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한글판 (양장)
빅토르 위고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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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800페이지에 달하는 레 미제라블의 완역본이다.


경향신문 1면에 책 소개가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호기심과 책 수집욕에서 구매하였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침대에 스탠드불을 밝히며 

조금조금씩 읽어나가기를 한 달 정도, 마침내 완독하였다.


사실 내가 이제까지 짧은 소설로만 알고 있었던 '레 미제라블', 혹은 '장 발장'은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완역본의 극히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었다.


레 미제라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책은

프랑스 혁명에 가려져 현대에는 생소할 지 모르는 

1832년 프랑스 6월 봉기를 소재로 하여 '장 발장'을 주인공으로

당시의 역사, 전쟁, 종교, 정치, 사회, 문화, 정부 등을 고찰한 장대한 역사 혹은 휴머니즘소설이다.


혁명의 한복판에 있었던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

빅토르 위고는 자못 엄숙하게, 그리고 때로는 부드럽게 

자의 혹은 타의로서 혁명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는 수많은 인물들을 묘사하며

독자를 1832년 핏빛 봉기의 그 날로 이끌어간다.


이 방대한 소설 한 권에 들어있는 내용과 그 메시지는 사실,

콕 찝어 무엇이라고 단정짓기는 필자로서는 실로 무리이다.


다만 지금의 짤막한 책 소개를 빌어 인상깊었던 내용에 대해서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다.

사실 이 책 전반적으로 필자가 받았던 메시지는 '시대정신(진보)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다.


과거 프랑스 대혁명의 기억,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 워털루 전투 패전에 따른 보나파르트의 실각,

점차 과거의 지배적 위치에서 내려가는 종교, 프랑스 파리 특유의 유쾌함과 저항의 정서 등을 꿰뚫는 것은

일종의 진보라는 시대적 정신이었음을 위고는 믿었던 것 같다.

특정 사건, 인물들과 관련된 미스테리한 우연의 연속은 일종의 거스를 수 없는 힘에서 비롯되었음을

작가는 담담한 어조로 하나 하나 짚어나간다. 

당장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이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무엇을 위해, 그리고 그 무엇에 이끌려 가는 사람들.


필자는 한편으로는 당시의 일종의 낙관적인 전망이 무척 부럽다.


오늘날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혹자는 세기말부터 오늘날까지를 '생성의 시대'라 칭하였고 지배적인 사상이나 관념이 존재하지 않아

현대인은 끊임없이 방황하며 흔들릴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현실을 볼 때 이는 지극히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시대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특히 우리나라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오늘 어떤 글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전봉준 장군의 묘소로 보이는 곳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일종의 사설로 보이는 짤막한 글에서 필자는 동학농민운동의 원인으로 부정부패를 제시하였고, 

정의가 실종된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든지 다시 이러한 봉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나는 혁명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를 통해 조심스럽게나마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실종된 '정의'를 되찾고자 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흐르고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 책꽂이에 소장하며 읽어볼 책이 있다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다.

레미제라블은 시대를 통찰한 대 소설이며 어쩌면 우리의 현실이자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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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3
B. 파스칼 지음, 이환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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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TEPS 공부에 파묻혀 있다가도
잠시 쉬는 시간마다 한 쪽 한 쪽 음미하며 읽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진도는 많이 나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간단히 서평을 작성하는 것은
지금의 생각을 잠시라도 붙들어두기 위함이다.

팡세 제5편 현상의 이유, 192-(298)의 정의, 힘. 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정의에 복종하는 것은 옳고 더 강한 것에 복종하는 것은 필연이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힘없는 정의는 반대에 부딪힌다.
왜냐하면 사악한 자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힘없는 정의는 규탄받는다.
그러므로 정의와 힘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정의가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의로워야 한다.

정의는 논란의 대상이 되지만 힘은 매우 용이하게 식별되고 논란의 여지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의에 힘을 부여할 수가 없었다.
힘이 정의에 반대하고 그것을 불의라고 말하며 또 정의는 바로 자기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간은 정의를 강하게 할 수 없었으므로 강한 것을 정의로 만들었다(p. 105)."

오늘은 국무총리 후보인 이완구씨의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날이다.
이완구 국회의원은 총리 후보로서 각종 의혹이 불거지며 뭇 비판을 많이 받았으나,
간발의 차이로 현 정부 제2대 국무총리에 취임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여론은 분분하다.
필자의 주관에서 이를 대략 정리해보자면

한쪽에서는 
그는 "경제살리기" 기류에서 당정청을 이어줄만한 관록있는 인물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관리의 "도덕성"에서 이미 낙마했어야 할 인물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보기에 현 상황을 위 파스칼의 견해에 적용해본다면
힘은 경제력과 능력, 경력, 병역기피, 불법투기 등의 외적 징표이고
정의는 도덕성 혹은 윤리의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후자는 김영란법을 떠올려보면 명확해진다.
후자는 대중적 상식선에서 흔히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과정은 절차상의 하자는 없으며
국회의원의 표결을 거쳤으므로 대의민주주의의 형식적 요건은 충족하였다고 본다.

