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북 코스모스 주관 한국독서능력검정 시험을 보고 왔다. 내가 배정받은 반에 시험을 응시하러 온 사람은 나 포함 총 8명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사람들이 적었다. 내 또래거나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자가 6명, 나보다 나이 좀 있어 보이는 남자분 한 명, 중년을 넘긴 것처럼 보이는 나이 지긋하신 남자분 한 명. 다른 반 사정도 똑같았다. 감독관님은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하셨음.


나도 어젯밤에 시험을 보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긴 했다. 지정도서를 다 읽은 것도 아닌데 한 시간 반 걸리는 거리까지 가서 굳이 시험을 봐야 하나, 게으름이 스멀스멀 고개를 디밀었다. 상을 받으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이 시험을 통해 내가 읽은 책 내용도 다시 곱씹어볼 겸, 일찍 일어나 토요일을 보내볼 겸 다녀왔다.


난 작년 7월에 이 시험을 알게 돼서 7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28권을 읽었다. 원래 지정도서는 50권인데, 지정도서 중 읽고 싶은 책을 다 읽고 나니 다른 책이 읽고 싶어져서… 충분히 읽을 시간은 있었는데 다 읽지 못했다. 시험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1, 2회 기출문제도 훑어보고 갔는데 훨씬 난도가 높아진 느낌이다. 단답식 문제가 별로 없었고 줄글이라서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내가 읽은 책 관련 문제는 자신 있게 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어서 당황했다.


몇몇 다른 분들은 책 내용을 정리한 것인지 무언가 빼곡히 적힌 공책을 가져와서 시험 전에 읽기도 했다. 나처럼 책을 흐르듯 읽기만 했다면 풀기 좀 어려웠을 것 같다. 사실 나도 이 책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부분이나 짧은 감상을 적어둬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블로그에 독서 카테고리까지 만들어 놨었는데, 직장 다니면서 마음같이 되지 않았다. 6개월 동안 28권을 읽었으니까 한 달에 약 4.6권은 읽은 거야, 라고 그래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기억에 남는 게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평소에 꼼꼼히 책 내용을 공부할 수도 없을 거고, 박범신의 <소금>에서 큰언니가 클라리넷을 전공했는지 바이올린을 전공했는지 등의 세세한 부분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그러나 읽으면서 느꼈던 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그 순간에만 존재하다가 잊히는 건 아쉬운 일이다. 책을 그저 흐르듯 읽어내는 것도, 기억에 남는 구절을 사진 찍어두는 것도 좋지만, 그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읽기 시작한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의 저자는 서문에서 책의 ‘분석’과 ‘해석’의 차이점을 언급한다. 분석은 책의 저자가 의도한 바와 가치를 밝히는 것, 해석은 책을 통해 느낀 바를 통해 스스로 발전하는 것이라 했다. 책을 읽고 저자가 어떤 것을 전달하려고 했는가 분석도 해보고 더 나아가서 내가 느낀 점을 훗날에도 잊지 않고 삶이 풍요롭도록 끊임없는 해석을 해본다면 가장 의미 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독서능력검정을 통해 좋은 책들을 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책을 읽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게 뜻 깊었다. 앞으로도 똑같이 직장에 다니면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겠지만 이제부터는 읽은 후에 ‘해석’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것이든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용기를 내야겠다. 다시 이 시험에 도전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서 이번에 더 열심히 해볼걸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읽고 시험을 본다는 거, 참 신선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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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6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야 2015-06-06 20:39   좋아요 1 | URL
그쵸^^ 저도 우연히 알게되어서 무기력한 직장생활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도전해봤었어요. 나름 특별한 경험이었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