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역사]

 

 최초의 남미출신 교황 프란체스코: 

    부대낌을 겪는 자 

  

 

 

 

 

 

 

  영어표현 “jolt”는 우리말과 닮았다. 놀라서 “졸도”할 뻔했다는 뜻이 바로 "jolt"! 강의 듣다 졸도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마는, 준비한 원고 없이도 냉철한 수위조절은 기본![프라치스코 새교황] 국면과 자신의 속내를 공중그네 타듯 오가며 천연덕스럽게 황망한 심정을 토로하는 그 기술에 박수를 보낸다. 역시! 생략하고 싶은 그 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을 참고 있다. 역시다!

 

   사건의 발단은 항상 엉뚱한 곳에서 온다. 오늘의 토픽은 [최초의 남미출신 교황, 프란체스코]. 준비된 발표자(학생)가 막 시작하려는 순간 “오늘 강의실 문 앞에 종이 한 장이 붙어있었는데,- 모든 수업을 특강으로 대신 한다 - 뭐 그런 종이가 붙어있어서 수업을 하는지 의문이었습니다.”라며 낮에 있었던 일을 해프닝 같이 주절 되지 않는가. 강의 후 해도 될 만한 시기적절 하지 않은 발언이 사건의 발단이 되어 나의 지적 불구경이 시작되었다.

 

   담당교수는 그제야 당신의 수업만 진행되고 있고, 다른 강의는 통합 특강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낯빛이 일순간 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듯 했다. 이 일에 대해서 나는 모르쇠다. 의도적으로 아니고 진심 모르쇠다. 낮에 해프닝도 모르지만, 누가 옛교황이고 누가 새개혁가인지도 모른다. 다만, 담당교수의 시커멓게 일순간 변한 얼굴에서 자신과 대치 상태에 있는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느낌을 수업 때마다 받았을 뿐이고 오늘 그 표정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감지했을 뿐이다.

 

   오! 놀라와라! 교수는 더욱 명랑하고 특유의 행복한 미소로 감정을 치고 올리며 그의 쾌도난마, 명쾌한 강의를 이어갔다. 오늘의 해프닝과 발표내용을 가지고 상대에 대한 폭로나, 그 어떤 비난의 어조도 없이 당신의 속내를 시원하게 표현하였다. 안다리기걸기의 되치기를 해내는 그 순발력과 빈틈없는 명석한 대치와 환치를 보며 "jolt" 할 듯 전율이 감돌았다는 말이 나의 글의 전말이다.

 

   그렇다면, 질책과 설교로 개인사설을 푼다고 강의는 지지부진했을까? 아니다. 강의는 처음에 말했듯이 황홀경이었다. 즉, 당신의 두 개의 needs- 황망함의 개인 분노표현과 카톨릭의 새 교황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 전달- 이 두 needs를 완벽한 하모니로 그 자리에서, 준비된 원고도 없이 그 어이없음, 그 불편함을 다 털어놓고 유유자적 강의실을 나가지 않는가. 쿨~! 브라보~!

 

   성경에 '두 마리의 물고기와 4개의 빵이 들어 있는 바구니'로 5천명을 먹이셨다는 기적은 들어봤지만, 두 개의 문장과 4개의 단어로 묶은 갈등을 지성적 발설로 올킬시킨는 이 교수를 보라. 남미출신 최초의 교황, 베르고글리오 프란체스코 교황]에 대한 학생 발표자의 직역원고를 보충하며 담당교수가 부연설명으로 한 이야기는 그 내막을 넉넉히 전달하고도 몇 광주리는 남지 싶다.

 

   오늘의 토픽으로 돌아 가보자. 영국성공회가 국교가 되며 카톨릭에 대한 탄압은 극치를 이룬다. “Test Act" 심사율이라고 하여, 요약하면 1673년 영국에서 비국교도(非國敎徒)가 공직을 가질 수 없도록 규정한 법률이다. 비국교도란 카톨릭을 겨냥한 찰스2세의 가톨릭교 정책을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19세기에 들어서 자유주의 풍조가 높아짐에 따라 비판을 받아 1828년 폐지되긴 하였으나 Test Act라는 심사법은 의식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교수는 묻는다. 영국만 그런가? 한국을 관통하는 심사법,Test Act는 무엇인가? 과거에는 출신지라고 자문자답하신다. 영남과 호남의 출신지가 고위직 상승의 족쇄였던 시절이 있었고 그 의식은 남아있다. 여기서, 수위조절을 하셨다. 또 다른 Test Act(꼬집기1)는 우리가 생각하도록 건너 뛰셨다. 수강생들조차도 머릿속에, 혀 끝에 대롱되는 그 말을 삼키고만 있었다.

 

   게다가 프란체스코 교황은 최초의 예수회(Jesuit) 출신의 주교이다. 그야말로 마이널러티 중에 마이널러티이다. 여기서, 잠시 당신의 영국 유학시절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영국은 영공성공회 교회에 출석해 보면 모두 럭셔리정장에 격식 갖춰진 성공한 사람들만 오는 그런 분위기라 유학생에게는 어색하고 불편하였다. 반면에 카톨릭교회를 가보면 구멍난 청바지, 평범한 일상복, 가난하고 권력 없는 마이널러티들의 편안한 분위기. 그 친근함으로 인해 영국 유학 가서 카톨릭을 받아들이는 유학생이 많아졌다한다.