그렇다면 결과로 따졌을 때,
전자가 득세한 오늘의 현실은 기존의 힘없는 정의보다
힘을 곧 정의라고 칭하고 이를 공고화하는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파스칼이 살았던 시대상도 필자의 짐작으로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하등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릇된 정의를 참된 진리라고 부르짖고 다니는 자들과 그에 편승하는 추종자들.
그리고 이것이 하나의 공고한 시스템이 되고, 그것에 혼자만의 의문을 품고 그저 편승할 수밖에 없는 이들.

파스칼은 다시 말했다.

"정의와 진리는 매우 날카로운 끝과 같은 것이어서
우리의 도구들은 그것에 정확히 닿기에는 너무 무디다.
어쩌다 닿기라도 하면 끝을 으스러뜨리고 그 주변을 더듬으며
진실보다 허위를 짚는다(p. 62)

이 표현을 두고 문득 생각하는데,
우리는 우리의 도구를 대의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맡겨놓았고,
이들은 때론 혹은 자주 허위를 짚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아예 이럴 바에야
우리가 직접 진실을 찾아 직접 헤매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두서 없이 시작하여
두서 없이 끝나 유감이지만,
파스칼이 던지는 메시지는 참으로 깊고 심오하여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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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작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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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할까?

한 번 쯤 품어보는 의문에 관해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제도와 정치의 차이에서
불평등이 비롯된다는 것을 조목조목 주장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저서 '총, 균, 쇠'에서 각종 자연 조건의 차이가
오늘날의 각 나라의 불평등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주장과는 달리

본 저서의 저자들은 각각의 장을 이와 같은 논의에 대해 반박하고
국가 간 빈부 격차의 원인변수로 정치 및 제도로서 검증한다.

즉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가 특징인 국가는 단기적 성장은 가능하지만
지속적 성장은 절대 담보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이들 이론의 요체인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는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며, 공정한 경쟁이 가능케 돕고
신기술과 각종 기능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는 제도를 일컫는데,

후자는 다원주의적 정치권력 분배 및 법과 질서의 확립을 통한 
일정 수준의 중앙집권화와, 안정적 사유재산권의 토대를 마련하고 포용적 시장경제를
안착시켜 중장기적 국가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방대한 본 저서의 분량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주장은 놀라우리만치 명확하다.

필자 또한 도시행정학자의 꿈을 갖기에 앞서
'왜 어떤 도시(지역)는 발전하고, 어떤 곳은 저발전의 길을 걷는가'에 대한
이유와 대안을 찾기 위해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이번에 박원순 서울시장은 대대적으로 권역별 도시재생 모델을 발굴, 추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도시재생은 과거 재개발 방식과는 달리 주민들과의 수평적 관계,
상향적 방식의 참여 등을 통해 도시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이 또한 작은 범위에서 포용적 방식이라고 생각되는데,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이것이 시대의 기류이며, 서울 지역의 고른 발전을 담보해 줄 수 있으리라고 본다.

'포용적 정치제도와 포용적 경제제도'
알면 행해야 함이 지당하다.
만병통치약이 아닐지라도 미래에 대해서 밝은 전망을 제시할 수 있다면
이를 행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를 반영한 각종 정책의 향방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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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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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당시에 나는 원하던 일이 좌절되어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였다.

그래서 마음을 달래고자 책을 읽던 차였다.
그러던 중에 다산 선생님의 평전이 나온 것을 확인하고 바로 구매하였다.

다산 정약용에 관한 논문이나 각종 서적은 즐비하지만
평전은 거의 전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1표 2서(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는 이제까지 많은 조명을 받았지만
정약용 선생의 삶에 관해선 그저 위인전만 즐비하였다.

이번에 나온 다산 정약용 평전은 
평생을 그 분을 연구하던 분이 저술해서 그런지 각종 시구와
각종 일화에서 다산의 생생한 삶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언급하고 싶다.

필자는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산이 현대에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상념에 젖어드는 적이 많았다.

