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파랑
정이담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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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파랑.

듣는 것만으로도 입 안에서 몇 번이고 굴려보게 하는 제목이었다.


불온하다, 무엇이? 파랑, 어떤?


불온하다. 온당치 아니하다.

이것이 내가 알던 불온하다의 의미였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내 머릿 속에는 "사상이나 태도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는 의미의 불온하다가 남았다.


불온한 소녀, 해수.

그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바다에 언니를 잃고, 할머니까지 잃어버린 해수는 불온한 세상 속에서 불온한 것들과 싸우며 살아 남았다. 아니, 살기 위해서는 싸워야만 했던 게 아닐까?


영혼의 뒷면에 파란 우울같은 상처가 일렁이는 상태로 그렇게 해수는 매일매일을 버텨냈다. 하지만 해수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제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간 바다를 이해하고자, 그곳에 더 다가가고자 인간이기를 포기하더라도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파란 은하.

은하는 파란, 은하였다.


딥 블루, 푸른 빛의 해수를 인간생에 묶어두는 끈이기도 했고

우울한 블루, 제 영혼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우울을 등에 이고 살아갔으며

무서운 파랑, 불온한 세상에 맟서는 파랑과도 같은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바다에 아버지를 잃고 바다를 두려워하게 된 은하는 불온한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 우울로 저를 감싸고 숨죽이며 살고 있었다.


더는 온전해 질 수 없는 이 세상 속에서 온전한 것을 찾아, 저만의 낙원을 찾아 떠날 정도로 이 생에 질려 있으면서도 은하는 표출하지 않는다.


난폭하고 잔혹하기 짝이 없는 파랑을 숨기고 있는 바다처럼, 깊은 우울을 숨기고서는 지구 밖에 존재할 저와 해수의 낙원을 찾아 떠난다.


이 소설은 불온하기 짝이 없는 두 소녀의, 더 없이 불온하기 짝이 없는 푸른 이야기이다.


내게 있어 이 소설은 금단의 열매와도 같았다. 퀴어 소설이 대표작인 작가의, 어딘가 퀴어 냄새가 나는 이 소설. 불온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 머리를 옹송그리며 열심히 살아온 내게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우연 끝에 운명처럼 내 손에 다가온 이 소설은 퀴어 (성소수자) 소설이라기에는 인간 모두의 이야기를 다뤘고, 평범한 소설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퀴어 (색다른) 소설이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 소설을 퀴어 소설이 아닌, 해수와 은하의 이야기라 평하고 싶다. 


도대체 그 둘이 아니었다면, 그 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이 불온하기 짝이 없는 파랑이 가능했을까?


해수의 자리를 그 누구로 바꾸어보아도, 은하의 자리를 그 누구로 바꾸어보아도.


둘을 이어주는 푸른 끈도, 둘이 영원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그 바다도, 영혼의 뒷면 가장 어두운 곳에 새겨진 그 우울한 상처까지도 모두.


성별이나 나이, 인종을 모두 떠나서 은하와 해수의 자리에는 본인들 외에는 적합한 존재가 없었다


그래, 이 소설은 그렇기에 더더욱 불온한 파랑이다.


내 마음에 불온하기 짝이 없는 파랑을 일으키고 저들은 낙원을 향해 떠나버린!


불온하기 짝이 없는 어느 파아란 사랑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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