자 한다. 자신의 손자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눈앞에 두고도 외면한 채 계속 세상의 아름다움만 보고자 시를 배우려고 한다. 현실을 직면하지 않고, 거짓 아름다움만 보고자 하는 미자 할머니는 시가 써지지 않는다고 한숨을 쉰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세상과 자신을 직면하고, 아픔을 받아들인 후에 한 편의 시를 완성하고, 자신이 시가 된다.

 

월터 브루그만의 마침내 시인이 온다를 읽으며 미자 할머니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저 아름다움만을 말하는 미자 할머니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축소된 심판과 은혜를 저자는 환원주의라 칭하며, 통렬히 비난한다. 냉정한 심판과 관대한 은혜라는 파괴적인 인식 속에 복음의 진리는 심하게 축소되어 버렸다. 이로 인해 죄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지를 상실하게 만들었고, 이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애달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간단한 은혜로 만들었다.

 

설교자는 이런 축소된 과정을 들춰내고 환원주의로 인해 뻔하게 보이고, 묻혀 있는 진리를 들춰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럴 때 진정한 죄책과 치유를 경험하며, 치유를 맛보게 됨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저자는 두리뭉실하게 표현하여 그 자신도 환원주의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현실 중에서도 경제적인 측면을 거론하며 우리의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2장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친교를 보여준다. 모두가 동경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신기루와 같은 진정한 친교를 회복해야 한다. 영화 에서 미자 할머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계속해서 겉돈다. 그녀는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그것은 생뚱맞고 이상한 이야기로 들린다. 영화의 말미 손자를 고발하고 난 후 형사와 배드민턴을 치는 그녀는 처음으로 누군가와 교감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신앙적 언어에 익숙해진 우리는 기쁨과 신앙을 긍정적인 마음과 자신의 만족으로 바꿔버렸다. 하나님이 주도하여 하나님의 담화로 진정한 소통과 경청이 일어나는 친교가 일어나도록 설교자는 열어주어야 한다. 탄식시를 통해서 저자는 설교자가 침묵하는 회중을 깨워야 하고 형식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으로 변화시켜야 함을 보여준다. 고통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신실하시고 보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야 하는 책무를 설교자는 지녔다.

 

3장은 왜곡된 복종을 회복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저 뻔한 덕목, 혹은 지나치게 두려운 짐이 되어 버린 복종의 참 뜻을 설교자는 일깨워 줘야 한다. 복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경청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하는 것이 복종하는 삶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경청을 방해하는 요소로 가득하다.

 

영화 에서 미자 할머니는 다른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자꾸 도망가거나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집에 돌아가면 만나는 손자를 통해 비루하고 끔찍한 현실을 맞이하지만, 계속 도망을 간다. 합의금을 줘야 하지만 그녀는 돈이 없다. 이런 현실을 도피하려는 마음 때문인지 그녀는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희생당한 소녀의 사진을 보고,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그녀는 비로소 울음을 터뜨린다. 죄와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픔을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에 경청하지 못하는 영화 속보다 더 영화 같은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저자는 경제적 불균형 속에 곤경을 당하면서 탐욕을 부리기에 하나님께 경청하지 못하는 우리임을 알게 한다.

 

설교자는 이 불균형을 깨뜨려 경청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삶임을 알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종은 새로운 상상력을 일으켜 우리의 현실 세계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이 같은 해석은 설교자의 역할임을 저자는 천명한다.

 

마지막 4장에서 저자는 자유에 관해 이야기 한다. 다니엘서를 예로 들면서 설교자는 이런 세상에서 불순응의 삶이 아닌 대안적 정체성을 가지고 자유와 힘과 용기를 일깨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대안적 자유를 설교자는 시로 노래야 함을 말한다.

 

미자 할머니가 느꼈던 시의 아름다움과 현실의 절망을 이 책을 통해서 나 역시 통렬히 경험한다. 진정한 용서, 친교, 복종, 자유를 하나님은 보여 주시지만, 뻔한 종교적 언어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설교자는 이것을 다시 들춰내어 이 놀라운 보석 같은 진리를 보여줘야 한다. 이런 놀랍고도 절망스러운 책무를 설교자가 해야 한다. 그래서 설교자는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 시가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설교자는 시인이 되어 노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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