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한 불행 - 부서지는 생의 조각으로 쌓아 올린 단단한 평온
김설 지음 / 책과이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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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다행한 불행>은 저자 김설의 삶에 관한 에세이다.

표지의 중년여성의 얼굴이 슬프기도 하고, 차분한듯 보이는 표정이 인생의 희노애락을 초월한 것처럼 보여서 어떤 책일지 궁금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의 유년시절은 편안하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에 관심 없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만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애끓는 엄마, 행복하지 않은 부모님의 결혼생활을 보면서 부모님의 이혼을 종용하기도 했다.


성인이 된 저자는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지만 아픈 이별을 겪은 후 이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 다른 사람을 만났다가 성급하게 결혼을 결심한다. 결혼 후 얼마지 않아 도박에 빠진 남편과 이혼했으나, 20년 후 재결합하게 된다. 언뜻 잘 이해되지 않기도 하고, 많은 일들로 인해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저자의 삶이 애달프게 느껴진다.


딸이 아직 젖먹이였을때 저자는 남편과 이혼을 선택한다. 이혼 후 남자가 없는 온전히 혼자인 느긋한 시간을 즐기리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터무니 없는 상상에 불과했다. 자신이 독해지지 않으면 뜨겁고 말랑하고 침 흘리고 빽빽 울어대는 작은 존재는 죽을 수도 있다는 절박한 시간들이었다.


저자는 많은 일들을 겪고나서 불행해지고 힘들어지면 안 된다는 이상한 신념을 없애고나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생을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혼이라는 일이 저자에게는 인생을 흔들만한 엄청난 일인데도 불구하고 남에게는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되는 경우를 겪고 나서 타인의 말에 신경쓰기 보다 자신의 삶을 가꾸는데 마음과 시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았기 때문에 타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더욱 신중하게 되었다.

이혼후 5년 뒤 남편은 추레한 모습으로 나타나 재결합하기를 원했지만 저자는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남편은 아이의 생일을 챙기거나, 어려운 상황임에도 용돈을 쥐어주고, 저자가 아프면 약을 사다주는 등의 지극정성을 15년 동안이나 지속한다. 더 잘하려고 애쓰지 않고, 안 되는 상황을 되게 만들려고 무리수를 두지도 않았으며, 반발심이 들 정도로 저자의 인생에 함부로 참견하지도 않은 채 시간은 흘렀다. 그 꾸준함과 적절함은 결국 저자의 마음에 균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혼 후 20년 만에 재결합하기로 한 것이다. 재결합 후 남편은 알코올 의존증이 쉽게 낫지 않았고,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선택도 자신이 했으니 뒷감당도 스스로 해야한다고 결심했다. 타인의 관점으로 저자의 선택이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인생을 끝까지 책임지기로 한 저자의 용기있는 선택은 박수받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저자가 남편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용이 흥미롭다. "젊을 때는 놀랍도록 대범한 면이 있었는데, 그래서 인지 사고도 크게 치고 크게 망했다. 남편의 아름다움은 망했을때 시작된 것 같다. 괴상한 콤플렉스도 없고 지나치게 자기애도 없고 불편한 자의식도 없다. 욕심도 없고 자산도 없고 거의 다 없다시피하니 가난이 당연하지만, 가난 앞에 조급함 마저 없다. 남편의 아름다움은 무에서 만들어진다. 무 앞에서 초연하기만 한 남편은 산에 살지 않을 뿐, 도인이다. 전후 사정이 이러하니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고달픈 삶을 담담하게도 써나간다.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도 그랬어"하며 위로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도 본능에 가까운 치유의 힘이 발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어떤 이들의 인생에는 늘 행운이 함께하는 듯이 보이지만, 저자는 살아 가는 일이 아픔이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움 뿐이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불행의 습격이 일면 자신 안에 무언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저자가 대리운전을 하며 운전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듯이,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며 말솜씨 재능을 발견했듯이 인생의 장애물은 곧 길이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불행에 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순간 우리에게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믿을 수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오랜 시간 저자를 힘들게 한 남편의 술주정과 가난에 늘 초연하기만 한 남편과 자신의 인생을 소재로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인생의 장애물을 길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남을 해치거나 스스로를 해치지 않는 한 어떤 사람의 인생이든 배울점이 있다. 저자의 삶을 통해 힘듦을 이겨낸 사람의 강인함이 느껴지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본받을 만하다. 삶이 곧 고통이라 했던가. 그 고통을 이겨내고 묵묵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해당 글은 컬처블룸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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