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계가 마을로 온 날 - 가장 어두울 때의 사랑에 관하여
짐 디피디 지음, 장상미 옮김 / 갈라파고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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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를 쓴 작가들이 모조리 내가 관심가는 작가들이라서 덥석 읽었는데 초반에는 해외 지명도 헷갈리고 인물도 너무 많고 이름도 되게 헷갈렸다. 근데 읽다보면 알게 되겠지만 그런 거 좀 신경 끄고 쑥쑥 읽으면 좋다.

9.11테러 직후 닫혀버린 미국 영공에, 수많은 비행기들이 회항하여 다른 나라의 공항에 착륙했고, 그 중에서도 캐나다 뉴펀들랜드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담은 책.

책 속의 사람들은 모두 무너진 쌍둥이 빌딩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지만, 참사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은 모두 제각각이다. 무너진 건물에서 아들이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부모, 사상 초유의 비행기 테러로 충격 받은 승무원, 영문도 모르고 영어도 못하는 사람들까지. 그런데 책에는 하나같이 아름다운 '뉴피'의 모습과 거기에 감동하고 보답하는 '비행기 사람들'의 모습만이 반복된다.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선행한다. 솔직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좋은 것만 골라 쓴 건 아닐지 의심되고, 20년 전이 아니라 200년 전의 풍경 같기도 하고, 아니면 20년 사이에 사람들이 정말로 그렇게나 삭막해졌던가..

나쁜 소식이 너무 많다. 티비 뉴스에도, 인터넷 기사는 물론이고 댓글에도, 그놈의 알고리즘이 뭔지 종류별로 내가 놓친 죽음의 소식들을 전하는 유튜브에도. 갈등, 그로 인한 희생, 또 다시 그로 인한 갈등이 반복되는 굴레를 계속 목도하고 있다. 그래도 모니터에서 눈을 돌리면 가끔은 누군가 나에게 이유 없는 선물이나 미소를 건네 주기도한다. 그러면 아주 가끔, '그래 세상은 살 만 하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나쁜 소식이 넘쳐나는 세상에 내던져진 시민들에게, 잊혀지고 가려지고 미처 못 본 좋은 소식을, 누군가의 선량함을 코앞에 펼쳐주려는 것이다.

"우리가 연대 의식을 발휘하게 만든 그 고통만 빼고 그때처럼 하나가 될 수는 없을까요? 너무 무리한 바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20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뉴펀들랜드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지 '마법의 선량함 마을'은 아니다. 그러니까 저런 아름다운 연대와 희생은 다시 없을 일일 것처럼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흘린 물건을 주워줬다. 탈레반이 다시 집권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을 지켜 보고 있다. 코로나 이후로는 절대 가까이 갈 순 없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들에게 미소 짓는다. 그저 화가 나서 저지르는 범죄들이 판을 치지만 그래도, 나는 화가 아닌 사랑을 전할 방법을 궁리한다. 그래도. 적어보니 더욱 초라한 '그래도'들이지만, 이 책과 같은 '그래도'들이 모이면 부디 살아갈 수 있기를, 나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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