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안의 모든 수분, 모든 피를 빼내고, 모든 습기를 말리고, 비틀고, 보이지 않는 입자가 될 때까지 갈고 갈아서, 완전히 부수어서,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없애버리는 것, 몸을 없애는 것. 이 지긋지긋한 몸을 없애는 것. 이해받지 못하는 몸을 없애는 것. 유정이 오랫동안 원해온 것은 그것이었다. - P269
반병의 와인만으로도, 뜻하지 않은 장소와 불현듯 살아난 말이 기폭제가 되어서, 유정 자신도 예상치 못한 어느 날에, 폭풍 뒤에남는 압도적인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어느 날에, 아주 오랫동안 유정을 파먹던 그 마음을 실행할 수도 있다는 걸 유정은 알았다. 그런 순간엔 자신이 아끼던 어떤 것도 자신을 붙잡아주지 못할유정은 알고 있었다. 때마다 손질해 쓰던 캄포 도마도, 손이 자주 가던 아이섀도도, 드물게 마음에 들어서 SNS에 올려둔자신의 모습도, 당장이라도 쓰고 싶어서 마음을 부풀게 했던 다음의, 그다음의 소설들도, 소은이 스케치북에 적어준 사랑한다는 말거라는조차도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걸, 그 순간에 언제든 질 수도 있다는 걸 유정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서, 유정은 계속, 계속, 소리조차 나오지 않아서, 계속, 가슴을 쳤다. 유태도, 흡연 부스도, 어떤 것도 이젠 보이지가않은 채로, 서 있는 것인지, 무릎이 꺾인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없는 채로, 계속, 가슴만 내리찍었을 뿐인데, 찍어버렸을 뿐인데,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찍어버렸을 뿐인데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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