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초기 퍼포먼스 비디오의 이 반복성은 때로는 정신분석학적으로, 때로는 미니멀리즘적 제스처로 해석되곤 한다. 반복은전자에서 어떤 잃어버린 것의 실패한 반복, ‘억압된 것의 귀환‘
으로 이해되며, 후자에서는 자본주의 대량 생산 논리의 퍼포먼스적 번역으로 이해된다. 어느 쪽이건 반복은 결국 현대 사회의 ‘증상‘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까? 실패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구축하는 부정성의 미학을 넘어서는 방법은 없을까? - P21

인쇄물이 통일된 문화로 길들여진 것들을 대변한다면, 목소리는 각기 다른 특성이 살아 있는 개별자로 감각된다. 그 고유함때문에 목소리는 그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귀속된 것이었다. 그런데 축음기는 실재하는 목소리를 저장하여 그 목소리의 주인이 부재함에도 소리가 살아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계였다.
초기에 축음기에 대해 혐오의 반응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로부터 살아난 목소리가 죽음 이후에도 살아 있는 정령에 대한 미신 같은 억압된 비이성적 신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물론축음기의 발명과 함께 등장한 음반 산업은 가장 이상적인 소리들, 즉 음악이나 노래를 중심으로 위계를 만들어 소리에 담긴개성을 새로운 문화적 가치 체계로 유입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아름다운 노랫말과 목소리의 조합이 녹음과 재생이라는 통제된 시스템 안에서 소비될 수 있는 것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리의 자동 생산(또는 자동 재생)의 매체는 항상억압되었을까? 세상에 나오면서 동시에 사라져 버리는 소리는인간이 저항하고자 하는 시간의 무정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존재나 그 형상을 보존하고자 하는 욕망 만큼이나 소리를 저장하고 싶은 욕망도 크지 않았을까?‘ - P36

이에 반해 소리는 자동적으로 의미화가 되거나 자연스런 상상으로 커버되지 않는 특수한 감각이다. 우리가 어떤 텍스트를 눈으로 읽을 때 단어 안의 모음이나 자음 등에 작은 오타나 음절의 순서가 바뀌는 등의 오류가 있어도 잘 알아채지 못하곤 한다. 읽기 과정에서 우리의 감각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의미에 따라 움직이면서, 그 의미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작은 오류들을 건너뛰고 지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텍스트를 낭독한다면 달라진다. 특히 내 ‘눈‘으로 읽지 않고 다른 사람이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내가 듣고 있다면, 우리는 좀더 쉽게 텍스트의 의미와 관계없는 소리의 특징들에 주목하게된다. 글로 적힌 텍스트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 억양이나, 외국인들에게 특별히 나타나는 발음의 특성들(예를 들면 동양인이 잘 구사하기 힘든 R과 L의 차이 등)처럼 분명하게 ‘감각’의영역에 속하는 특성들이 두드러진다. 배우들의 개성 있는 목소리는 표정과 같은 시각적 표현보다 더욱 진실된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목소리는 연기력의 직접적인 바로미터로 여겨지기도 한다.
목소리는 그 시각적 주인을 넘어서 가장 강력한 진실을 가리키곤 한다. 모든 것이 지금-여기에서 현재적으로 벌어지는드라마에서도, 결정적인 진실이 드러날 때는 더 이상 존재하지않는 과거가 소환된다. 이때 진실은 뮤즈의 목소리들을 통해전달되곤 한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2014년 영화 「피닉스](Phoenix)에서도 목소리가 진실을 외면하던 모두에게 비극적인 깨달음을 되돌려 주는 역할을 한다. - P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병의 와인만으로도, 뜻하지 않은 장소와 불현듯 살아난 말이기폭제가 되어서, 유정 자신도 예상치 못한 어느 날에, 폭풍 뒤에남는 압도적인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어느 날에, 아주 오랫동안유정을 파먹던 그 마음을 실행할 수도 있다는 걸 유정은 알았다.
그런 순간에 자신이 아끼던 어떤 것도 자신을 붙잡아주지 못할거라는 걸 유정은 알고 있었다. 때마다 손질해 쓰던 캄포 도마도,
손이 자주 가던 아이섀도도, 드물게 마음에 들어서 SNS에 올려둔자신의 모습도, 당장이라도 쓰고 싶어서 마음을 부풀게 했던 다음의, 그다음의 소설들도, 소은이 스케치북에 적어준 사랑한다는 말조차도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걸, 그 순간에 언제든 질 수도 있다는 걸 유정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서, 유정은 계속, 계속, 소리조차 나오지 않아서, 계속, 가슴을 쳤다. 유태도, 흡연 부스도, 어떤 것도 이젠 보이지가않은 채로, 서 있는 것인지, 무릎이 꺾인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없는 채로, 계속, 가슴만 내리찍었을 뿐인데, 찍어버렸을 뿐인데,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찍어버렸을 뿐인데… - P2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몸안의 모든 수분, 모든 피를 빼내고, 모든 습기를 말리고, 비틀고, 보이지 않는 입자가 될 때까지 갈고 갈아서, 완전히 부수어서,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없애버리는 것, 몸을 없애는 것. 이 지긋지긋한 몸을 없애는 것. 이해받지 못하는 몸을 없애는 것. 유정이 오랫동안 원해온 것은 그것이었다. - P269

