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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죽었다
박원재 지음 / 샘터사 / 2025년 10월
평점 :
박원재 저자의 도발적 진단, ‘예술은 죽었다’가
던지는 질문.
미술 기획자이자 갤러리스트인 박원재 작가는
이 책에서 '예술은 죽었다'고 도발적인
선언을 한다.
이 한 마디는 오늘날 현대 예술이 처한
위기적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단순히 현대미술의 문제점만을
시사하고 있지만은 않다.
오히려 예술이 삶의 본질적 영역에서
분리되고, 자본과 엘리트주의에 잠식되어
'죽어버린 상태'를 정밀하게 진단한다.
그리고 예술의 진정한 부활을 위한
철학적 사유를 펼쳐낸다.
저자는 예술의 죽음을 초래한 핵심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자본주의와 상품화이다.
예술 작품은 창작자의 영혼이 아닌 투기
자산이나 소유권의 증명서(NFT)로
전락한다. 예술이 삶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부와 계급을 과시하는 도구,
즉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둘째는 목표 지향주의와 엘리트주의이다.
예술이 소수 전문가의 난해한 언어가
되어버렸고, 관객은 감각적인 체험 대신
지식으로 예술을 해석해야 하는 피로감에
시달린다.
셋째는 미술관의 역설이다. 미술관은 예술을
보존하는 성소가 아닌, 예술을 동시대성에서
분리하여 박제하는 '무덤'이 된다.
예술이 본래 지니고 있던 삶과의 밀착성,
즉 라스코 동굴 벽화나 셰익스피어 공연에서
찾을 수 있던 생명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예술이 왜 삶과 분리되어
'죽은 예술'이 되었는지 역사적 흐름을
추적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예술은 현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모더니즘을 거치며 그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고 진단한다.
특히 앤디 워홀이나 마르셀 뒤샹 이후,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으나, 이는 곧 '모든 것이 무가치해질 수
있는' 역설을 낳았다고 분석한다.
예술의 외연은 확장되었으나, 그 내면의 힘,
즉 인간의 감각과 몸을 깨우는 본질적인
기능은 쇠퇴했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이 책은 비판에만 머물지 않고
예술의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바로 '몸과 감각의 회복'이다.
예술은 지식이나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움직이고 감각을 자극하며
세상을 다르게 보게 만드는 체험 그 자체로
돌아와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안토니 곰리,
올라퍼 엘리아슨 등의 현대 작가 사례를
통해, 예술이 어떻게 다시금 개인의 감각을
깨우고 나아가 사회적 연결과 공존의
플랫폼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결국 박원재 작가가 선언한 '예술은 죽었다'는
말은 냉소적인 종말론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재의 예술이 껍데기만
남았음을 선언하고, 예술이 진정으로 살기
위해 취해야 할 과감한 방향 전환을
촉구하는 뜨거운 선언이 된다.
예술은 더 이상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거나
투자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예술을 사랑하지만 멀게 느꼈던
대중, 그리고 예술이 나아가야 할 길을 고
민하는 모든 창작자와 기획자에게 던지는
가장 절실하고도 용기 있는 질문서이다.
예술은 죽어 있으나, 그 죽음을 통해 비로소
삶의 자리로 돌아와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강렬하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