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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밥집 - 따뜻한 한 끼, 새로운 삶의 디딤돌
김현일 지음 / 죠이북스 / 2017년 7월
평점 :
미완의 도서 “바하밥집”
경주 최부자집의 가훈에 보면 “사방100리 안에 굶은 사람이 없게 하라”는 항목이 있다고 한다. 실제 흉년이 심하게 들면 800석이 가득 차는 곡식 창고가 빌 정도로 구휼에 힘을 썼다고 전해진다. 최소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만 있어도 밥은 준다. 폄훼 하는건 아니지만 밥 주는게 특별한 건 아니다. 최부자도 밥을 주고, 보아스도 곡식 낱알을 흘리며 연애와 구휼의 일타쌍피를 날리지 않았던가. 과연 우리가 다시 한번 밥 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밥 주는 남자 김현일 대표는 “바하밥집(죠이북스 출간)”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는 그저 밥만 주는게 다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럴까? 그렇다.
이 책은 인터뷰 형식으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구성되어 있으며 중간 중간 사역하는 사진이 곁들여져 있어서 대화 하듯이 편하게 읽힌다. 하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긍휼 사역 현장에서 실제로 맞닥뜨렸던 문제와 대안이 묵직하게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교회를 기웃거리는 찾는이나 새가족도 어렵지 않게 읽을만 하고 동시에 이웃을 돕고 싶어 하는 사역자들에게도 어울리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네 가지 오해를 교정했다.
첫째로, 김현일은 노숙을 할 만한 사람이었다고 오해 했었다.
아니었다. 그는 멀쩡한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 하다가 실패를 겪고 노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려 노숙자가 되었었다. 그는 노숙인의 70~80%가 삶의 위기를 겪고 안전 장치가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노숙을 할 수 밖에 없게 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김현일도 70%에 속하는 이 시대의 참 노숙인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노숙을 개개인의 케릭터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함을 배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노숙 문제를 올바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본질적인 대안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김현일은 노숙인 사역을 원래 잘해서 잘 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도 노숙인 사역을 힘들게 시작했고 힘들게 풀어 갔다. 노숙인 출신 이라길래 쉽게쉽게 한줄 알았다. 하지만 그도 첫 컵라면이 내동댕이 쳐지는 경험을 비롯해 수많은 어려움 끝에 오늘의 바하밥집에 이르렀다. 때려 치고 싶을 때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많았다는 담담한 고백이 이 책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무용담보다 실패담이 더 와 닿는다.
그래서일까? 사역을 접고자 하는 위기의 순간 한 노숙인의 피부에 달라 붙어 버린 양말을 떼어 주면서 예수님을 만났다는 그의 간증이 기독교 싸구려 신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간증은 다큐다. 진실하고 담백하며 허세가 없다. 눈이 돌아서 헛것을 보지 않고는 이 사역을 할 수 없었을 게다. 멀쩡한 사람을 붙들고 사역해도 지치는데 정서적 육체적으로 힘든 사람을 껴안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고 그러기에 예수를 봐야 버틸 수 있었을 게다.
셋째로, 김현일은 밥 짓는 일만 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는 공동체를 짓고 있었다. 인문학 교실, 미술 교실을 열어서 자활의 터를 닦아 줄 뿐만 아니라 공동체 화폐까지 발행해 맘몬의 지배에 저항하고 함께 살기를 실천하는 장면에서 나는 오르가즘을 느꼈다. 이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실체다. 현학적인 신학 개념들의 성찬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살았다는 소박한 김치와 김 반찬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밥상이다. “신학? 난 그런거 잘 모르고 내가 받은 은혜대로 산다!” 쿨내가 진동한다.
넷째, 김현일은 혼자 일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는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는 팀으로 일한다. 그런데 태초에 김현일이 있기전 공동체가 먼저 있었다. 그는 바하밥집 공동체를 만들기 전에 공동체를 먼저 맛본 사람이었다. 이 사역은 개인의 끈기나 케릭터로 승부를 볼 수 없다. 김현일처럼 교회 공동체 속에서 진실한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할 수 있다. 그의 형님(김형국 목사)이 주었던 우정과 형수님(신소영 사모)이 베풀었던 사랑을 먹고 자란 것이다. 이 책의 도처에 널부러져 있는 나들목 공동체 이야기는 노숙인 사역의 저력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가늠케 한다.
밥 주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스스로 밥이 될 줄 알고, 같이 밥 짓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달랐다.
김현일은 “그래 이렇게 살자!”라는 문장으로 마침표를 찍지만 나는 이 책의 속편을 벌써 기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바하밥집은 계속 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미완이며 미완이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