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 일본군'위안부' 김복동 증언집 일본군위안부 증언집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머리카락 빠지는 거 싫어.

아름답고 싶었어,
나를 잃고,
나무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아름다운데.

아름다워지고 싶을 때마다 죽은 얼굴에 화장化粧하는 것 같았어.
조금 있으면 땅속에 묻힐 얼굴에.

나는 사랑을 못 해봤어.

시시한 사랑 말고 죽고 못 사는 사랑.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본 적 없어, 일생을 .....

37년을 내 옆에 그림자처럼 있었던 사람에게도 그말을 안 했어, 못 했어.
끝까지,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어.

못 견디게 보고 싶은 게 뭐야?
죽을 만큼 보고 싶은 게.

사랑은 내게 그 냄새도 맡아본 적 없는 과일이야.
빛깔도 본 적 없는.

그래서 너는 사랑을 알아?

너는 너,
나는 나.

그래도 네 얼굴이 보고 싶어.

내가 나를 사랑하는지 모르겠어......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어. 내 운명을.

나를 사랑하고 싶지 않아.

62-64p

이해할 길이 없었어.
전생이 아니면, 전생에 지은 죄가 아니면,
내가 겪은 일들을.
생각한 적 없어서 모르겠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나는 남에게 욕먹는 거 싫어, 남 욕하는 것도, 헛짓,
헛소리하는 것도 싫어. 남에게 빚지는 것도.

29p

오늘 돌아가셨다지....
그이는 끝까지 이름을 못 밝혔다지.
끝까지 자식들 생각하느라.
끝까지 이름 없이…....
과거가 자식들 얼굴에 먹칠할까봐.

80p

나는 감정이라는 걸 몰라.
외로움 같은 거 안 느껴, 못 느껴.
나 외로운 건 못 느끼는데,
남 외로운 건 느껴.
느끼고 싶지 않아도 느껴져. 맡고 싶지 않아도 맡아지는 냄새처럼.
외로운 사람을 보고 있으면 힘들어.
그래서 눈이 멀었을까.

엄마가 나이를 알려주었어.
엄마는 내 나이를 세고 있었나봐, 나도 세지 않던 내 나이를,
엄마는 죽은 자식의 나이도 세는 사람이니까.

그곳에는 계절이 없었어.
세상에 계절이 없는 곳도 있다는 걸 그곳에 가서야 알았어.
그곳에는 낮과 밤만 있었어,
밤과 낮만 있거나.

내가 자식들을 죽였대…….

불 끄지 마.

18p

나 시집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어.

"엄마, 나 시집 못 간다."
"왜, 나이가 찼으면 시집을 가야지."

그때만 해도 스물두 살이면 노처녀였어.
"내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 못 해도 엄마에게는 말해라."
"내가 간 데가 공장이 아니더라, 군인 받는 공장이더라."
내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통곡했어.
그런 데가 세상 어디에 있느냐고 했어, 그런 일을당하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 나올 수가 있느냐고,
"죽어서 조상님들 얼굴을 어떻게 본다니…… 너를그런 데로 끌고 가는 줄 알았으면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못 보낸다고 할걸."

128p

군인들에게 끌려다닐 때,
나는 나를 찾지 않았어.
해방되고 다들 나를 찾을 때도,
나만 나를 찾지 않았어.
나 없이 살았어, 나 없이……..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어..
눈을 떴더니 내가 예순두 살이었어.
까만 원피스에 까만 구두를 신고 집에 돌아왔을 때스물두 살이었는데.

엄마는 돌아가시고,
내 옆에 아무도 없었어.
내가 나를 찾으려고 하니까 큰언니가 말렸어. 조카들 생각해서라도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그래도 나를 찾고 싶었어.
예순두 살에 나를 찾으려고 신고 했어.
신고하고 큰언니가 발을 끊었어.
우리 아버지, 엄마 제사 지내주는 조카들까지.
나를 찾고,
더 쓸쓸해졌어.
"오사카에 지진이 났어?"
사람이 많이 다쳤어?
내가 도움 줄 게 없을까?
1995년에 오사카에 갔어.

그곳 역사박물관에 들렀다 우연히 사진을 한 장 발견했어.
‘일본의 간호부들‘이라는 설명 아래 간호복 입은여자들 사진들이 걸려 있었어..
그 속에 낯익은 여자 얼굴이 있었어..
"저 여자, 나 아니야?"
내가 사진 하나를 손으로 짚어 보였어. 사람들이그 사진 속 얼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어.
다들 사진 속 여자가 내가 틀림없다고 했어.
싱가포르 제10육군병원에서 간호복 입고 찍은 사진이었어.
내가 까맣게 잊고 있던 사진이 오사카 역사박물관에 걸려 있었어. 일본의 간호부 사진들과 함께.
그리고 몇 년이 흘렀어.

