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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 독일인에게 배운 까칠 퉁명 삶의 기술
구보타 유키 지음, 강수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평점 :

친절한 나라에 살 땐 불행했는데
불친절한 나라에 와서 행복해졌다
이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나라에서 살 땐 불행했다. 세계에서 가장 불친절한 나라에 와서 행복해졌다.” 저자는 일본의 출판사에 근무하는 편집자였다. 밤낮으로 일해도 일은 끝나지 않았고 남에게 끝도 없이 “죄송합니다.” 사과해야 할 일과 “감사합니다.” 감사해야 할 일이 늘어갔다. 마음의 여유를 잃고 도망치다시피 독일에 도착했을 때, 이방인에겐 모든 것이 의문스러웠다. 모두가 빈둥거리는데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잘 돌아가는 걸까. 자신들도 ‘서비스 불모지(不毛地)’라 우스개 소리할 만큼 불친절한데 왜 싸우지 않는 걸까.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수수께끼는 독일 생활에 적응하면서 자연스럽게 풀리기 시작했다. 내가 1년에 한 달 휴가를 가니까 남도 내가 쉬는 만큼 동등하게 쉬어야 한다. 내가 남에게 억지로 서비스하지 않기 때문에 나도 남에게 서비스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서로 희생하지 않으니 눈치 볼 필요 없고 서로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할 필요 없는 명쾌한 이상 사회!
덴마크 휘게와 닮은 듯 다른
독일판 휘게 ‘게뮈트리히’
안락하고 아늑한 상태를 뜻하는 덴마크어 휘게(Hygge)가 서점에 등장하고 몇 년, 그 뒤를 따라 스웨덴 라곰(Lagom), 프랑스의 오 ?(Au calme), 네덜란드의 헤젤러흐(Hezellig) 등 일상 속 소박하고 행복을 뜻하는 단어가 잇따라 등장했다. 독일어에도 휘게와 닮은 단어가 있다. ‘안락하고 편하다’, ‘ 느긋하게 쉰다’라는 뜻의 게뮈트리히(gem?tlich)다. 일상 대화에서는 ‘게뮈트리히한 집’이라는 식으로 쓰이는데, 단순히 기분이 좋은 것에서 한 발 나아가 내가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사람과 시간과 공간을 뜻한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장작불 옆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것이 휘게라면, 침대에 좋아하는 색의 소품을 놓는 것, 손님을 위해 특별한 요리를 하는 것보다 식탁에 좋아하는 반찬을 하나 더 차리는 것처럼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보잘것없을 만큼 사소한 일이 바로 게뮈트리히다. 책은 이처럼 소소하기 때문에 별다른 준비 없이 오늘부터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게뮈트리히’한 행복의 기술을 전하고 있다.
남을 위한 일상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책은 저자가 독일에서 10년간 생활하며 배운 독일인의 일하기, 쉬기, 살기, 먹기, 꾸미기 방법을 5개의 챕터에 걸쳐 소개한다. 일하고 쉬고 살고 먹고 꾸미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당연한 일상을 하나의 챕터로 묶어서 소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일상과 독일인의 일상을 하나씩 비교해 보도록 한 배려가 아닐까. 저자는 책 속에서 “독일인처럼 사세요. 그럼 인생의 모든 게 해결될 거예요.”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와 조금 다른 세계관의 다른 가치관을 가진 나라의 일상을 조곤조곤 전해줄 뿐이다. 새 시대에 필요한 생존 전략도 거창한 성공 노하우도 없지만, 덕분에 이웃집에 독일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일상을 지켜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은 까칠하고 퉁명스럽게 살아가도 잘 돌아가는 사회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깨닫는다. 건강한 개인주의야말로 나보다 남을 위해 살아가는 데 익숙한 우리가 진정한 나를 위한 인생을 살기 위해 첫 번째로 가져야 할 마음의 무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참 예쁜 책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는 표지부터 내지까지 여행작가의 여행서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런데 이 책은 여행서가 아니다. 이 책은 에세이! 출판사에서 근무하다가 지칠데로 지친 일본인 작가가 어린 시절 1년간 따스하고 느긋했던 경험을 한 곳인 독일로 다시 떠나며 슬로우 라이프로 살아갔던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2002년, 기약 없이 떠난 작가는 지금까지도 독일에서 머무르며 일본 매체에 독일 라이프를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중간 중간 독일 스냅 사진이 담겨 있어 사진을 보는 재미를 주는 책. 그리고 덕분에 좀 내용이 술술 넘어간다고나 할까.. 사실 에세이가 다 그렇듯 이 책도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작가가 생각하고 따르는 라이프스타일이 독자와 전혀 다르다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 나도 그렇다. 독일에서 저자가 느낀 삶이 나에게 그렇게 확 와닿지가 않은 것이다. 그래도 뭐 이런 인생이 있다면 저런 인생도 있는 거니까!
물론 책 속에서 묘사된 독일에서의 삶이 나에게 전부 와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유럽인 만큼 우리나라보다 복지도 잘 되어 있고 개인적인 사생활도 사생활로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많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나에겐 책 속 삶을 살고 있는 작가의 라이프가 꽤나 유토피아처럼 느껴졌다. 아직 독일에 아니, 유럽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일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독일로 여행을 한 번 떠나봐야 겠다. 그러면 <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가 조금 더 와닿을 수 있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