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시 - 포스트휴먼 시대 시의 미래
공현진 외 지음 / 소명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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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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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지 않은 시>>, 공현진, 백선율, 성현아, 윤은성, 이경수, 황선희,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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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위해 개발된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에게 위협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인간보다 바둑을 잘 두는 인공지능, 인간이 수백 년 축적한 이론과 기법을 며칠만에 학습해서 듣기 좋으면서도 독창적인 음악을 작곡하는 인공지능, 소설을 써서 공모전 예심을 통과하는 인공지능, 그 다음은 뭘까. 인공지능 발전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지루한 질문, ‘로봇과의 연애가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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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주는 언캐니Uncanny, 운하임리히Unheimlich는 다만 인간과의 상사성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알고리즘 설계를 따라서만 움직이는 약인공지능의 시대가 스스로 학습하고 성능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강인공지능의 시대로 넘어갈 때, 인간이 느끼는 '위협'은 가히 절멸의 공포에 맞먹는다. 하지만 그 '절멸'의 공포는 한편으로는 조금 우스운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전능하기를 꿈꾸었던 휴머니즘의 거울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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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팬데믹이라는 이중의 구속 안에서 우리는 머지않아 인간의 인간다움마저 초과될 것만 같은 악몽에 저마다 조금씩 가위눌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바로 그 우왕좌왕함과 서성거림, 모자람, 비합리성 때문에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어떤 결핍을 발견할 때마다 '인간적이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시는 가장 인간적인 장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황선희, <상실을 다루고, 나누고, 간직한 채 넘어서(지 않)>,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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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더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기술력이 아니라 인간의 폭주와 무절제다.

-이경수, <포스트휴먼 시대 시 교육의 역할과 방향>,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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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와 융합하고, 접속하고, 자꾸 새로운 생명이 되어가는가능성의 지대.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먼을 생각하는 기술적인 논의는 인간 신체의 문제와 기계와의 공존, 나아가 기계로서의 신체를 생각하게 한다. 이미 스마트폰과 밀접하게 접속해버린 우리의 몸-스마트폰과, 마셜 매클루언의 표현처럼, '신체의 연장으로서의 미디어'개념으로부터 출발하자면, 그 끝에는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에 관한 최종심급의 질문이 남아있다. 만약 우리가 인간이기 위해 '이것'하나만을 남겨야 한다면 무엇을 남겨야 할까. ? 심장? 팔과 다리? ? 아니면 정신? 기억? 데이터? 무엇이 당신인가. 무엇이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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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의 논리가 누군가에게는 배제의 논리로 작동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우리의 '바깥'을 환하게 펼쳐 놓으려는 시도와 노력들을, 우리는 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 더욱, 우리가 '인간'이라고 여기던 것들이 생경하게 느껴지기를 바란다.

-공현진, <세숫비누 일곱 개의 인간>, pp.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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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질문을 포스트'휴머니즘'의 차원, 곧 로지 브라이도티가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이라 이름붙인 논의로 끌어간다면 우리는 '휴먼'의 범주 자체를 숙고하게 된다. '포스트휴먼'이즘이 우리에게 미래사회에 대한 기대감과 동시에 어떤 '갑갑함'을 준다면, 포스트'휴머니즘'은 당혹감과 죄책감(윤리)을 불러일으킨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신했던 인류가 실은 다른 모든 동물, 식물, 자연물, 심지어 쓰레기 더미와 같은 "물질"이며, 세계란 그 모든 물질들의 관계와 뒤얽힘이며, 우리가 그동안 (문자로 기록된)역사 발전의 주체로 여겨온 인간이 실은 "잘 구성된 무기물"(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일 뿐임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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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머니즘의 질문들은 신의 질서로부터 빠져나와, 종교심의 중요한 한 근원인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실증주의로 극복하고, 인간의 질서를 다시 세우려 했던 근대의 심원을 뒤흔든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동시에 우리는 모든 것이다. 계몽의 시대Age of Enlightenment를 지나 마주친 포스트휴먼의 아포리아 앞에서 '인류'는 아니 물질은 다시 암흑의 시기에 들어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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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라는 자기한정성을 내재한 답변을 뒤집고 '또한' 그러하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도록 기능하는 시는 여성, 퀴어, 트랜스젠더 등의 소외된 집단이 자신의 죄성을 향한 의심을 거두게 한다. (...)주체가 되지 못했던 ''들이 서로의 고통에 적극 감응하며 그 고통이 실재함을 보증해주고,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현아, <죄성을 극복하는 비인간의 ''>, p.15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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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계몽의 근대를 ''으로, 포스트휴먼 이후의 시대를 '암흑'으로 분류하기에는 계몽의 찬란한 빛이 뿌리 깊은 혐오와 배제를 연료 삼아 타올랐음이 포스트휴먼/탈근대의 논의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근대는 윤리의 이름을 독점한 젠더와 입법권력에 의해서(주디스 버틀러), 또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이라는 범주 밖의 존재들, 이를테면 여성과 장애인 동물과 식물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로지 브라이도티, 수나우라 테일러), 혹은 인간만이 모든 행동의 주체임을 선언했던 (가여운)오만함에 의해서(제인 베넷)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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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새로운 불을 밝힐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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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일차적으로는 언어라는 질료로 구성되지만, 무엇보다 언어라는 규범으로는 표현하지 못할 언어 밖의 영역을 향해 계속해서 자신의 몸을 열고자 하는 장르이다.

