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 - 플뢰르 펠르랭 에세이
플뢰르 펠르랭 지음, 권지현 옮김 / 김영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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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최초의 프랑스 장관으로 한국을 방문한 플뢰르 펠르랭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생후 6개월 때 프랑스로 입양되어 40년 만에 한국을 찾게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아시아계 최초 프랑스 장관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각 방송사마다 취재에 열을 올렸다.

플뢰르 펠르랭은 한국계 여성 장관이라는 타이들로 한동안 이목이 집중되었다. 해외에서 성과가 있는 한국계 위인들에게 뉴스에서는 과거는 어떠하건 '한국계'라는 것을 강조하며 열을 올려 방송에 내보내는 것을 종종 본다. 어떤 경우는 전혀 한국과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도 선대 출신이 한국이라 한국계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가끔은 성공하지 못하면 한국계가 아닌 건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플뢰르 펠르랭이 한국 기자의 어리석은 질문에 “나는 프랑스인입니다”라고 대답한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솔직히 속이 시원했다. 의도된 답변을 준비하는 언론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만약 필자가 그 상황이었다면 꼴도 보기 싫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책을 준비하면 그때 받았던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한다.


“당신은 한국인이라고 느낍니까, 프랑스인이라고 느낍니까?”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기자들은 내게 한국인의 정서가 있다는 대답을 기대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내가 2013년에 한국에 애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국은 나를 어두운 골목길 모퉁이에 내버린 나라가 아니었던가. 반면 프랑스는 나에게 여권 이상의 것을 주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정부 고위직에 오를 수 있는 놀라운 가능성을 말이다. 이를 알면서 어떻게 내가 두 나라를 단순하게 저울질할 수 있겠는가.”


『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에는 종숙에서 플뢰르 펠르랭이 되기까지, 프랑스에 도착한 날로부터 장관, 사업가가 되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특히 저자의 정체성과 관련된 부분과 고민의 흔적들이 보였다. 저자는 스스로 운명을 탓하지 않고 선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저자의 선택은 입양아, 동양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사회가 만든 경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선택은 어떻게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가

경계에 갇히지 않고 넘어서는 방법

저자가 프랑스 장관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한 적도 없었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열광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고 한다. 저자는 유년 시절 누구보다 프랑스인 되고 싶었고 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부모님과 프랑스에 또다시 거부당할 이유를 만들지 않기 위해” 타고난 기질을 거스르며 어릴 때부터 규칙을 정해두고 지키려 노력했다. 저자는 강박이라 생각할 만큼 예민했다고 한다. 버림받은 기억이 저자의 일생을 강박에서 살도록 한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저자는 한국에 돌아온다면 그것은 생물학적 부모을 찾기 위해서 가 아닌 다른 멋있는 다른 방법을 오고 싶다고 했다.

저자는 프랑스 교육과정의 엘리트 과정을 수료했다. 프랑스 감사원에서 일하던 중 2002년 사회당 대선 후보의 연설문 작성을 담당하면서부터 정치에 입문했다. 2007년 대선 때는 IT 정책보좌관으로서 디지털경제 전문가로 활약했고, 2011년 당시 올랑드 사회당 후보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 그녀에게 다양한 분야의 관직 제의가 있었지만 '디지털'분야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장관을 역임하면서 정치의 장단점을 모두 경험한 저자였다. 플뢰르 펠르랭은 자신의 자리를 찾고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다. 저자는 동양인 외모였기에, 성별이 여성이기에 ‘가사도우미’ ‘게이샤’ 등의 모욕을 감당해야 하기도 했다.

험난한 정치판의 경험을 뒤로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고난이 찾아왔다.

저자는 장관 시절 한국과 맺은 인연으로 한국 기업과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을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사업 시작 전 파트너와 작성한 ‘의향서’가 ‘계약서’로 오인되면서 공직자의 윤리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가택 수색을 당하고 수십 명이 조사를 받았다. 무혐의로 결론이 나기까지 18개월 동안 언론을 통한 노출과 비난을 감당해야 했다. 저자는 이제 코렐리아캐피탈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할 준비를 하고 있고, 플뢰르 펠르랭은 장관 시절보다 더 자주 한국을 방문한다. 한국에 대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방문이라는 것이다.


내 수치심은 사라졌고 우리의 운명은 얇은 트레이싱 페이퍼 여러 겹을 포개 그린 조화로운 그림처럼 겹쳐 있다.

보이지 않는 여러 개의 선이 만나 한국과 나 사이에 무언가 중요한 것, 유전자로 정해지지 않은 것이 만들어지고 있다. 멀어짐과 망각, 무관심의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만나는 선택을 했다.


『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에는 저자의 개인사가 담겨 있었다. 저자가 입양되어 장관이 되기까지의 생활 모습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특히 입양아로서 겪었던 마음들이 진실되게 담겨있는 것 같다. 저자는 양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라는 것에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수치심을 극복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저자의 모습을 절로 응원하고 싶었다.


아무리 힘든 시련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회복력은

우리를 복합적이고 정교한 사람,

더 나아가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어 준다.


저자가 이방인이면서 프랑스인으로 살아가는 모습과 철저한 프랑스인으로 살다가 저자를 버린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의 솔직한 감정. 가족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성숙하고 성공적인 삶의 바탕이 되었고, 내면의 상처는 지금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는 인식 변화는 저자가 새로운 삶을 살고 도전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되었다.

저자는 한국 역사를 개인사에 의미를 부여했다. 1970년대 빈민가에서 태어나 열심히 일한 덕분에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는 강한 사람이 되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인적 자원과 산업 정책에 주력해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고, 문화적으로도 성공한 한국의 영향력과 집단 지성에 관심을 가졌다. 저자의 개인사도 한국의 발전도 함께 성장했던 맥락에서 함께 의미를 부여한다. 전직 문화부 장관으로서 바라보는 한류의 힘과 성공에 저자는 감탄했다.


한국인은 나를 한 개인으로 자랑스워하고, 나는 한국인이 자랑스럽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반전이다.


현재 저자는 수치심이 사라졌고 조화로운 그림처럼 한국과 저자 사이의 중요한 무언가가 생겼다고 한다. 급작스러운 마무리 같은 느낌은 약간 애매했다. 저자가 느끼는 나쁜 감정들이 사라지고 수치심이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반전인 것 같다.


『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에서 사회적 갈등과 충돌이 있었지만 극복해가는 저자의 노력과 모습에는 도전과 응전이라는 힘을 얻게 한다.

저자의 노력과 도전은 무한한 세계에 대한 도전을 외치는 것 같다.

『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는 에세이보다는 전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을 통해 프랑스의 교육제도, 정치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성장기 어린이에게 가정과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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