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일기 - 노부인, 일상을 기록하다
남평 조씨 지음, 박경신 옮김 / 나의시간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병자일기>17세기 여인 남평 조씨(이름은 애중)가 옛한글로 쓴 일기다.

옛 한자는 옛 한글에 비해 해독이 쉽다. 옛 한글은 19세기 것도 해독이 어려운데 17세기의 글이라면 암호나 다름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옛글을 공부하지 않으면 누가 할까? 병자일기는 옛글 공부에 귀중한 자료임은 분명하다. 책 뒷부분 원문은 그래서 더욱 귀하다. 조선시대 여성이 글을 썼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에 관한 연구는 턱없이 부족하다. <병자일기>는 천착이 필요한 시점에 나온 귀한 책이다.

 

어디 그뿐일까?

일기 속을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선물경제라고 일컫는 화폐경제 이전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선물은 자칫 뇌물로 보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상업 거래이다. 먼 곳의 종들이 윗 전에 바치는 공()은 땅을 사용한 임대료이고, 남편과 자신의 친척이나 지인들이 보내는 선물도 가정 경제의 보탬이 되는 수입원이자, 자신 역시 그에 상응한 물건으로 물물교환을 할 것이다. 따라서 이를 기록하는 것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을 적절한 거래를 위한 것이다. 여기에 도의와 예를 갖추는 것은 양반가의 미덕일 것이다.

 

안방의 환갑 넘은 노인이 할 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전쟁 중 나랏일로 집을 비운 남편을 대신해 그가 할 소명이다. 어쩌면 조씨 부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렇게 가계를 경영하고 기록하여왔을지 모른다. 날씨를 기록하고, 품앗이나 적절히 사람을 부려 농사일을 꾸려나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니 말이다.

일기에는 수많은 사람이 나온다. 피난지에서 각별히 서로를 위로하고, 무시로 들러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나랏일과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면 조씨 부인댁에 머물던 사람들의 행적이 이렇게 기록될 줄 몰랐을 것이다. 미소가 절로 나온다. (그 중엔 남양 홍씨 중조의 이름도 있어 반가웠다. 역사 문헌에서야 자나 호, 벼슬과 저서나 나올 뿐, 소소한 일상과 총총 걷던 걸음을 알 수 없지 않은가?)

 

이 책의 문헌적 가치는 그 외에도 무수히 많다. 정치적인 사건의 이면이나 외손봉사나 친정 조카를 불러 친정 제사를 돌아가며 지내는 모습, 수많은 제사들, 천출 자식과의 관계 등이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실적 기록 사이에 이따금 흥건한 눈물이 배어있다. 조씨 부인은 자식 여럿을 모두 잃었다. 어려서 혹은 다 키워서! 그는 세상을 떠난 아들과 며느리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슬픔을 담담히 기록하였다. 전쟁 중 한 부인이 삶에 철저하면서도 이토록 애절할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을 오가는 사이, 일기는 그의 슬픔을 치유하고 현실을 견뎌내게 하였을 것이다. 그 일기의 행간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운다.

흐리고 맑은 수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더러 삶이라 말하고, 더러 역사라 일컫는 시간이다. 하지만 남평 조씨에게나 나에게나 그것은 오늘이다. 소중히 살아갈 아름다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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