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는 날이 올까?”
《편지》는 2006년 11월 영화 개봉을 계기로 문고판이 출간되면서, 출간 한 달 만에 130만 부라는 일본 출판 역사상 경이로운 기록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5주 연속 종합 1위, <아마존재팬> 문학 부분에서 6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영화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객으로 붐벼 일본에서 《편지》 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두 번의 뮤지컬화, 연극화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일본 인기 탤런트 카메나시 카즈야 주연으로 드라마화되는 등 몇 차례나 영상화, 무대화된 수작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본격 추리물을 비롯해 뛰어난 미스터리를 선보여온 작가다. 독자를 단숨에 빨아들이는 흡인력,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매끄러운 장면 연출은 독보적이다. 그러나 작가의 진짜 능력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사람의 이야기 외연에 일본 사회의 병폐를 녹여 넣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편지》는 반전이나 트릭이 없지만 그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새삼 확인하게 해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점이 작가의 작품 세계를 그저 엔터테인먼트 문학이라고 폄하해버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한 통의 편지가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살인 그 이후의 이야기!
나오키에게는 매달 벚꽃 도장이 찍힌 편지가 배달된다. 답장을 하지 않아도, 이사를 가도 어김없이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편지. 나오키에게는 외면할 수도, 포용할 수도 없는 살인자로부터 온 편지이다. 그 편지는 나오키가 행복을 움켜쥐려고 할 때마다 발목을 잡는다. 학교에서는 그가 학업을 중단하고 떠나주길 바라고, 아르바이트 점장은 그의 존재를 불편해하며, 음악에 걸었던 청춘의 꿈은 사라지고,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는 그를 내친다. 그 버석거리는 삶의 굽이굽이마다 그의 발목을 잡는 건 검열 마크 대신 푸른 벚꽃이 찍혀오는 교도소의 편지다. 그 편지에는 자신의 과오에 대한 뉘우침과 피해자에 대한 속죄, 나오키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하지만, 편지를 받을 때마다 나오키는 자신이 사회에서 껄끄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저 스스로가 답을 찾아가며 써내려간 작품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편지》는 한마디로 차별과 속죄에 대한 이야기다. 살인자를 가족으로 두었다는 이유로 이 사회에서 가해자의 가족이 겪는 유무형의 차별과 편견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속죄의 범위에 대해 독자들에게 묻는다. 살인자인 가족을 미워해도 될까. 차별이란 정말 나쁜 것일까. 속죄는 언제까지, 어디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일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쉽게 답할 수 없는 물음을 소설 속에 머금은 채, 자신의 핏줄인 형이 저지른 일 때문에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동생의 입장에서 소설을 전개해나간다. 죄를 지어 끊임없이 편지로 속죄하는 살인자, 죄는 없지만 끊임없는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 살인자의 동생과 그런 동생을 불편해하는 사람들. 《편지》는 그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줄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스스로 답을 찾아가며 쓴 작품이다. 가해자의 가족 입장에서 서술한 이 소설은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가슴 먹먹한 아픔을 전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한 사람의 작은 이야기에서 수많은 울림을 주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감동적인 소설, 이제 우리가 다시 한 번 만나볼 차례이다.
알에이치코리아(구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편지>의 10주년 기념으로 리커버 에디션을 출간했다!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 책 도장깨기 중이라 열심히 읽고 있는데 <편지>는 바로 두 달 전에 읽었던 책 중 하나이다. 요즘은 가가형사 시리즈를 읽고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 중 하나인 <편지>는 여타 추리물처럼 사건의 범인을 추리해나가는 형식과는 전혀 반대로 진행된다. 이야기의 시작에 범인이 어떠한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으며 자신의 죄로 인해 그에 합당한 벌도 받게 된다. 그러나 범인이 <편지>의 주인공은 아니다. 주인공은 바로 범인의 동생인 ‘나오키’이다. 생활비를 위해 한 순간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부잣집 할머니의 집을 털다가 자신의 모습이 발각되자 홧김에 할머니를 죽이게 된 형은 감방에서 동생에게 속죄의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동생은 형의 행적 때문에 창창한 앞길이 산산히 무너지게 되는 사건을 몆 차례 겪은 후 형의 편지를 모르쇄로 일관한다.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살인자인것처럼 속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동생과 하나뿐인 동생의 삶을 위해 그리고 피해자 가족에 대한 속죄를 위해 동생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는 형의 마음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에서 가장 중요한 갈래이다.
나오키의 입장이라면 형의 편지가 부담스럽고 또 뿌리치고 싶은 심정일 것이 처절히 이해가 되었다. 나오키도 형도 결국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가 죄를 뉘우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은 되돌아 올 수 없고. 살인의 끝엔 결국 모두의 고통만이 남은 셈이다. 행복을 좇아가지만 형 때문에 행복에 가까워질 수 없는 나오키가 한편으로 불쌍하면서도 매섭게 형을 뿌리치지 못하는 모습엔 연민의 감정도 들었다. 사실 그 어떤 계기라 하더라도 살인은 범죄이며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나오키 집안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범죄였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선 정부가 나서서 좀 도와줘야 한다. 자본주의 상위시대 말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적절히 섞인.. 뭐 그런.. ㅋㅋㅋ
어쨌든 여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는 조금 다른 책이었고, 일반 추리소설보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그런 소설이었다.