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습니다 - 최지은 기자의 페미니스트로 다시 만난 세계
최지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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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는 무슨. 지금은 여성 상위 시대지!
-곧 그들이 쿵쾅대며 몰려올 게시물 입니다.
-언냐들 나만 불편해?...
-지금이 몇 세긴데 차별 이야기를 하고 있어. 충분히 많이 좋아졌구만.
-니들이 그런다고 뭐가 바뀌나 보자ㅋㅋㅋ
-피해의식이 너무 심하네. 일부가 겪는 일 가지고 전부가 그런 것 처럼 얘기하지마. 무슨.. 야, 우리가 어디 조선시대 사는 줄 알겠다.
-하도 남혐을 하니까 없던 여혐이 생기겠네~!
-여자들은 의무는 관심 없고 권리만 챙기네?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다.
-어휴, 같은 여자 욕먹이네 정말... 그만들 해요.
-자기야, 이 사람들 좀 봐봐. 너무 극단적이다, 그치?
-도대체 여성혐오가 어딨음? 좀 보자.

-블라 블라 블라....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이 접해봤을 문구들이다. 심하면 직접 들어보기도 했을테다. '여성혐오',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등은 언젠가부터 뜨거운 화두다. 봇물터지듯 급한 물살을 타고 내려오는 이 화제들 사이에선 수 많은 비판과 논쟁이 이어진다. 안타깝지만, 상당수의 논쟁은 그 물살의 표면만 응시한 채 계속된다. 작은 보 수준이 아니라 '거대한 댐'이 터진 것인데도 불구, 그 수면 아래의 것들은 관심이 없다. 알려줘도 귀를 막는다. 위의 문구들은 스스로 귀막은 자들의 입에서 보통 출현한다.

더 서글픈 사실은, 그런 사람들이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도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본인과 본인이 속한 집단, 사회에 관심이 없거나, 사회 현실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서 문제점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 좀 더 확장시키자면 그런 상태임에도 스스로가 개선하고자 하지 않는 상태.

이 책은 사실 그런 사람들이 읽으면 정-말 좋을 책이다. 이 책을 권할 사람이 있다면 이들이 1순위다.

우리는, 2017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익숙하고, 한국의 사회/문화에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대한민국에서의 가족, 학창시절에서부터 시작해- 한국을 들썩이게한 뉴스기사들, 대중문화, 여성혐오로 부터 비롯된 남성들의 삶과 현실들을 자세히 알려주고, 그에 따른 페미니즘의 존재 이유까지 전반적으로 아우른다.

록산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토니 포터의 '맨박스' 등이 현재 페미니즘 입문서로 많이 추천되지만, 두 서적 모두 보유하고 있는 나로썬 '괜찮지 않습니다'를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독성이 훨씬 좋다. 이 좋은 가독성은 단순히 '문장이 쉬워서' 라기 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의 기억에 의한 것이다. 서양의 문화권에서 살지 않은 사람이 서양의 성차별과 혐오에 대해서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기는 힘들지 않은가. 맥락은 비슷해도 혐오의 양상이 다르기에 그들과 우리의 페미니즘 또한 같을 수가 없다.

이 책은 대중문화와 예능이 사람들에게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한민국에서- 방송 시사 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시작하여 대중문화 웹 매거진 기자로 활동한 여성 최지은의 저서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대중문화를 다량 소비하는 우리가 공감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문화 소비자 입장에서의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별다른 고민과 사유없이 보여주는 매체 그대로를 받아들이던 사람이라면, 얼마나 한국 대중문화에 여성혐오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혐오자의 입장에서는 왜 대한민국에 여성혐오가 판을 친다고 했는지, 자신이 젠더 권력자 입장에서 얼마나 젠더 문제에 무지하고 둔감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또 사회적 혐오의 당사자 입장에서는, 불편했던 부분이지만 잘 못 되었다고 말하기가 두루뭉실 했던 점들이 깔끔하게 체계화가 되는 시원한 책이 될 것이다.

또 이미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고 페미니즘에 대해 설파하기에 앞장서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내에서의 여성혐오에 대해 이토록 정렬되어 있는 책이 있음에 정말 감사할 것이다. 우리는 힘들게 각종 기사 링크와 논문, 서적의 한 부분 등을 모아와서 혐오자들에게 보여줄 수고로움이 덜해졌다.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면 된다. 그것도 싫다고 웅앵웅 하는 사람은 포기하자. 소중한 당신은 그런 사람을 변화시킬 의무가 없다.
방대한 한국 내 여성혐오 자료를 수집하기가 어려웠다면 이 책 한권을 구매하자. '괜찮지 않습니다'의 또 좋은 점은 사례에 대한 각종 기사, 서적, 칼럼, 회의록 등의 자료 링크가 미주로 잘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여성혐오가 어딨어요 웅앵웅 조기포기 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팩트 전달자가 될 수 있다.

"10여 년간 대중문화 기자로 일하며 내가 가장 좋아했던 댓글은 'ㅋㅋㅋㅋㅋㅋ'였다. 하지만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대중문화 콘텐츠를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은 그 전처럼 즐겁지 않고 낯설어졌다. 나는 종종 주위 사람들에게 '그거 봤어? 혹시 나만 불편한거야?' 라고 묻고 확인해야만 했다. 계속 혼란스러워하다가 '나도 불편하다'는 누군가의 글 한줄을 발견하고서야 겨우 안도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말하고 싶었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나도 그렇다고, 우리 같이 얘기해보자고."

-시작하며 중에서.

우리는, 괜찮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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