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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생활자의 열두 달 - 그림으로 배우는 실내외 가드닝 수업 ㅣ 오경아의 정원학교 시리즈
오경아 지음 / 궁리 / 2018년 3월
평점 :
"아는 만큼 쉬워지고, 쉬워진 만큼 가까워지고,
그렇게 또 새롭게 꿈꿔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원 생활의 참 즐거움이다."
농가월령가. 글을 모르던 농민에게 일 년 열두 달 농사를 짓는 방법을 알려주는 노래.
생각해 보면 농부만큼 농사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 이런 노래가 있었다는 건 그만큼 일 년을 내다보며 경영하기란 쉽지 않고, 배움도 끝이 없다는 것일 것이다.
처음 화초를 키우던 때가 생각난다.
처음 키운 율마가 어느 날 노랗게 말라갔다. 화분을 들고 아파트 장터 식물 파는 아저씨에게 율마가 살 수 있겠냐고 물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00% 살릴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그 아저씨는 어쩌자고 분갈이를 해주셨다.
그 이후로 나는 가드닝을 쉽게 해준다는 책을 구입했고, 인터넷을 떠돌아다녔으며, 식물 카페에 가입을 하고 식물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포스팅하는 블로그를 기웃거렸다.
그렇게 얻은 지식과 실전 경험은 이제 제법 베란다 정원을 큰 어려움 없이 꾸릴 수 있게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지금 이 지점에서 필요한 건, 차분히 내 정원을 들여다보며, 세밀하게 보살피고 식물 하나하나가 가진 아름다움과 쓸모를 충분히 느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정원생활자의 열두 달은 그런 책이다.
매달 해야 할 일과 누려야 할 아름다움을 알려 주는 책.
이 책은 우선 아름답다. 열두 달을 그림으로 표현한 삽화도 아름답고, 작가가 알려주는 정원을 만드는 방법도 아름답고, 무엇보다 식물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잘 표현했다.
그 아름다움은 익숙하기도 하지만 또한 새롭기도 한데 그 새로움은 영국에서 오랜 기간 조경학을 공부한 이력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또한 정원을 꾸리는 데 필요한 지식도 충실히 전달한다. 그림을 곁들이는 설명이라 더 이해가 더 쉽다. 특징을 잘 드러낸 그림은 사진보다 필요한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잘 전달한다.


책에 나오는 그림을 보면서 여름내 아무렇게나 자라서 형편없는 몰골이 된 마리노라벤더를 둥글게 가지치기 했다.
9월 정원에서 해야할 일을 보며 수선화 구근을 수확해서 베란다에 방치해 둔 게 떠올랐다. 냉장고 야채칸에 넣을 시기를 놓치지 않게 되었다. 또 핑크부티의 시든 잎을 뜯다 잘못해서 구근째 뽑힌 잎을 컵에 장식해 보기도 했다. 겨울이 오면 잘 갈무리를 해 줘야겠지만 당장은 보기에 아름답다.




또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얻은 지식이라 얕은 밑천이었던 내 가드닝 지식도 한 겹 두터워졌다.
그냥 걸어두면 잘 큰다고 대부분의 판매자가 입을 모아 말하던 틸란드시아는 사실 세밀하고 꼼꼼한 보살핌이 팰요했다. 하루에 세 번 이상 분무기로 물을 뿌려줘야 한다니. 날로 상태가 좋아지지 않던 내 틸란에게 미안해진다.
동백은 축축하고 그늘진 환경을 좋아한단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아이라 습도가 높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늘진 환경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꽃을 예쁘게 피우려는 생각으로 땡볕에 두었었다. 잎이 말리는 건 그냥 내 느낌이라 믿으며.
한 가지 의문점은 인공조명이 필요하지만 아직까지 어떤 빛이, 어떻게 식물의 성장에 관여하고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정육점을 떠오르게 하는 빨간 식물등이 꺼려져 설치하지 못했는데, 열을 내지 않는 환한 LED등이면 아무거나 상관없는 것일까. 다양한 식물등을 사용하는 가드너의 경험을 충분히 참고해 볼만하다.
정원생활자.
이책이 내게 준 이름이다. 썩 마음에 든다. 흔히 가드너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앞으로는 이 말을 사랑할 것 같다. 이제 나도 정원생활자로 1년을 차분히 내다보며 정원을 경영하고 다음해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다시 꿈꾼다.
베란다를 벗어나 땅에 뿌리 내린 아름다운 나만의 정원을 설계하고 가꾸는 수고로움을 차분하고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