내 사진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어.
그새 박물관에서 어디로 치워버려서.


+ 1991년 9월 18일 ‘정신대 신고전화‘가 개설되었다. 김복동은 1992년 1월17일 정신대 신고를 했다.
++ 2018년 6월 18일 일본 오사카에 5.9 지진이 발생했다.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왔더니 전쟁이 났어.

(중략)

전쟁 때 내 고향 사람들을 죽인 건 인민군들이 아니라 경찰들이었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농사짓고, 소 치고살던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죽였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하늘이 멀쩡한 게이상했어,
검게 문드러지지 않고 파란 게.

141p

진짜 날 사랑했어.
술도 못 마시고 말도 별로 없었어.
날 너무 좋아하니까 싫었어.
날 여보라고 불렀어.
내게 한 번도 화낸 적 없어, 큰소리 낸 적도.
내 과거를 모르고,
내게 늘 미안해했어.
내 소원은 자식 하나 낳는 거.
새벽마다 찬물로 목욕하고 절에 가 불공을 드렸어.
군인 받는 공장에서 보름에 한 번꼴로 맞았던 606호 주사가 불임 주사였던 걸 모르고,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내 몸이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걸 모르고.

145p

엄마에게 묻고 싶어.

"엄마, 내가 몇 살이야?"

사람들은 내가 엄마를 닮았다는데,
나는 모르겠어.
내가 집 떠나고,
엄마가 새벽마다 기도했대. 내가 돌아올 때까지..
세상 모든 엄마는 비는 사람이야, 기도하는 사람이야.

170p

자기가 악한 걸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아.

202p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는 묻는 소설이다. 소설에는 묻는 이야기, 묻었던 경험, 묻어버린 나에 대한 질문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방향을 가늠하기어렵게 쏟아지는 물음으로 가득하다. 김복동, 평생을 일본군‘위안부’ 피해 진상 규명을 위해 싸워온 투사이자 생존자. 집회와 미디어를 통해 그녀의 이야기는 자주, 오래 전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바로 문제는 거기 있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 라는,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는 그런 감각.

(...)

이는 그녀들,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만이 아니라 학살 생존자들, 개인의 경험이 폭력의 역사 속에 묻혀버린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하다. 그리고 이렇게 폭력의 역사 속에 묻혀버린 한존재의 경험, 기억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가는 역사가들, 소수자의 삶을 고민하는 이들이 오래 천착해온 지점이다. 그렇게 묻혀버린 한 존재의 삶은 땅속, 바닷속에 묻힌 유물을 발굴하듯이 발굴될 수 없고, 사라진 옛 유적을 복원하듯이 복원되지도 않는다.

211-212p

진실로 내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진실로.

한 엄마에게서 태어난 형제도 나를 이해 못 하는데 누가 나를 이해하겠어.
형제도 못 믿는 내가 누구를 믿겠어.

188p

어떤 응답도 듣지 못한 채 홀로-여럿의 주체 양태로 폭력의 경험과 여기서 비롯된 삶의 근원적 문제를 도맡아야 했던 복동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홀로주체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반복된 규정들이었다.
홀로-여럿의 주체 양태를 벗어나고자 하지만 복동에게 그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니 그녀 복동을 홀로-여럿이라는 외롭고 고된, 부당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그녀의 물음에답하는 일이다. 그녀의 물음에 답하는 일은 ‘왜 이런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답하는 일이자, 동시에 홀로-여럿의 주체 상태에서 벗어나 서로 여럿의 상태가 되도록 하는 일이기도 하다. 복동이 홀로 도맡았던 국가와 사회와 가족과 이웃이 해야 할 일을 이제는 저마다 각자 맡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실정적인 일들에 대한 책임을 넘어, 그 너머에 무엇보다 그녀가 홀로 도맡아 했던 물음을, 말을 듣고 되돌려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남겨졌다. 그 책임의 자리에 시적인 것이라는 이름이 들어선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는 바로 그러한 의미의 시적인 것의 한 가능성을 우리 앞에 내보인다. 응답 책임이라는 그 시적인 것이라는 이름의 윤히의 자리를 말이다.

2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