반병의 와인만으로도, 뜻하지 않은 장소와 불현듯 살아난 말이 기폭제가 되어서, 유정 자신도 예상치 못한 어느 날에, 폭풍 뒤에남는 압도적인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어느 날에, 아주 오랫동안 유정을 파먹던 그 마음을 실행할 수도 있다는 걸 유정은 알았다.
그런 순간엔 자신이 아끼던 어떤 것도 자신을 붙잡아주지 못할유정은 알고 있었다. 때마다 손질해 쓰던 캄포 도마도,
손이 자주 가던 아이섀도도, 드물게 마음에 들어서 SNS에 올려둔자신의 모습도, 당장이라도 쓰고 싶어서 마음을 부풀게 했던 다음의, 그다음의 소설들도, 소은이 스케치북에 적어준 사랑한다는 말거라는조차도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걸, 그 순간에 언제든 질 수도 있다는 걸 유정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서, 유정은 계속, 계속, 소리조차 나오지 않아서, 계속, 가슴을 쳤다. 유태도, 흡연 부스도, 어떤 것도 이젠 보이지가않은 채로, 서 있는 것인지, 무릎이 꺾인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없는 채로, 계속, 가슴만 내리찍었을 뿐인데, 찍어버렸을 뿐인데,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찍어버렸을 뿐인데 - P2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제까지 등장한 청년세대에 대한 명칭들, 예컨대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밀레니얼세대, 생존주의 세대 등은 청년세대를 대상화하고 그들을 사회 구조의 수동적 구성물로 간주했다. 그러나 우리가 목격하고 있듯이 새로운 세대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의제를 가진 능동적 행위자로 부상하고 있다. 세대적 행위자를 사회 구조의 희생양이 아니라 그러한 구조에 개입하는 당사자로 보려면새로운 명명이 필요하다. 리베카 솔닛이 말하듯 "명명은 해방의 첫 단계를 구성하며 "이름을 바꾸는 일, 새이름이나 용어나 표현을 지어내고 퍼뜨리는 일은 세상을 바꾸려 할 때 핵심적인 작업"이다. 결국 세대론이란 "이름들의 전쟁에 다름 아니다. 나는 이들을 ‘페미니즘 세대‘라고 명명하고자 한다.p30

오늘날 많은 세대주의적 청년팔이는 ‘청년의 이익을 위한 것이 라거나 ‘청년을 알기 위한 것‘임을 스스로 주장하면서동시에 청년의 이미지들을 계속해서 생산하고, 청년을그 이미지 내에 가두는 작용을 한다. 젊은 층을 ‘청년’ 이미지의 함정에 가두고, 청년과 기성세대의 경계를 견고하게 만드는 경향을 넘어서, ‘청년‘을 이야기하면서도역설적으로 청년이라는 경계와 정체성을 교란할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청년팔이‘가 필요하다.p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핑크
오카자키 교코 지음, 이소담 옮김 / 고트(goat)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괴물같은 사랑, 매춘, 자본주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