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스 : 자아를 찾은 아이 Body Club Books 13
버지니아 M. 액슬린 지음 / 시간과공간사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딥스의 저자인 버지니아 액슬린은 인본주의 철학과 상담원리를 놀이치료에 적용하여 아동의 정서·사회적 문제와 학습과 발달의 문제를 도와주는데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액슬린은 놀이치료를 하는 상담자의 자세와 아동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그 효과를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다.

'딥스는 처음부터 장애아였는가?' 이런 생각을 갔게 끔 했다. 나의 대답은 No이다. 알파벳을 보여주자 두 세살 때 다 알았다는 딥스는 처음부터 장애아였던게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딥스의 불행한 과거는 바로 부모들의 잘못이라는 생각을 갔게했다. 그런 부모들의 태도가 머무르는 집에서 딥스는 자유로와 질 수 없게 길러졌던 것일 것이 너무도 당연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딥스는 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였을 뿐일수도 있었는데.... 이런 딥스에게 자유를 찾게 해준 놀이방과 친구같은 선생님....

이 책은 여기서 바로 모든 것을 다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딥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고 싶은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딥스를 성장이 아닌 발달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런 딥스를 지켜봐주는 진정한 사랑이야말로 아이들을 키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난 이 책에서 딥스가 사물을 보며 노래하던 부분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난 아직까지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인지 더욱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파란색아 파란색아.....노란색아.......빨간색아.....' 색에대해 노래를 하면서 딥스는 자신의 마음을 너무도 잘표현 한 것 같았다. 어린아이의 마음에 증오심이라는 것이 있다니... 그런 증오심을 불러준 것은 바로 어른들, 부모들이 아닌가 싶다.

어린아이 딥스가 아빠에게 선생님이 되어 교훈을 주고 싶어하고 말을 걸었다며 웃는 부분과 아빠가 감옥에서 딥스에게 꺼내달라했을 때 그 뒤에 아빠와의 사이가 가까워질 때 난 이런 딥스를 장애아로 보고있었던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 이미 딥스는 자아를 찾았었던 것 같다.

자신과 선생님과의 둘만의 공간에 친구들을 초대해보자는 제안을 심각하게 생각하던 딥스는 어쩌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의심같은 것들 이렇게 행복하게 생각할 수 있는 보금자리 같은 곳을 뺏기지는 않을까 하며 선뜻 대답하지 못하던 딥스에게 세상에 대한 불신을 안겨준 부모 그리고 우리들은 이 책을 모았다면 한번쯤은 아이를 대할 때 얼마나 신중히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한번쯤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아를 찾은 아이'그렇다. 이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수 있을 것 같다 . 딥스는 처음부터 자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딥스의 자아를 무참히 짓밞음 과 그 자아를 다시 꺼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딥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친구가 되어야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즘 결혼을 앞둔 내 친구들에게 꼭!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hoyahan1 > 상처받은 아이의 회복기
딥스 : 자아를 찾은 아이 Body Club Books 13
버지니아 M. 액슬린 지음 / 시간과공간사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이 아이를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국의 딥스-영수이야기'라는 책을 먼저 읽었기 때문이다. 그 책에서 '딥스'는 부모에게 받은 상처로 마음을 닫고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놀이치료를 통해 어떻게 기적적으로 회복되어 가는지 언급하고 있었다. 딥스는 모든 아이는 회복되어질 수 있다는 증거, 기적의 상징이었다.

액슬린 박사가 딥스를 만날 무렵, 딥스는 외부 세계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도 거부하는 자폐아에 가까운 아이였다. 부유층이었던 그의 부모는 딥스를 정신지체아라 했다. 하지만 유치원 선생들은 딥스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자기 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는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 하였다. 딥스를 관찰한 액슬린 박사는 딥스가 정신지체가 아니라고 확신했고, 놀이치료를 시도해보기로 한다.

놀이치료란 아이와 선생이 몇 가지 놀이도구가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가 정기적으로, 일정시간 동안 놀이활동을 하는 것이다. 듣기에는 무척 썰렁하지만, 이것은 아이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다. 아이는 일정시간 동안 어른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기 주도적인 활동을 할 수 있고, 상상 속에서 세상을 재창조할 수도 있다. 이때 동행한 선생은 아이의 수동적인 친구가 되어 아이의 행동과 말에 적절한 반응만 해주면 된다. 사람들, 특히 부모에게 상처를 받아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는 놀이치료를 통해 간섭만 받아왔던 생활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자기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고, 상상놀이를 통해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증오를 표현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응어리를 풀어갈 수도 있다.

딥스의 아버지는 과학자, 어머니는 외과의사로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부유층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계획에 없던 아이를 임신하자 어머니는 외과의사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해야 했고,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혼란스러워했다. 이런 태도는 딥스가 태어나고도 변하지 않았고, 아이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던 부모들은 지적교류를 통해서만 아이와 소통하려 했다. 어머니는 딥스를 안아주는 대신 2살짜리에게 글과 숫자를 가르쳤고, 아버지는 아이의 행동에 반응하는 대신 꾸중하고 야단만 칠 뿐이었다. 애정을 받기 전에 부모의 시험에 든 아이는 당연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딥스는 5살이 되기 전에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지만, 누구에게도 글을 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외부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놀이방에서 딥스는 자기를 이해해주는 액슬린 박사와 함께 전에는 꾸중만 들었던 모래놀이와 물놀이를 하며 옷을 더럽히기도 했고,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그리고 인형으로 가족놀이를 하며 아빠와 엄마에게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표출했다(그 과정에서 아빠 인형은 모래밭에 몇 번이나 매장되어야 했다). 처음에는 목요일에 한 시간으로 정해졌던 놀이치료 시간이 끝나면 집에 가기 싫다고 울던 딥스였지만 점차 안정을 찾아가면서 놀이치료 과정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딥스는 상처를 버리고 자아존중감을 회복해 갔고, 부모에 대한 원망에서 자유스러워졌다.

아마 어른이라면 어떤 치료를 동원해도 그토록 크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기적의 존재라는 것은, 이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두고 말한 게 아닌가 싶다. 아이이게 가하는 상처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이해자가 이끌어주면 아이는 얼마나 빠르게 회복되어 새 삶을 살 수 있는지 딥스는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말미에 실린 10대 중반이 된 딥스의 모습은, 이 세상 어느 휴먼드라마보다 감동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