-윤은성, <관계성을 고민하는 생성의 언어>,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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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시 연구자가 함께 기획한 <아직 오지 않은 시>는 포스트휴먼 시대에 관한 기술적 고찰로부터 출발하여, 포스트휴먼 시대의 존재론을 거쳐, 타자와의 관계와 연대를 사유한다. 그 중심에는 '쓰는 주체'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고 여겨지는 '' 장르의 살핌과 분석이 놓여있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는 시대는 머지않아 도래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쓰는 인간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강한 믿음으로, 다섯 명의 공저자는 근대적 휴머니즘 바깥에서 시가 이어나갈 미래와 시가 열어줄 새로운 관계성(때로는 새로운 정의)에 대해 그들의 견해를 눌러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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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는 인간을 말하기 위해서 혹은 인간이 이해한 대로 인간 아닌 존재가 지닌 생기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음을 고백하고 인간 스스로를 반성할 뿐이다. (...) '인간적'인 생각이 무너지는 장면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인간 아닌 존재들의 다양하면서도 고유한 힘과 마주하게 된다.

-백선율, <불순한 혼종들을 위한 잡상>,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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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1부와 3부의 집필을 맡은 이경수는 시의 존재의미에 사람들이 표하는 우려에 일정부분 동의하면서도 오히려 '공감'이라는 시의 본질에 집중하여 시와 시 교육이 가야할 길을 제시한다. 그 길은 무엇보다 차별과 혐오를 벗어나는 힘으로서의 공감능력의 역설이고, 공감능력을 회복할 방법으로서의 시 쓰기/읽기의 필요성 강조, 그리고 '새로운 독자'들의 역능의 인정이다. 2부를 구성한 공현진, 성현아, 황선희, 윤은성, 백선율의 글은 각각 비주체, 젠더, 감정, 언어, 이미지의 차원에서 포스트휴머니즘과 작금의 시가 연결되는 지점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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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회를 구축하고 우리 자신의 공감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일, 그리고 시에 의미화 바깥의 잉여의 자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일이다. 그리하여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시를 패배주의에 반대하는 태도로 쓰는 일, 인공지능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정신에 입각해 인공지능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타자 존중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서 인공지능 시대 시의 가능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시적 정의'를 우리 사회에 구현하고 더 나아가 시와 우리의 삶을 구원해 줄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이경수, <인공지능 시대 시의 윤리와 시적 정의>,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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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에 대한 탐구인 이 한 권의 '학술서'로부터 힐링 에세이와 정치 선언문, 자기계발서와 서평집의 효능을 모두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시라는 장르가 가진 고유의 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시를 쓰고 싶은 마음도 시를 읽고 싶은 마음도, 그리고 누군가에게 시집 한 권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 책이다.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시를 패배주의에 반대하는 태도로 쓰는 일, 인공지능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의 정신에 입각해 인공지능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타자 존중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서 인공지능 시대 시의 가능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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