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빼기 3 - 어느 날… 남편과 두 아이가 죽었습니다
바버라 파흘 에버하르트 지음, 김수연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당신은 당신의 심장 가장 가까이에 살던 사람을 잃어 보았는가?


어 렸을때였다. 키가 족히 175센치는 훨씬 넘어보이는 늘씬한 여자모델이 tv에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행자가 묻는다. " 아니 어쩜 그렇게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어요? 비결이 뭐예요? " 모델이 잠시 멈칫했다. 조금은 난감한듯 보이는 그녀의 표정에는 짙은 화장도 가릴 수 없는 순진함 혹은 풋풋함 같은 것이 묻어있었다. " 몇개월전에 남자친구와 헤어졌어요. 괴로워서 몇주간 아무것도 못먹고 울기만 했더니... " 말끝을 흐리던 그녀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왜였을까. 이제는 얼굴조차 가물거리는 이름모를 모델의 눈 빛. 깊고 선량하고, 고요하기도 또 한없이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 눈빛을 알게 된 이후 나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사랑했고, 행복했고, 또 아팠고 그 아픔이 아물때 즈음 '아픈만큼 성숙해진다' 는 것을 배웠다.

" 4 빼기 3" 은 상처와 회복에 대한 이야기다. 책은 갑자기 들이닥친 죽음, 사랑하는 남편과 자신의 목숨보다 귀하던 두 아이를 사고로 한꺼번에 잃은 한 인간의 "상실" 에 대한 치열한 성찰이자, 놀랍고 감동적인 성장이 아름답게 기록된 흔적이다. 일주일에 두번 피에로가 되어 병원을 찾는 바버라. 그의 남편과 그녀는 세상의 아픔을 위로하는 피에로다. 둘은 첫눈에 반하고, 조건없이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그 귀한 사랑의 댓가로 천사같은 아이 둘을 얻는다.

내가 책에서 마주한 바버라는 차분하고 맑은 심성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녀는 우리들 대부분의 평범한 모습과 닮아있다. 그녀의 일상은 선량하다. 삶이 가져다 주는 소소한 행복에 기뻐하고 때로는 자기자신과 타인에 대한 불만이 그녀의 하루의 시작과 끝을 잠시 긴장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던 그녀의 하루에 갑자기 사고가 찾아온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고, 아무것도 특별할 것이 없는 전화한통으로 그녀의 인생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책에서 그녀가 이 끔찍한 사고와 마주하는 풍경은 놀랍도록 침착하다. 그녀는 격하게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은 죽음을 수긍하고 돌아선다 (p.150) 그녀가 아픔을 감추고 차분하게 맞이하는 " 축제와도 같은 장례 . 겉으로는 강하게 견디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그 축제의 순간에 지독하게 외롭고 고독하다. 친구들의 격려, 사랑, 위로 그 어떤것으로도 대신 할 수 없던 사랑하는 사람들의 빈자리를 오롯히 혼자서 감당해내는 그녀. 상실에서 부터 오는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의 절망의 계단을 쓰러질듯 비틀거리며 거니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그녀는 절망과 희망의 사다리를 위태롭게 오고갔다. 한없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다가 불현듯 세상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누구도 마주하지 않겠다는 고독한 심정이 되어서도 허기진 배를 채우려 과자를 집어들고, 추위를 달랠 장작을 구하기 위해 빗속을 뚫고 나서기도 한다. 그녀는 이렇게 상실앞에 처절하게 나약해져 있으면서 삶이면서도 완전히 살아있지 못한채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슬픔을 떨쳐버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녀의 심정은 " 나를 움직이게 하는 이 힘은 그저 절망의 힘일 뿐인가 ? "(p.195) 라는 대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깊은 고통 속에서 다시 솟아오르는 "절망의 힘". 삶의 놀라운 에너지. 그것이 이 책의 말미에 드러나는 찬란한 빛깔이다.
" ... 하지만 (p. 199)미스터 빈은 바지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 앞으로 걸어간다. 길을 따라서. 새로운 모험을 따라서 " 그녀가 그녀의 남편 헬리의 모습을 그려보는 장면이다.

흙 먼지를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 삶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읊조리며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하는 한 인간의 모습은 진한 감동이 되어 내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마치 그녀는 철인 3종경기를 뛰는 ( 아마 그 3종 장애물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그녀가 느끼는 고통, 슬픔, 분노가 되겠지. ) 마라토너이고, 나는 결승선에서 그녀를 기다리며 목이 터져라 응원을 보내는 사람이 된 것 처럼 한단어, 한줄, 한 문장을 읽어나가면서 매 순간 마다 나는 지친 바버라를 향해 온맘을 다해 응원했다. 번데기의 화려한 변신(p.257)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마침내 그녀는 긴 침묵과 지루한 기다림, 둑이 터지듯 흘러넘쳤던 분노와 고통을 이겨낸다. 고름과도 같은 눈물을 거두었고, 마침내 그녀자신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용서하면서 " 다시 돌아오는 길"(p.281) 향해 발자욱을 내딛는다. 그녀는 무한한 사랑과 응원을 보내었던 친구들에게 작은 답례를 보내고, 손을 내어뻗어 " 발걸음을 내딛도록 나를 끌고 가달라고 " (p.274) 부탁한다. 아직 그녀의 발자욱은 아직 서툴고,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다. " 삶의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아주 작은 것들" (p.284) 이라는 것을, " 미소, 사랑스런 말, 사소한 착한 일이며 충분하다 " (p.284) 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장하게도 해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 나는 운명이 내게 쏟아부어 놓은 많은 일들을 헤치고 나왔다" 고 말해주었다. 나역시 어둠의 긴 터널을 헤치고 이제 막 빛을 향해 큰 걸음을 내어 뻗은 그녀의 용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한줄기 눈물이, 먹먹한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솔직한 얘기를 해보자. 나는, 얼마전 3년간 사랑했던 힌 사람을 보냈다. 꼭 , 그녀가 구멍난 스웨터를 안은 채 그랬던 것 처럼, 그와의 구멍난 추억들을 안고 몇날몇일을 울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떠안은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그랬다. 상실은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 나는 내가 해야할 숙제"(p.288) 를 해낼 것이고, " 다시 빛을 볼 수 있"(p.288)을 것이며, 언젠가는 " 여기저기 쌓인 먼지를 털어내" (p.288) 고 " 아무걱정없이 나아가"(p.288)게 될 것이다.

나는 책을 덮으면서 "삶이 주는 것을 달게 받겠다"(p.291) 고 다짐했다. 바버라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왠지모르게 그녀의 눈빛은 오래전 내가 tv에서 보았던 그 모델의 눈 빛과도 닮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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