 

   이방인이자 사회적 영향력없는 유학생에게는 그 분위기 더 편하기 때문이다. 즉, 마이널러티와 마이널러티(꼬집기2)의 만남! 딱, 꼬집고는 그러고는 입을 딱 다무신다. 또, 적절한 때에 수위조절을 하신다. 앞의 꼬집기와 지금의 꼬집기는 연관성이 있다. 귀있으면 들어라. 이런 말은 안한다. 그러면서, 이보다 크리티컬하게 쏘아 붙이는 비꼬기! 입단속이 장난이 아니다. 군더더기가 없으니, 더 치명적이다. 와우! 치고 빠지는 이 스피치!

 

   발표를 듣던 중 담당교수가 갑자기 벌떡 서신다. 발표자에게 이 문장이 제일 어려운 부분이다. 다시 해석해보라! 여러분 생각은? 수강생들에게 잘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못 알아 들을까봐 이런 말씀을 덧입히셨다. 이 칼럼을 쓴 작가가 말하는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Despite his age and his closeness to the conservative Benedict, Francis may be a reformer. It is hard to imagine of a man who ditched his limousine and palace in Buenos Aires and took the bus to work from a humble flat // putting up with nonsense from Vatican smoothies. (문장 1)

 

   프란치스교황은 개혁가이다. 다음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면 말이다. 번지르르한 달변만 쏟아내고 비리를 저지르는 말도 안되는 바티칸의 말쟁이들을 참아내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궁전같은 공관과 전용 무진을 걷아차고, 궁색한 집에서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을 상상하기란 힘들다.

 

   여기서, 교수가 강조한 칼럼니스트의 비틀기 기술로 다시 해석해보면, 그런 것을 참아내고 해내면 개혁가이지만, 바티칸 스무디들을 참아내는 자를 상상하기 힘들다. 즉, 못 참아낼 것이라고 칼럼리스트가 시니컬하게 하는 말이다는 것이다. 바티칸 스무디와 개혁가(꼬집기3)! 이렇게 양분되는데...여기서, 다시 수위조절. 절제에 절제를 거듭하며 할 말 다하시는 교수! 서늘하다.

 

   또, 한 문단을 집중적으로 해석 보완하셨는데, 다음의 내용은 정말 재밌고 또 슬프다. 보자! And, from sectarian chants at Scottish football matches to the outgoing Pope Benedict's clumsy criticisms of Islam, tensions with other religions can turn into violent strife. (문장2) 오늘따라 발표자가 발표를 하는건지, 문장해석을 하러 나온건지 단호함 없이 질문을 모두 교수님께 토스하네요. 오~! 이때라! 그때마다 교수는 쾌도난마가 돼서 문장도 명쾌히 해결줄 뿐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을 빗대어 꼬집어 내어 단 칼에 베어버리는 참으로 명언의 장수라는 졸도할 감동을 준다.

 

   위 문장의 함축하는 의미는 이렇다. 나대기 좋아하는 베네딕트교황이 이슬람에 대해 어설프게 비판한 것 때문에 시골 구석 축구경기장에서 조차도 분파가 일어나서 구호가 터져나올 정도로 괜시리 타종교와의 갈등만 유발했다는. (꼬집기4) 와~! 쎄다. 어퍼컷!

새교황 프란치스가 직면한 상황에 대한 칼럼을 해석 발표하는 발표자를 보충해가면, 절묘하게 그 문장 문장에서 자신의 오늘의 황당함과 감정의 부대낌을 실어내는 스피치 기술과 표정관리에서 Majority의 저력인가 싶기도 하고, 미국유학파와 또 다른 영국유학파의 저력인가 싶기도 하다.

 

   지적 불구경은 정말 재밌다. 아! 이렇게 하는거구나!

안타까운 것은, 어느 쪽이 바티칸 스무디이고 어느 쪽이 산더미같은 골칫거리 카톨릭의 고질적 병폐를 떠맡은 새 교황 쪽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고질적 병폐이고 어느 쪽이 개혁가인가? 서로가 너가 바티칸 스무디! 서로가 내가 개혁자! 라고 할지도 모른다. 불구경하는 나는...! 나는 양측 모두에게 디스(disconnect)다. 왜냐면, 확실한 건 나는 바티칸에 속하지 않는다. 또, 확실한 건 새 교황의 개혁안은 “ 누구를 위한” 개혁안인지 정보가 없기 때문에 판단유보다. 고로, 나는 디스다.

 

  그러나, 이 지적 불구경으로도 내가 성숙할 수 있기에 감사한다. 양측 모두 화이팅이다!

 

   p.s. 이 기사서평을 읽게 되실 교수님께 - 저는 카톨릭이 아니니 염려마세요. 구경만 하겠습니다. 두뇌를 쓰고 봐야하는 추리영화에서 피고인(오늘의 발표자)의 변호사(담당교수)가 되어 예리한 추적을 해나가는 것 같은 명장면을 연줄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매력적인 수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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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로라의 묻지마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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