18년의 유배생활에도 불구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저술활동에 매진하고, 여러 사람들과 교류를 이어가는 그의 삶은 
추위를 견디고 피어나는 매화의 삶 그 자체였다고 말하고 싶다.
겨우 한 번 뜻이 좌절되었다고 끝없이 어딘가로 침전하던 본인의 태도를 많이 반성하고
자리를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물론 본 평전에 담긴 다산의 생각을 간과하기란 어렵다.
그만큼 오늘날 한국적 상황과 다산의 시기와는 시대만 차이가 있을 뿐
오늘날 관리와 국민들이 경험하는 일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다산은 당대 및 후대의 목민관들이 바른 정사를 펼치도록
각종 저서를 집필하였고, 이는 오늘날에도 이어져 왔는데
여전히 각종 비위가 끊이지를 않고 모함이나 잘못된 정사로
애꿎은 백성(국민)들만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목민심서'의 첫 번째 요체는 '율기'편인데,
'율기'편의 '청심(淸心)' 조항이야말로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필수불가결한 것이 아닐까.

"공렴원효성(廉願效誠)”
-공렴과 청렴으로 정성 바치기 원하노라-

다산이 28살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각오를 나타낸 이 다섯 글자의 시 구절에서
우리는 그의 평생에서의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비단 관리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 나의 스물 여섯 삶은 어땠고
앞으로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자문해본다.

책장은 덮었으나, 자주 책장을 열어봐야할 깊고 깊은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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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상식론 - 범우문고 249 범우문고 249
토마스 페인 / 범우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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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상식은 무엇일까?
사회적인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며, 그것이 사회 변혁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 

예전에 고세훈교수님의 '근대정치사상사' 수업을 수강하면서 처음 토머스 페인을 접하게 되었다.

애드먼드 버크에 필적하는 영국의 사상가이자 혁명가, 팸플릿 형태의 '상식론'을 집필 및 배포하여 미국 독립혁명의 불씨를 지핀 인물이라고만 알고 넘어갔다(으레 시험을 위해 그래왔듯이).

안암동으로 올라와서 2년 만에 다시 경향신문을 구독하고
한결 여유가 생겨 신문이나 각종 매체를 기웃기웃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이왕 하는거 모두가 잘 살면 좋지 않나?'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월급 인상도 좋지만,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게 더 좋지 않나?'
'돈 더 번 사람한테 세금 올리고 적제 버는 사람은 조금 줄여주면 안되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똑같은 인간이고 누군가의 가장이며 사랑하는 누군가일텐데 왜 저렇게 대할까'

그래서 문득 우리 사회의 상식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다가
토머스 페인의 상식론이 생각나 펼쳐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읽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옛 격언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의 국제정세에서 미국이 처한 상황을 읽은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필력에 감탄하면서도 종교와 자연에서 보편 타당하게 받아들여지는 원리를 상식으로서 연역해 낸 것이 무척 인상깊었다.
당시에는 존재적인 요소가 사회 전반에 널리 통용되고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이 팸플릿 형식의 글을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었으나 신과 자연, 과학이라는 한 때 존재로서의 영향력을 구가하던 요소들이 몰락해버린 지금의 현실에서 이와 같은 논리가 현실적으로 통할지는 한편으로는 아쉬운 의문으로 남았다.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는 오늘날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현재에도 펜이 칼보다 강할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려한 필력과 속도감 있는 논리의 전개는 지금에도 충분한 시사점을 갖는다고 본다. 가령 정부의 역할이나 통치에 관한 이념은 오늘날의 행정학의 가치에 있어 여전히 중요한 주제이다. 무엇이든 단순해야 수리할 때나 통치할 때나 좋다는 원리는 red tape나 지나친 관료제에 경종을 울린다. 또한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자유, 사유재산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할 지 모르는 그의 메시지는, 각종 사고 및 강압적 통치가 만연한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일종의 준거틀을 제공한다.

오래 전에 구매했던 책을 다시 펼치고 낱장을 넘기면서 오늘날에도 보편적인 상식이 있다면

모두가 납득하고 냉정히 현재를 바라볼 수 있는 본 저서와 같은 내용의 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랐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욱 허구적인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으로 전락해버린 듯 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상식은 무엇인지 자문해본다자주국방(전시작전권환수문제), 안전(부처 신설이 아닌 안전이라는 정부책무성의 실현), 복지(법인세 감축과 보편세 증액이 아닌실질적으로 모든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 정부이념(경제나 성장 제일주의가 아닌 모두가 행복하고 살기 좋은 대한민국등등


모두가 함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한다면 좋지 않을지. 그것이 나의 상식이자 바람인데 과연 실제 현실은 몰상식이 상식을 대체한 것 같아 깊은 한숨을 내쉰다상식이 통용되는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하고 또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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