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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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로열과 자판기 커피

 

에스프레소에 코냑 두 숟가락을 얹어 마시면 어떤 맛일까? 김열규는 20대 후반 이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커피 원액에 코냑을 섞은 자칭 카페 로열을 마셨다고 한다. 코냑의 깊은 아로마와 원두의 산미가 어우러진 풍미가 궁금했다. 그래서 마셔봤다. 오해마시라. 합법적 음주에 대한 유혹이 아니라 순수하게 그 맛이 궁금했다. 이건? 맞다. 한증막에서 낀 방구 맛이다. 풍미가 강렬하고 깊어 온몸에 베이는 것 같다. 경험자는 알겠지?

 

이 책 독서는 앎과 삶으로 내린 한 잔의 카페 로열이다. 그는 삶은 앎을 향한 행보이다. 아니, 아예 삶을 앎이라고 해두는게 좋을 것 같다. 그 앎이란 무엇으로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한두 가지는 아닐 테지만 아무래도 읽기가 으뜸 중 으뜸일 것이다라고 썼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진정한 사람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 다닐 땐 삶을 버리고 교과서를 본다. 하지만 교문을 나선 후엔 교과서를 버리고 자기 삶을 산다. 그렇기에 세계 최고의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앎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것일런지도 모른다. 이런 삶은 불행하다. 이런 앎은 비참하다. 하지만 김열규는 에스프레소 같이 행복한 인생을 살았고, 코냑 같은 즐거운 앎을 누렸다.

 

우선 그의 인생을 보자.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독서로 엮었다. 많은 자서전을 보았지만 독서로 삶을 관통해 내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독서의 변화로 정리하는데, ‘아바구 떼바구 강떼바구로 이야기를 열었던 할머니에게서 청음의 독서를 배운 유아 시절. 글을 깨우쳐 신나는 웃음 읽기라는 낭독의 즐거움을 발견했던 소년 시절. 학교 수업에 독서의 즐거움을 양보하지 않고 책 읽기를 사수했던 용감한 학창 시절. 정성과 끈기로 책을 읽는 완숙한 노년. 그의 삶은 책으로 설명 된다.

 

그러면 앎은 어떠한가? 그는 독자들에게 농익을 대로 농익은 변증법적 독서 기술을 소개한다. 꼼꼼하게 읽으면서도 넓게 읽고, 빨리 읽으면서도 천천히 읽고, 진지하게 읽으면서도 놀면서 읽는 정반합의 독서의 경지라니! 책 읽기에 누구보다 깐깐하고 엄숙할 것 같지만 그의 독서에는 대가다운 여백이 살아있다. “여름 한낮, 거기에 대청마루라면 익은 잠의 단내가 더 한층 절실했을 것이다. ! 책이라는 그 기막힌 수면제여! 얼마나 잠에 빠졌던 것일까? 문득 눈이 떠진다. 읽다 만 대목에 다시 눈을 박는다. ! 그건 헤어졌던 임과의 재회와도 같은 것! 그러니 읽기 반 놀기 반의 책 읽기야말로 독서 쾌락주의의 정수일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앎에 대한 고통이 없다. 이런 읽기의 경지가 부럽기만 하다.

 

삶과 앎에 이러한 열정은 독서라는 텍스트에 갇히지 않았다. 그는 혈액 암 치료를 위해 항암 주사를 맞고 죽기 하루 전, 오후 5시 까지 유고집인 아흔 즈음의 원고를 집필했다. 육체의 한계치를 넘어서면서 까지 읽고 썼다. 이즘되면 존경을 넘어 원망이다. 태양을 향해 날아오른 이카루스가 된 샘이다. 김열규라는 태양이 오히려 나를 좌절하게 한다. 나는 어떻게 살라고.

 

김열규 만큼의 열정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책을 쓸 수는 없고 써서도 안된다. 소는 누가 키우냔 말이다. 그의 독서 열정에 도전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절망감을 느낀다. 나는 안될 것 같다. 어렸을 때 몸이 너무 약해서 책밖에 읽을게 없었다고? 거 사람 기좀 그만죽입시다. 나도 몸은 약해서 누워 있을 때가 많았지만 잠 많이 자고 TV많이 봤거든요. 나 같은 사람 많거든요.

 

어쩌라고? 나는 아타나베 쇼이치에게서 다소 위로를 얻었다. 그의 독서론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실용적이었다. “돈을 들고 가서 책을 사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가를 꾸며라”, 해보고 싶다. “기계적으로 써라”, 쓰다 보면 영감이 온다. 그냥 써라. 딱이다.

 

카페 로열은 김열규의 작품, 자판기 커피는 나의 작품. 카페 로열만 커피가 아니다. 믹스도 커피다. 나는 믹스 커피도 좋다. 그냥 쓸거다. 그러다 보면 어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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