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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엄마들 - 인문학 초보 주부들을 위한 공부 길잡이
김혜은.홍미영.강은미 지음 / 유유 / 2014년 8월
평점 :
책 리뷰는 처음 써본다. (물론 알라딘에 블로그 같은 것도 없고..)
작가 중 한 명이 지인이다.
학교에 이어 직장에서도 '모범생처럼 산다'는 말을 들어 온 작가가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머리 속 풍경은 '모범생의 또 다른 영역진출'
기업 프로젝트의 피티 석상에서도 '인문학적인 접근입니다'라는 한 마디에 '오오.. 역시..'하는 시대다. 모범적인 직장인, 모범적인 사회인이라면.. 와인 열풍 때 '신의 물방울'을 공부하듯 인문학을 '교양필수'마냥 공부하기도 하니깐..
책이 나오기 한참 전,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괄목상대'까진 아니었지만 학부 때의 작가, 또 사회생활 때의 작가와도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주된 변화는 '상대성에 대한 배려'와 '성과가 아닌 방향으로서의 목표'였다.
더 이상 '이러이러한게 정상이야. 다른 길로 가더라도 돌아와야지'라든지, '연봉 7000 ! 회사를 잘 키워봐야지'같은 재수없는 레토릭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건 단순히 "인문학을 공부 했더니 내 인생이 달라졌어요"같은 싸구려 신앙고백 몇 문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다.
추론하건데, 그간 모범생으로서 타자와 세상이 던져준 명제에 맞추어 살아 온 삶이 작가 스스로에게도 그닥 즐거운 시간은 아니었다는 반증 아닐까.
사실 '물질과 숫자를 미션으로 하는 현대사회'라는 옷이 몸에 잘 맞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서점을 정복한 성공서들은 '그래도 이렇게 하는게 옳은 삶이라니 긍정적으로 웃으며 잘 해보자'는 자기최면의 노하우를 전수하지만, 글쎄.. 그렇다고 해서 잔잔한 밤 시간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정말?'이라는 말을 안 할 수 있을까?
- 10년 넘게 직장생활 하는 동안 늘 잠이 부족했다. 패션화보에 나온 것처럼 입고 꾸미려면 받은 월급의 절반 이상을 쏟아부어야 했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했지만 제때 승진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고, 최직 뒤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라는 김혜은의 고백이나
- 생각 없는 성실한 노예처럼 일해온 나에게 남은 건 찢어진 성공우산을 들고 욕망의 비에 젖은 지친 몸 뿐이었다. 그럴듯한 성공신화인 줄 알았던 자기계발서는 성공보다 위에 있는 욕망 때문에 절대 만족할 수 없는 희망고문일 뿐이었다 - 는 홍미영의 하차기를 공감하고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 물론 '꿈'이라는 단어가 연봉협상에서 유리함을 주는 기제로 생각하는 사장님들은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책은 '사회생활이라는 열차'에서 내린 주부들이 자신들의 하차 시점을 되돌아보는 이야기, 그리고 달리는 열차에서 내리면 인간으로서의 삶에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자신들이 '인문학이라는 꽃신'을 신고 다시금 인생을 산책하듯 걸어가는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새롭게 시작한 길에도 어려움은 있지만, 이젠 더 이상 시련극복 성공달성의 주인공으로 스스로를 대치하지 않는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분명히 읽은 것 같은데 무슨 내용이었는지 머리 속이 깜깜할 때면 스스로 바보같다는 자괴감도 든다'는 심정 뒤에는 '독서한 내용을 모두 잊지 않으려는 생각은 먹는 음식을 모두 체내에서 간직하려는 것과 같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덧붙인다.
책에는 '인문학', '강좌'라는 컨텐츠가 만병통치약이라는 허세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책 읽게 만들기 위해 시작한 독서지도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의 삶에서 독서와 사색을 찾은 엄마의 이야기나, 최고의 소프라노가 될 수 없어 음악을 포기했던 주부가 음악을 즐기고 공부한다는 관점에서 다시금 음악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통해 꼭 인문학이 아니더라도 '공부'라는 것이 삶을 채워주는 방법과 모습을 이야기한다.
인문학의 주된 자세로 '자기선택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강은미의 장과 맥락이 맞는 부분이다.
스포를 너무 많이하면 '출발비디오여행'이 되니 책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각설하자.
마지막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이 책을 권해준다면 그 누군가는 주부이거나 엄마일 가능성이 낮다.
나는 책을 권해줄만큼 잘 아는 주부도, 친하게 지내는 엄마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부거나 엄마, 아줌마들이건 아니건) 책을 전하고픈 사람은..
아직 (타자가 만들어준) 프레임 밖을 불안해하거나, 스스로의 선택에 '이게 내가 선택한 것이 맞나?'라는 질문의 찌꺼기가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책 속 엄마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프레임 밖,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 이외의 삶에서도 지금 우리는 잘 걸어가고 있다. 돈과 성공이 아니어도 마음의 허기를 달랠 수 있으며, 보험과 연금이 아니더라도 삶에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건 엄마, 주부,아줌마들이 아닌 모든 인생들에게 아주 솔깃한 제안이다.
물론 책에는 해답이 없다. 해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라는 열차 밖 풍경'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비단 기독교도들만 사랑하는 문장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