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정민 산문집 2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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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정민)_삶을 채우는 글과 사람

 

읽기전

책을 받고 처음 든 생각은 표지 디자인이 세련되게 잘 되었다는 점이었다. 표지 디자인 만으로도 잔잔하고 차분한 내용으로 전개될 것을 미리 예상할 수 있었다. 향기가 나는 책이라는 뒷표지 카피처럼 단아하게 그려져 있는 꽃 그림에서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최근 학교 수업으로 북커버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매주 디자인을 컨펌 받고 교수님의 요구에 따라 발전시키면서 이런 디자인 요소 하나하나에도 디자이너와 편집자의 많은 노력이 들어가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책 표지를 보고 '예쁘다!'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담았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라는 주어와 서술어가 뒤바뀐 듯한 제목은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일으키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나 또한 제목에 한 번 더 눈길을 주고 곱씹어 보았다.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는 제목은 사람이라는 text를 읽고 분석했다는 의미와, 책과의 만남이 준 감동을 간직하려는 뜻이라고 한다. 왜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는 표현을 쓰게 되었을까? 책을 읽기도 전에 따뜻하고 잔잔한 내용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읽으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생각하고 음미할 수 있는 책이다. 사실 나는 책의 서문부터 가슴에 와닿았다.

 

사람의 평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좋은 만남은 나를 들어 올려주고, 이전의 삶과 구획 지어준다. 몇백 년 전의 고인이 현재의 내 삶에 간섭하고, 나를 변화시킨다. 책 속의 짧은 일별로 나른하던 일상에 생기가 차오른다. 지금의 나는 이 같은 만남이 가져다준 변화와 소통의 결과일 뿐이다. 옛사람과 만나 나눈 대화와, 지금은 곁을 떠난 스승이나 선학에 대한 기억은 그간 내 삶을 견인해온 힘의 원천이다.

'사람을 읽고 책을 만나다' 서문 (4p)

 

저자와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사람을 만나온 것은 아니지만, 서문의 문장은 무척 공감되었다. 사람의 평생은 만남의 연속이고 헤어짐의 연속이다. 그 만남은 사람대 사람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책과 사람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라는 제목이 나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예상하지도 못했던 사람에 의해 내 삶이 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닐 수 있는 문장이 나를 만들어 가는 요소가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러 사람들과 문장들을 만나며 나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다른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이 문장은 두고두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사람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요소가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람과 만나고 책과 소통하는 과정을 '나를 구성하는 과정'이라고 말한 서문부분에서 크게 와닿았기에 책의 다른 부분도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1부 표정있는 사람

1부 표정있는 사람에서는 이덕무, 정철조, 박제가, 장조 등 유명한 고전 작가들의 작품과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한 명 한 명 소홀히 하지 않고 친절하게 작가의 일생을 들려준다. 내가 1부에서 가장 인상깊었는 부분은 장조의 청언소품집 부분이다.

 

인생을 살아간다 함은 꾸다 만 희미한 꿈의 그림자일 뿐이다. 꿈을 잡을 수 있는가? 그림자를 잡을 수 있을까? 그러나 꿈이 있기에 인생이 그윽한 깊이를 지닐 수 있고, 그림자가 있어 삶에 여백이 깃들 수 있다. 정보는 홍수처럼 넘쳐나고, 삶의 속도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가파르게 빨라져서, 어떤 새것도 나오는 즉시 낡은 것이 되고 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새것도 전혀 새롭지가 않다 보니, 낡은 것은 쳐다보기도 싫어한다. 입만 열면 정보의 바다를 말하고, ‘인터넷의 시대를 이야기하지만,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없다. 공허한 울림 뿐이다. 삶을 직관으로 투시하는 지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얄팍한 상술로 위장된 값싼 정보만이 횡행하고 있다.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_희미한 꿈의 그림자_장조의 청언소품집_40p, 46p

 

청언소품집은 숨어 사는 이의 꿈 그림자라고 옮길 수 있다. 장조가 말하는 인생은 희미한 꿈의 그림자를 쫒는 것이라고 한다. 꿈과 그림자는 잡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의 존재 여부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쫒고 있는 것 같은 지금의 나에게 이 구절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는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몇백년전 옛 사람의 생각이 지금의 나를 위로하는 것이 놀랍다. 다음 구절은 정민 교수가 생각하는 오늘 날의 모습이다. 사실 나는 완전히 공감하지는 않는다. 어느 시대에든 값싼 정보와 얄팍한 상술, 공허한 말들이 있었다. 다만 그 방식이 디지털로 바뀌고, 더욱 쉽게 확산되는 것 뿐이다. 지금 시대를 비하하고 한탄하는 것이 아닌, 어떤 시대에서든 알맹이를 찾기 위해서는 꿈 그림자를 쫒는 것처럼 자신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1부는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정민 교수의 필체에 따라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중간중간 그가 실제로 만났던 사람과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 그가 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몇몇 있었다.

 

2: 향기나는 책

 

2부에서는 정민 교수가 읽었던 작품들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나의 양반문화 탐방기, 삼국유사, 금오신화 등 한시를 사랑하는 저자의 취향이 잘 보이는 챕터이다. 그 중 내가 가장 흥미 있었던 책은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소개한 '조용하긴 뭐가 조용하단 말인가' 부분이다.

 

조선 후기의 과거 열풍을 이야기하다가 느닷없이 부란한 고용구조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무원이 갖는 직원의 안정성, 신분의 수직상승, 권력과 돈의 대한 기대 등이 얽혀 빚어지는 고시열풍의 병리적 현상에 메스를 가한다.이렇게 보면 그는 옛날을 통해 인간의 현재를 이해하는 통로를 마련하려고 이 책의 곳곳에서 애를 쓰고 있는 셈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한 번도 달라진 적이 없다. 그때그때 놓인 상황에 따른 반응이 달랐던 것 뿐이다. 인간은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이런 점을 거침없이 내뱉듯이 이야기 하므로 그의 글은 언제나 시원시원하고 통쾌하다.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_조용하긴 뭐가 조용하단 말인가 <조선의 뒷골목 풍경> _강명관 교수 (213p)

 

이 대목을 읽으며 옛날을 통해 인간의 현재를 이해한다는 부분이 정민 교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민교수가 소개하는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라는 책이 정말 매력적인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보면 과거와 현재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통찰하는 것에서 옛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정민 교수의 정신과 닮았다. 나도 읽으며 만남과 소통을 통해 지금의 나를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며

 

한 주제당 2페이지~5페이지 정도로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이라 짧은 호흡으로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을 때 읽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30대부터 5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품을 보고 썼던 글을 한 데 묶어 이렇게 책으로 출판했다.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편하게 쓴 글인만큼, 독자도 언제 어디서나, 어떤 대목이든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잠시 일상에서 위로를 받고, 과거 사람들과 글의 향을 맡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사람의 평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좋은 만남은 나를 들어 올려주고, 이전의 삶과 구획 지어준다. 몇백 년 전의 고인이 현재의 내 삶에 간섭하고, 나를 변화시킨다. 책 속의 짧은 일별로 나른하던 일상에 생기가 차오른다. 지금의 나는 이 같은 만남이 가져다준 변화와 소통의 결과일 뿐이다. 옛사람과 만나 나눈 대화와, 지금은 곁을 떠난 스승이나 선학에 대한 기억은 그간 내 삶을 견인해온 힘의 원천이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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