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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 - 제22회 스바루 소설 신인상 수상작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1
아사이 료 지음, 이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열일곱살이던 시절, 전교의 모든 여고생들은 사건과 사고를 기다렸다. 공부만 하기에는 지겹워 새로운 자극이 되어줄 만한 것을 '학교' 안에서 찾았다. 무엇 하나 사소하게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누구나 소문을 퍼트릴 수 있었고, 누구나 사건의 중심지에 설 수 있었으며, 누구나 목격자가 될 수 있었다. 지금 보면 "어려서 그랬지"라고 넘어가겠지만, 당시 사소한 일에라도 서로에 대한 경쟁심에 불이 붙었다. 크게는 공부, 취미부터 작게는 교복을 어느 정도 줄이느냐 하는 것 까지...
그래도 그 때가 좋았다. 지금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열일곱이던 나와 친구들 사이에 싸우더라도 금세 웃으며 손바닥을 마주칠 수 있는 감정선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스무살을 보내고, 대학을 다니면서 그런 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준 건 '아사이 료'의 장편소설,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다.
이야기는 배구부 주장이던 기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시작된다. 이 책의 끝까지, 기리시마는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기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두고 난 후, 주변 인물들이 받는 영향과 인물 각자가 갖고 있는 사연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또한 열일곱살이 가질 수 있는 순정들도 이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 순정들은 누가 누구를 좋아한데, 라는 소문처럼 떠도는 것이 아닌 소년 소녀들의 마음 속에 담긴 소중한 것이다. 그렇기에 글을 읽는 내내 분홍빛으로 물든 소년 소녀들의 감정에 나도 모르게 설레게 된다. 두근두근한 순정을 전달하는 것에서, 이 소설은 출발한다.
- 핑크가 어울리는 여자는, 분명, 이긴 거다. 이미, 뭔가에.
p.63, 브라스밴드부, 사와지마 아야
- 너무 행복해서, 그런데 F5 키를 누르면 왠지 우리 학교만 사라질 것 같아, 한참 동안 무릎을 안고 바닥에 앉은 채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p.82, 영화부, 마에다 료야
- 남자 체육은 축구. 축구만큼 '위'와 '아래'를 깔끔하게 나눠주는 스포츠가 또 있을까?
p.92, 영화부, 마에다 료야
- 엄마, 추억은 기억하기 때문에 '추억'이라 할 수 있는 거야.
이제 운동복 따위 깨끗하게 빨지 않아도 좋으니까.
나를 봐줘.
p.156, 소프트볼부, 미야베 미카
-우리는 아직 열일곱 살이고, 앞으로 뭐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고, 희망도 꿈도 모두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앞으로 뭐든 손에 넣을 가능성을 품고 있는 손바닥만이 있을 뿐, 지금은 그저 텅 비어 있다.
p. 176, 다시 야구부, 기쿠치 히로키
이처럼 소년 소녀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문장을 쓸 수 있는 건 이 소설 밖에 없다. 작가가 19세에 쓴 글이라고 하니, 그 솔직함이 더 전달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학교 안에서 학생들 간에 '위'와 '아래'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학교를 다니며 나름 '위'에 속하도록 노력했던 것 같다. 튀지 않으면서 여자아이들의 무리에 끼려 쉬는 시간 내내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있다. '위'와 '아래'로 나뉜 그룹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위'에는 화려한 여자애들이, '아래'에는 평범한 인상의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이 소설은 또 솔직하기 그지 없어서, 이를 과감없이 보여준다. 여기에 동감한다.
우리들의 열일곱살이, 여기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